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秋史)를 접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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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秋史)를 접하다(2)

김창식

2011년 01월 03일 (월) 00:05:09

새해 벽두에 추사처럼 민족의 자긍심을 한껏 올려준 선각자의 삶과 예술을 떠올려보는 것도 보람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삼절(三絶, 詩ㆍ書ㆍ畵)의 경지에 이른 추사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규정하는 몇 개의 중요한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문자향ㆍ서권기(文字香ㆍ書卷氣), 존고소원(尊古溯源), 서여기인(書如其人), 실사구시(實事求是) 등이지요. 그밖에도 추사를 형용하는 말에는 청고고아(淸高古雅), 기굴분방(奇崛奔放), 기중득진(奇中得眞) 등이 있습니다.

서여기인(書如其人)

사람과 글(글씨)의 일치는 동양 전통예술의 본류를 관통하는 금과옥조(金科玉條)입니다. '글(글씨)이 곧 사람'이라는 뜻이니 숭고한 서품은 겸양과 학덕을 갖춘 이의 고절한 품성과 기질에 연유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지요. 때로 예술적 성취에 비해 사람됨이 따르지 못해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으나, 추사의 위대함은 서화 일치 사상에 비추어 더욱 여실히 드러납니다. 추사가 이룩한 예술적 처경(處境)은 본인의 타고난 천재성[天分] 외에 시대정신의 선취, 끝없는 임서(臨書)를 통한 절차탁마[天工]와 두 차례의 유배 생활 등 신산한 삶의 여정에도 굴하지 않은 인품의 도야가 섞이고 어우러진 혼융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담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 지조를 지키고 삼가며[愼其獨] 올곧은 기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를 세한도(歲寒圖)에서 볼 수 있지요. 추사의 서화 중 불이선란도(不二禪蘭圖)와 함께 가장 유명한 세한도는 추사가 제주 귀양 생활 중 59세인 1844년에 그린 작품입니다. 구도는 비교적 단순해 백설로 뒤덮인 겨울 벌판에 토담집이 한 채 있고 소나무 두 그루와 잣나무 두 그루가 외로이 서 있는 졸박(拙樸)한 그림이지요. 추사가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구절인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也ㆍ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송백의 푸르름을 안다)'를 인용해 화제(畵題)로 삼은 세한도에는 곤궁과 외로움 속 추사의 고절(高絶)한 인품이 드러나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세한도는 추사가 유배 중 그간 왕래하던 사람이 대부분 발길을 끊었으나 스승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보살펴 준 제자 이상적(李尙迪,1804~1865) 의 한결같음을 칭찬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 그려 보낸 그림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스승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한탄하지만 사실 그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돌려져야겠지요. 우리가 스승을 찾지 않고 스승을 저버린 때문. 삶의 바쁨과 고단함을 핑계로.

실사구시(實事求是)

주지하듯 실학자인 추사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키워드 중 하나는 실사구시입니다. 실사구시는 '실제 사실을 토대로 진리를 구한다는' 말로 원래 중국 청조 고증학파가 내세운 표어이자 학문 정신인데 조선의 실학자들에게 전승됐지요. 추사는 이를 깊이 논하여 귀납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통한 습속(習俗)과 선입주견의 타파, 진취적인 학문자세를 강조합니다. 추사 스스로 진흥이비(眞興二碑)의 내력을 밝히는 과정에서 자신의 논리를 정곡을 꿰뚫어 제시한 바 있지요. 고증학과 금석학이 긴밀한 연관을 갖듯 실사구시 또한 존고소원과 한 묶음입니다. 이들은 '한 개의 축(軸)에 의지한 두 개의 바퀴' 형국이니 추사의 학예관을 관통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추사의 개방적이고 실천을 중시하는 학문 태도는 "훈고에 함몰되면 문자의 해석에 치우치고, 의리만 추구하다보면 실질이 부족할 수 있으니 실사구시를 기준으로 실천에 힘써야 한다"는 언급에서도 그 의지를 찾아볼 수 있지요. 독일 관념철학의 백두대간인 칸트는 주저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에서 "내용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다"라는 말을 남겨 사물과 대상에 대한 인식작용의 본질을 설파한 바 있거든요. 칸트의 명제를 원용하면 '내용 없는 이론(훈고 숭상)은 공허하고 이해 없는 해석(의리 추구)은 맹목이다'가 될 것입니다.

추사는 제자들에게 철저히 단계를 밟아 공부할 것[門逕論]을 강조합니다. 기초를 튼튼히 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라는 것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추사가 문하생 스터디그룹인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의 지도 과정에서 '맞춤형 지도'를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동암(桐庵) 심희순( 沈熙淳,1819~ ?) 에게 보낸 편지에서 동암의 필성(筆性)과 지취(旨趣)로 보아 저수량(褚遂良ㆍ당나라 서예가, 596~658)보다 구양순(歐陽詢ㆍ당나라 서예가, 557~641)과 예학명(瘱鶴銘ㆍ중국 육조시대 암석에 쓰인 글씨)이 더 적격이라는 충고를 곡진히 적어 보냅니다. 제자의 성향을 파악해 적합하고 효율적인 커리큘럼을 적용한 셈이지요. 추사가 단축 공정과 오늘날의 과외 열풍을 미리 주창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가슴 뭉클한 사제 간 사랑과 함께 실사구시적 요소를 제자 지도에도 운용한 추사의 혜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김윤옥 (210.XXX.XXX.42)

어려운 고전 한 권을 정독한 것처럼 뿌듯합니다.
조촐한 세한도가 추사의 인품을 담아낸 그림이란 말씀도 새겨두겠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나 추사의 사상이 같다는 새로운 발견도 김창식님의 혜안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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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3 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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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43)

김윤옥 선생님, 딱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칸트와 추사 비교는 우연히 그리된 것, 칭찬 말씀은 감당키 어렵습니다.
새해를 맞아 김윤옥님 건승과 문운 융성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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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 20: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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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128)

추사의 생가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삶의 바쁨과 고단함으로 늦추다가 은혜를 입은 스스의 세상 뜨심의 소식을 접했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 남니다.
제게 맞는 맞는 길의 안내를 해 주셨느데...
새해 이른이침에 좋은글 읽게되어 처신을 가다듬께 됨니다.
좋은 글 마음에 담아 두겠습니다.
글의 내용을 일상생활의 자세에 접목시켜 보겠습니다.
새해에도 건필 부탁 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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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3 04: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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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43)

차덕희 선생님께서 추사 생가 부근에 살고 게시는군요!
항상 제 글에 공감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새해 선생님 뜻 하시는 바 이루시고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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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3 09: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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