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임철순 담연칼럼
     
꽃 필 때
임철순 2007년 04월 06일 (금) 09:35:30
^틈만 나면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서는 친구가 있습니다. 갈 곳이 너무도 많다는 그의 달력에는 촬영 스케줄이 가득합니다. 그렇게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 보니 좋아하던 골프 등산과 멀어졌지만, 그는 오히려 사진을 모르고 살아온 세월이 아깝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 그의 블로그에 오른 사진에 <이 꽃들을 내년에도 볼 수 있을까>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광양 매화축제 풍경입니다. 두루마기 차림의 수염이 긴 할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거나 어린 두 손녀의 손을 잡고 꽃그늘 아래 거닐며 가위바위보를 하는 정겨운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연연세세화상사 세세연연인부동)이라는 당 시인 劉希夷(유희이)의 <代悲白頭翁歌(대비백두옹가)>가 저절로 연상되는 사진입니다. 그도 이 시를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아니, 그는 이 시를 모를지도 모릅니다. 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건만 사람은 매년 달라져 가는구나. 30여년 전 신문사 입사시험에 국어문제로 나와서 더 잘 기억하고 있는 시입니다.


^상당히 긴 그 시에는 ‘올해 저 꽃 지면 얼굴도 늙어가리니 내년 꽃필 무렵엔 누가 다시 있으리오…이 가련한 백발노인도 한때는 홍안 미소년이었네’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진 속의 할아버지는 내년에 이 꽃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꽃을 보면서 인간생명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꽃의 처지에서는 다르지 않을까요. 해마다 피는 꽃이 어찌 비슷하리오,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겨울을 견디어 드디어는 저마다 다르게 온 힘을 다해 망울을 터트렸는데…. 이것이 꽃의 마음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꽃은 언제 이렇게 많이 피어났는지, 달포 전만 해도 산은 얼음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의 산행이 더 위험하다지 않습니까. 굳은 흙 밑에 넓게 깔린 얼음판이 언뜻언뜻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잊혀진 사랑처럼 숨겨진 슬픔처럼 감춰둔 분노처럼 덮어둔 회한처럼…이런 말을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잊혀지고 숨겨졌던 것들이 갑자기 몸을 드러내듯 꽃이 피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라는 김용택의 시는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이런 말로 끝납니다. 그렇게 손에 닿지 않는 사랑과 슬픔, 분노와 회한 같은 것들이 드디어는 꽃이 된 모양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으로 시작되는 김춘수의 <꽃>에는 자연과 사물에 대한 기호학적 인식의 욕구가 담겨 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꽃이 어떤 것이며 무엇인지 잘 모르거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기도 합니다. 고은의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보았던 그 꽃’이라는 시는 그런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은 산에 오를 때 그 높이, 정상에 이르는 힘겨움, 정상 정복의 기쁨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올라갈 때의 산에 왜 꽃이 피어 있지 않았겠습니까? 무수히 많을 텐데도 꽃은 잘 보지 않게 되고, 그 중 어떤 꽃이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지는 더욱 알지 못할 뿐입니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에는 모든 게 달리 보입니다. 올라갈 때 못 보았던 그 꽃이 눈에 들어오는 거지요. 흙 속에 감춰진 얼음을 보면서 이런저런 말을 떠올린 것도 산에 오를 때가 아니라 산 위에서 한 잔 걸치고 괜히 비감해져서 허적허적 산을 내려올 때였습니다. 나는 지금 삶의 산에서 내려오는 중인가? 그 점에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금 한창 산을 올라가는 중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삶이 피어나는 젊은 시절에는 꽃이 피거나 지는 모습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다만 피어 있는 꽃만 잘 보게 됩니다. ‘저만치 혼자서’ (김소월 <산유화>) 피어 있는 꽃은 더욱더 알 수 없습니다.

해리화원의 소녀는
꽃과 함께 자고 깨더니
그 꽃을 닮는다

해리화원의 소녀는
백합을 좋아하지만
내게는 그 소녀까지도
백합이다

^1968년에 내가 쓴 <해리화원>이라는 시입니다. 화원과 소녀는 이미 피어 있는 꽃일 것입니다. 피어나는 꽃이나 ‘못 보았던 그 꽃’은 그 때 끝내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가다가 차창으로 내다본 산과 꽃이 눈물겹게 아름답고 흙이 너무도 보드라워 보여 저 따뜻한 흙 속에 눕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니, 이건 죽는다는 뜻 아니야?, 내가 대체 무슨 수작을 하는 건가 하고 스스로 놀랐습니다.


^꽃 중에는 벌써 이운 것도 있지만,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천지가 엷은 파스텔 톤으로 변해가는 지금이 참 좋습니다. 자연은 경이롭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꽃이 피어나는 호시절에 왜 꽃이 지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꽃이 질 때 거꾸로 꽃이 피는 생각을 하려는 것이라고 접어 놓아두겠습니다. ^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