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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 시인
임철순 2011년 01월 11일 (화) 00:02:40

사람은 몇 살 때까지 의미 있는 지적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재작년 10월, 98세의 나이로 시집을 내 화제가 됐던 일본의 시바타 도요(柴田トヨ) 할머니가 6월 26일로 100세가 된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절로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도요 할머니는 3월에 도쿄에서 시화전을 여는 데 이어, 100세 생일에 맞춰 새로운 시집을 내기로 하고 요즘도 매일 시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놀랍고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사히신문>  
첫 시집 <약해지지 마>는 발간 4개월 만에 1만 부가 넘게 팔리는 인기를 모았습니다. 14일이면 100만 부를 돌파할 것이라는데, 우리나라와 달리 시집이 1만 부도 팔리지 않는 일본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현상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지난해 번역시집이 나왔습니다. 대만 출판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1992년에 남편과 사별하고 20년째 혼자 살고 있는 도요 할머니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겨우 8년 전입니다. 아들의 권유를 받고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종이에 적다 보니 훌륭한 시가 되었습니다. 취미였던 일본 고전무용을 허리가 아파 못하게 되는 바람에 낙담하고 있다가 자기만의 새로운 일을 찾은 것입니다.

할머니의 시에는 삶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시에서 삶이 그대로 우러납니다. 할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외출할 일이 없어도 화장을 곱게 합니다.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너희 어머니 참 예쁘시다”고 친구가 말해 주었다고 기쁜 듯이 이야기한 적이 있어 그 이후로 정성껏 화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칭찬 받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 <화장>이라는 시의 내용입니다.

‘이번 주는/간호사가 목욕을/시켜 주었습니다/아들의 감기가 나아/둘이서 카레를/먹었습니다/며느리가 치과에/데리고 가/주었습니다/이 얼마나 행복한/날의 연속인가요//손거울 속의 내가/빛나고 있습니다.’이것은 <행복>이라는 시입니다. 화장을 하고 몸을 가꾸는 것, 거울에 맵시를 비쳐 보는 것은 남성과 다른 여성만의 특성이거나 매력이거나 자랑일 수 있습니다. 기나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정성 들여 화장을 하며 살아온 할머니는 여전히 변함없는 여성입니다.

도요 할머니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칭찬과 격려 친절은 삶을 이끌어가는 큰 힘입니다. 대표작처럼 알려진 <저금>이라는 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난 말이지, 사람들이/친절을 베풀면/마음에 저금을 해둬//쓸쓸할 때면/그걸 꺼내/기운을 차리지//너도 지금부터/모아두렴/연금보다/좋단다.’ 시를 쓰면서 하루하루가 보람 있어졌고, 몸은 여위어 홀쭉해졌지만 눈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고 귀는 바람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입은 달변이라고 야무지시다고 모두가 칭찬해 주니 그 말이 기뻐서 다시 힘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나>라는 시에 나오는 말입니다.

<저금>이라는 작품처럼 할머니의 시에는 ‘나, 말야’ ‘나 사실은’‘난 말이지’이렇게 나직하게 속삭이듯이 시작되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비밀>도 그렇습니다. ‘나 말야 죽고 싶다고/생각한 적이/몇 번이나 있었어/그렇지만 시를 쓰면서/이제는 더 이상/우는 소리는 하지 않아/아흔 여덟 살에도/사랑은 한다고/꿈도 꾼다고/구름에라도 오르고 싶다고.’

도요 할머니가 시 쓰기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인생에 괴롭고 슬픈 일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옆에 앉아서 들려주듯이 자신의 삶과 생각을 말해주니 시의 호소력과 친근감이 더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할머니의 시를 읽은 독자들이 자살할 생각을 버렸다거나 “노후의 지침으로 삼겠다”, “지금 어머니를 간병 중인데 용기가 난다”는 편지를 수도 없이 보내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도요 할머니는 1911년 유복한 쌀집의 고명딸로 태어났으나 집안이 기울어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음식점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20대에 이혼의 아픔을 겪은 뒤, 33세 때 음식점 주방장과 결혼해 이듬해 외동아들을 낳았습니다. 어머니에게 시 쓰기를 권했던 그 아들은 올해 67세입니다. 할머니의 달력에는 찾아와 돌봐주는 도우미의 이름과 방문시간이 적혀 있습니다. 빨간 동그라미는 주말에 아들 부부가 찾아오는 날입니다.

지금은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 집까지 찾아와 주는 사람, 이런 것들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행복을 느끼고 있지만, 할머니가 젊어서 가장 행복했던 것은 아들을 임신했을 때였나 봅니다. <추억 Ⅰ>이라는 그림같은 작품에 그런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아기가/생긴 걸/알렸을 때/당신은/“정말? 잘됐다/나 이제부터/더 열심히/일할게”/기뻐하며 말해 주었죠//어깨를 나란히 하고/벚꽃나무 가로수 아래를 지나/집으로 돌아왔던 그날/내가 가장/행복했던 날.’

<아들에게 Ⅰ>이라는 작품에서 도요 할머니는 이제는 노인이 된 그 아들을 따뜻하게 토닥입니다. ‘뭔가/힘든 일이 있으면/엄마를 떠올리렴//누군가와/맞서면 안 돼/나중에 네 자신이/싫어지게 된단다//자, 보렴/창가에/햇살이 비치기 시작해/새가 울고 있어//힘을 내, 힘을 내/새가 울고 있어/들리니 겐이치’.

도요 할머니처럼 누구나 다 장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설령 그 나이까지 살아 있다 해도 도요 할머니처럼 누구나 다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누구나 다 많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여성이 억압 받고 부자유가 심한 사회에서 개성과 소질을 억누르며 살아온 할머니들은 하고 싶은 말이 가슴 속에 많이도 쌓여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할머니들에게 시를 쓸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도요 할머니가 잘 보여 주었듯이 시는 어려울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남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어렵고 거룩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삶과 세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시인으로 만든 아들 시바타 겐이치(柴田健一)도 시인입니다. 알고 보니 그의 재능은 자신의 문학적 소질을 모르고 살아온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습니다. 시바타 씨는 “일본에서는 쉬운 말로 시를 쓰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어머니의 시는 우리가 알기 쉬운 말로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 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모자는 만나면 늘 시를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시가 삶이고 삶이 곧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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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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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백 (222.XXX.XXX.100)
"...쉬운 말로 시를 쓰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쉬운말로 전달하는 강의가 왠지 품격이 낮아 보일때가 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쉬운 말로 남에게 전달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더군요. 뭘 모르니까 괜히 어려운 말이 동원되고...대화도 그렇고, 시는 더 어려울 것 같은데...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 노래한 도요 할머니야말로 진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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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5 16:05:45
0 0
JSK (210.XXX.XXX.158)
전철 경로석에 보면 나이가 70도 되기전 노인이라고 자처하는 건강한 할머니들 염치없이 막무가내로 사시는걸 보면 눈살이 찌프러진답니다.
거기에 비해 그리 많이 배우시지도 않으신 노인이
배우려는 성의와 마음을 시로 표현함을 보니 정말 존경이 간답니다.
아직 전 50대니 한창 청춘이겠지요
이글을 읽으니 배우고 싶은 것 열심히 배우고 책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새삼드네요. 참마음을 새롭게 해주시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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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7 16:27:50
0 0
임철순 (211.XXX.XXX.129)
늘 생각하는 게 많으시니 좋은 글이 샘 솟듯 올라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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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8 18:27:59
0 0
임철순 (211.XXX.XXX.129)
정말이지 그런 분들을 보면 시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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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3 18:21:48
0 0
김외숙 (211.XXX.XXX.129)
지금 한국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은 '오래 사는 것'인 것 같습니다.그런데 어느 시인이 말하더군요, 오래 사는 것은 재앙이라고 요. 도요 할머니는 오래 사는 것이 재앙이 아닌 축복임을 시창작에서 얻는 희열과 독자들이 얻는 감동을 통해 보여줍니다.좋은 내용을 소개해 주신 임 철순 주필님께 감사드립니다.토론토서 발행되는 한국일보를 통해 주필님의 귀한 글을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읽는 독자랍니다.제 장편소설,<유쾌한 결혼식>이 지난 해 한국일보에 연재된 적이 있습니다.귀한 글, 감사드리며 캐나다에서 김외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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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3 11:12:57
0 0
최부림 (211.XXX.XXX.129)
너무 논조가 명쾌해서 정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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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09:34:11
0 0
김윤옥 (210.XXX.XXX.103)
듣는이에게 나직하게 들려주는 사사로운 얘기가 따뜻한 詩가 되는군요.며칠 전 안과에 갔다가 같은 증상으로 옆에 앉은 여든다섯 할머니가 몸이 예전 같지않다고 푸념하시는데 저는 속으로 그연세 되면 저는 바깥 출입도 못할텐데요. 했습니다.



지금 ........ 제가 쓴 지금입니다.


침침한 눈, 돋보기 고쳐 쓰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언제부턴가
돋보기 없이는 꼼짝도 못하는 내게
그럴 듯한 말로 위로해 본다


적당히 눈감고 살자 시시콜콜 다 보면
세상 어지러워 어찌 사나.
그러니 적당히 조금만 보고 넘어가는 거지.


침침한 눈, 감으면 내 마음 속, 유년의 풍경이
조용히 열리고


호롱불 밑에 옹기종기 우리들,
그만 자거라, 자거라
어머니 목소리 들릴 것 같은
그리움에 마음 빼앗기는 이 즐거움


명주 천 조각의 고운 문양
깃발처럼 나부끼던 엄마의 빨래
낮잠 속에 듣던 소낙비 소리
잠자리 날개의 엷은 반짝임
툇마루에 내리던 따뜻한 햇볕


침침한 눈, 감기만 해도
선명하게 보이는 이 애틋함


지금
지금이 아니었더라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는 즐거움
만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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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23:58:26
0 0
임철순 (211.XXX.XXX.129)
참 좋군요. 특히 마지막 연에 모든 게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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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09:31:37
0 0
강대호 (211.XXX.XXX.129)
감사히 읽었습니다. 또 몇일 전 쓰셧던 전 대통령ys씨의 재산사회환원 기사 동감이 가구요. 감사합니다. 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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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18:39:28
0 0
홍승철 (211.XXX.XXX.129)
얼마 전 어떤 글에서 소개받은 분인데 다시 들으니 새롭습니다.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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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18:38:52
0 0
신현덕 (211.XXX.XXX.129)
임주필, 오랫만입니다. 글을 다시 받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처음으로 임주필 글을 읽게 되었네요.반가습니다.건강하시죠?시를 쓰지는 못하지만 남의 시를 누군에겐가 전하는 일은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받은 사람이 읽고 한 순간이라도 무엇인가 느낀다면 전 행복입니다.저의 행복을 위한 일을 계속해도 남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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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16:25:10
0 0
김휘동 (211.XXX.XXX.129)
이번에는 행복한 이야기를 썼군. 우리 친구들의 이야기도 나중에는 행복한 이야기로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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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11:26:09
0 0
차덕희 (121.XXX.XXX.98)
참 아름다운 내용이네요!.
일상생활을 사랑하는 할머니의 삶의 자세가 쉽게 닦아 옴니다.
나를 보여 주는 시나 글쓰기를 통해서 열린 삶을 사는 분들의 용기가 귀하게 여겨지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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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08:16:29
0 0
임철순 (211.XXX.XXX.129)
그 할머니는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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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16:48:4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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