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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지막 날에
신아연 2010년 12월 31일 (금) 03:02:49
공교롭게도 올해의 마지막 날에 제 글 차례가 왔습니다. 공연히 마음만 분주하던 차에 순서가 딱 잡히니 억지로라도 좌정하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게 됩니다.

허리띠 풀고 졸면서 왔건,내내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었건 어느 시점에서는 부산을 출발한 열차가 종착지인 서울역에 곧 다다르게 된다는 것을 환기하게 되는 것처럼, 일일이 여삼추였건, 눈깜짝할 새 같았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시간’ 자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 한 해가 이제 종착점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0년, 1년이라는 시간의 열차를 함께 타고 온 주변의 지인들을 둘러봅니다. 해가 바뀌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 번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나마 이메일로 안부나마 물을 수 있는 것에 안도합니다.

이맘 무렵 여러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다보면 묵은 서랍이 정리되듯이 메일함도 저절로 깨끗해집니다. 오래 전 메일을 클릭하는 순간 언제 주고받았는지 모를 정겨운 대화들이 다시금 기억의 수면에 떠오르며 지난 시간을 반추할 수 있는 것도 덤으로 얻는 내밀한 즐거움입니다.

상대에 따라 마지막 연락이 오래 전에 끊겼더라도 방금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듯 소식을 전하는 데 열중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만나고 서로의 일상을 나누었건만 지금은 세상을 뜨신 분들의 메일 주소 앞에 흠칫 몸이 굳습니다.

올 한 해 시간의 열차를 함께 탔지만 홀연히 도중하차한 사람들, 예의 엊그제 만났던 것처럼 살가운 소식을 전한다 해도 영영 수신되지 않을 선연한 사실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블랙홀로 빨려든 듯 완전 무력화되어 굳게 닫혀버린 망자의 메일 주소가 섬뜩하기조차 합니다.

가까운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누가 죽으면 공연히 평소에 그 사람과 잘 알았던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게 되는 게 사람 심리지만 이민생활에서 주변의 부고는 심리 상태의 반향만은 아닙니다.

꼭 반년 전, 스산한 겨울비가 추적이던 날,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분의 부고를 접한 후 이런 글을 썼습니다.

“밤길을 더듬어 황망하게 들어선 상가,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사이로 조문객들의 눈길이 서로 부딪힙니다. 어색할 것까지는 없지만 ‘ 저분도 고인과 친분이 있었구나, 저렇게도 아는 사이였나 보네, 저 사람을 여기서 만나다니 참 뜻밖이다' 하며 새삼스런 낯가림을 합니다. 가족이 아닌 '남’이 중심이 되는 이민사회의 조문 풍경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옵니다(중략).

이민생활의 외로움은 살아서보다 죽어서 더 지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1세대 이민자 대부분은 부모나 형제, 변변한 친척도 없이 그저 두셋 되는 자기 피붙이끼리 그러구러 살아갑니다. 별 일없이 살 때는 모르지만 막상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아무도 찾아와 줄 사람이 없는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한국 같으면야 상을 당하면 오히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척들과 안부를 묻고 얼굴을 보는 기회가 되지만 이민생활이야 어디 그런가요. 이웃사촌, 교회사촌, 성당사촌, 사찰사촌들 속에서 정을 나누고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 마지막 길도 혼자 쓸쓸히 가야 할 것입니다. 철저한 타인으로 살다가 철저한 타인으로 죽어가는 삶, 그것이 이민자의 현주소인지도 모릅니다. 더 두려운 것은 휑한 빈소에 덩그마니 남아있을 자식들의 모습입니다. 가족 하나 없는 남의 나라에서 먹고 사는 일에만 몰두했던 부모의 궤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그것은 분명 죽어서도 고통일 것입니다.


문화차이로 인한 오해와 소통의 단절로 평생 자식들과 가슴 아픈 시간을 보낸 자에게는 어쩌면 죽음의 예식이 ‘명예 회복의 장’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찾아와 준 조문객을 통해 내가 몰랐던 우리 부모를 비로소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냐, 죽었는데 누가 왔는지 안 왔는지, 얼마나 왔는지 알 바 아니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죽음의 의미를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남의 시선’, ‘남의 판단’이 죽음 앞에서만큼 중요하고 정확한 때가 없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자기 미화를 할 수 없으니, 사후만큼은 오롯이 타인의 평가와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철저히 남으로 구성된 이민사회의 조문객들은 막 마무리된 내 삶의 무게와 빛깔을 객관적으로 달아볼 것입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내 죽음이 어떤 유산을 남길지 두렵기 때문입니다.”

새해 새 희망을 노래해야 할 때에 죽음을 이야기해서 송구하지만 먼저 가신 분들을 떠올리자니 새롭게 주어지는 1년이라는 시간, 그 1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도중하차하는 이, 또 누구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예외가 아니니 새해를 맞는 발랄한 마음 이전에 망연한 세월의 강 앞에 숙연해지고 저어하게 되는 마음을 앞세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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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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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순 (110.XXX.XXX.249)
타국에서의 이민생활에 대한 애환과 외로움이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때에 저의 뒤를 돌아보게되는 계기가 되었네요. 한해동안 좋은 글, 건강한 글 참으로 고맙습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건강한 글 부탁합니다. 고국에서 열심히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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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 19: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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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철 (110.XXX.XXX.249)
올해에 귀중하고 마음에 와 닿는 많은 글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스스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써 주신 글을 보면서 함께 공감하며 많이 느끼고 즐감히는 시간이었음을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밝아오는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많은 공감의 글을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최병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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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 19: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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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만 (110.XXX.XXX.249)
오래전에 이민가신 분의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예쁘고 정겨운 우리말이 있었는지 새삼스럽고 놀랍습니다. 아마 글 쓰시는 여성분이라 섬세하고 아름답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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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 19: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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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무섭 (220.XXX.XXX.142)
캄캄한 새벽부터 해운대 바닷가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오늘이 1월1일, 해맞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해변에는 수많은 점처럼 그들이 몰려있었습니다. 얼마 후 정말 순간이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왔다가는 사라지는 순간, 아연님이 말씀한 ‘시간의 열차’인가 봅니다. 출발 시간과 도착 시간이 너무나 분명한 그 열차에 우리들이 실려 있습니다. 정처 없음에 끌려가는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합니다.
‘‘시간의 열차’를 말씀한 아연님의 예리한 글 솜씨에 큰 느낌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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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1 0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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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2011년 0시에 '요이 땅'을 했습니다. 이제 그 시간의 열차를 타고 달려나갈 것입니다. 완주할 수 있기를 서로 응원하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 열차를 갈아탈 때까지 일생 중 단 한번 달릴 열차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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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 19: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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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43)
며칠 전 대학동창생이 뇌암으로 소천 했습니다. 아직 이른나이에... 그녀는 성품이 성실하고 원만해서 제가 존경했던 친구였습니다.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못하고 지내다가 한 친구 딸아이의 결혼식에 갔다가 몇몇 친구가 함꼐 병문안을 가기로 약속했는데 그 다음날 위독하다는 연락 받았고 다음날 운명했기에 결국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 녀의 머리맡에 저와 찍은 사진 액자가 있었다니 너무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운 심정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 그렇게 어느날 떠나고 말 유한한 인생입니다.다만 사는 날 까지 최선이라 믿어지는 삶을 열심히 사는거지요. 새해엔 더 좋은 글 많이 쓰시도록 복 받으시고 사업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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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1 00: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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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그 심정 저는 잘 알 것 같습니다... 제 오빠가 암으로 세상 떠날 때도 초등학교 동창을 꼭 만나고 싶어했답니다... 근데 그 오빠도 결국 장례식 때야 올 수 있었지요.... 그 때 제 오빠가 원망아닌 원망을 하기를 제가 전에 쓴 글처럼 "우리집 전화 번호 856 4435 를 그 녀석도 알고 있는데 연락하려고 들면 왜 못해..." 하더군요.

하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지요... 우리도 어떤 아쉬움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나야 할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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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 19: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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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113)
이민자들의 죽음(장례식)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더군요.
주변에 이민가는 것 만 보았지...
친족들 속에 저세상 가는 익숙함만 가졌는데,시선이 넓어지네요.
근대사 ,현대사의 유랑의 무리들은 서적을 통해(지식으로)알고 있었지만 아연씨의 글을 통해 피부에 와 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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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31 14: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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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장례식은 어차피 산 자의 몫이라는 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죽은 자는 다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친척 하나 없는 이민자의 죽음이 여기서는 보통 이라는 점에서 그 쓸쓸함이 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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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 19: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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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순간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호랑이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세월이란 녀석도 호랑일 닮아 이리 빨리 지났을까요?
다가오는 새해는 토끼의 해라서 올해 보다는 쉬엄쉬엄 지나겠죠?
토끼란 녀석도 빠르지만 중간에 잠자는 버릇이 있어서 ~~^^

현자는 잔치집에 있지 않고 상가집에 있다고 했으니 아연님은 현자가 분명하네요.
죽어서 받는 평가,그게 가감없는 진짜 평가니까요.
새해에는, 당당하게 죽음을 맞을만한 굵직한 업적들을 많이 쌓았음 좋겠습니다.

경인년 마지막 날에 나누고 싶은 주옥같은 말이 있어 올립니다.

"평범한 교사는 말(tell)하고
좋은 교사는 설명(explain)하고
훌륭한 교사는 시범(demonstrate)을 보이고
위대한 교사는 가슴에 불을 지른다(inspire)!"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야말로 지식인의 배신 이다!"
"문제의식을 떠났을 때 지식은 시장정보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평화로울 때는 아들이 아버지를 묻고,전쟁 때는 아버지가 아들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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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31 13: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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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저도 한가지 보태고 싶습니다. 꿈은 행복하게 하고 꿈너머 꿈은 위대하고 한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읽었는데 제 꿈은 식당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고,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는 꿈너머꿈도 있답니다. 그 꿈너머 꿈이 저의 현재 고생을 기꺼이 감수하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토끼띠입니다. 하지만 저는 중간에 잠자는 버릇은 없답니다.^^ 지금까지 당최 낮잠을 자 본 적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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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 19: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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