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종칠금(七縱七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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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종칠금(七縱七擒)

김창식

2011년 01월 20일 (목) 00:42:38

최근 들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문화 코드는 감각과 비주얼입니다.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한 3D 입체영화 '아바타(Avatar)'가 이런 흐름을 주도한 대표적인 사례이고요. 그렇지만 이머징 이슈로서의 문화 현상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호응을 얻고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서사와 이벤트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플랫폼(Platformㆍ인터넷 거래장터)과 앱(Applicationㆍ응용프로그램)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지요. 삼국지 전반을 통틀어 가장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갖추어진 대목은 '칠종칠금' 편입니다.

남만왕(南蠻王) 맹획(孟獲)이 익주원수 옹개 등과 결탁하여 10만 군사로 반란을 일으킴에 제갈량은 50만 대군을 징발해 친정에 나섭니다. 위수대장은 촉의 최고 맹장 조운(자룡)과 위연이지요. 압도적인 병력의 우세에다 공명 특유의 공심(攻心), 의병(擬兵), 반간계(反間計)의 성공으로 지역을 병탄하고 맹획을 복속시킵니다. 삼국지의 여러 에피소드 중 제갈공명이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는 칠종칠금처럼 통쾌한 꼭지도 없습니다. 흠모하는 슈퍼스타인 제갈량이 늘 쫓기고 어찌어찌 위험을 모면해 안타까운 느낌을 자아냈는데 오랜만에 '갑(甲)'의 위치에서 '을(乙)'을 한바탕 혼내주는 모양새거든요.

제갈공명의 남만친정은 그 자체로 무협물을 보듯 흥미진진한 요소가 가득합니다. 등장인물의 면면만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맹획이야 말할 것도 없고 마시면 부작용을 일으켜 죽게 되는 네 개의 괴이한 우물 [毒泉, 啞泉, 黑泉, 柔泉]을 장악한 타사대왕(朶思大王), 흰 코끼리를 타고 등장하며 범, 표범, 시랑 등 맹수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목록대왕(木鹿大王), 물과 도검 불침의 3만 등갑군(藤甲軍)을 거느린 오과국왕(烏戈國王)…. 이들은 맹획의 수하 동주(洞主)거나 맹방인데, 공명의 명성에 굴하지 않고 대적합니다.

진짜 영웅은 따로 있습니다. 맹획의 처인 축융부인(祝融婦人)입니다. 그녀는 비도술의 명인입니다. 맹획이 패하고 돌아와 풀이 죽어 말합니다. "솔찬히 답답허시!" 축융부인은 다섯 자루 비도를 꿰차며 대차게 응수하지요. "남자로 태어나서 어찌 그리도 시답잖단 말입니까? 내 일개 아녀자올시다만 한번 대적해보겠습니다!" 망하게 된 집에 평소 눈여겨보지 않던 조강지처가 적금통장과 보험증서를 내놓는군요. 맹획은 부인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입니다. "아이고, 부인. 고마웁소~. 그저 부인만 믿겄소!" 축융부인은 명불허전(名不虛傳), 촉의 유명한 장수인 마충과 장의를 사로잡는 등 한 때 촉군을 곤경에 몰아넣은 적도 있습니다.

거괴(巨魁) 맹획은 코믹하고 밉지 않은 인물입니다. 싸울 때도 잔뜩 멋을 부립니다. 보석 관, 붉은 비단 옷, 송문보검(松紋寶劍. 장식용 패검임), 옥으로 만든 요대…. 쥐 가죽[鼠皮] 갑옷을 입고 붉은 털이 난 소[赤毛牛]를 타고 나타납니다. 공명에게 사로잡혀서도 기죽지 않고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길이 좁아서.", "부하가 배신때려서.", "속임수에 당했다.", "우리 동네 [銀坑洞]에서 한번 싸워 보자" 등등. 아무러한 그도 부인에게는 약세를 보입니다. 하긴 겉으로 와일드함이 드러나는 권력자일수록 기실 집안에선 타박 당하고 꼬집히기 일쑤입니다만.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치사찬란하게 이유를 둘러대는 맹획의 성정에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보는 듯해 씁쓸하기도 합니다.

제갈량의 남만친정은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여러 허구 중 하나입니다만 신인(神人) 제갈공명의 충정과 업적, 고난, 솔선수범의 정신을 기리는 이야기로 후세인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그런데 석연찮은 의문이 있습니다. 왜 그는 남만정벌에 몸소 나서야 했을까? 만병은 용맹하나 단순한 변방 족속입니다. 대적 경험이 있는 위연을 위수장군으로 삼고 지리에 밝은 태수 왕항(王抗)과 출중한 모사 여개(呂凱)와 마속(馬謖ㆍ읍참마속의 그 마속임)으로 보좌케 했더라면. 그래도 걱정이 되면 상승장군 조운으로 하여금 뒤를 받치게 해도 됐을 터이고. 애초에 굳이 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만병은 용맹하나 단순한 변방 족속입니다. 예물을 주어 어르고 달래며 방비를 단단히 했더라면….

지금의 베트남지역인 남만은 궁벽한 오지이니 무덥고 습기찬 데다 독사와 갈충(蝎蟲)이 많고 장기와 역질이 창궐하는 원정길입니다. 유사한 환경에서의 적응 훈련(Simulation) 없이 극한지역에 가서 장기간 머물면 귀국해서도 풍토병으로 인한 후유증과 극심한 체력소모에 시달리기 마련입니다. 간의대부 왕연(王連)도 그런 이유로 친정을 말렸지만 왜 공명은 이를 내치고 스스로 고단함을 자초한 것일까요?

필자는 공명의 원려심계(遠慮深計)가 있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당시는 육손에게 패배한 유현덕이 백제성에서 병사하고 유선이 황제 위에 오른 후 3년째가 되는 시점입니다. 안팎으로 어렵고 나라를 추스르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 시기였지만 국가에 큰 공을 세워 쐐기를 박음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상부(相父ㆍ공명을 뜻함)에 의지하는 후주 유선의 절대적인 재신임을 바탕으로 필생의 사업인 중원정벌에 나서려 했던 것이 아닐는지. 이것이 남만친정의 숨겨진 진실의 내막이 아닐까 유추해 봅니다.

공명은 반사계곡에서 오과국왕의 3만 등갑군을 화공으로 몰살하며 그 아비규환의 처참한 광경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합니다. "아무리 나라 사직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이 모든 것이 나의 죄로다. 손수(損壽)할 수밖에 없겠구나!" 스스로의 명을 재촉한 것이니 숙원 사업인 중원정벌을 염두에 둔 공명으로서는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었겠지요. 촉군이 남만 병탄 후 귀환 길에 오르던 중 노수 강가에 이르렀을 때 음산한 구름이 몰려들고 미친바람이 일어 돌과 모래가 흩날리자 공명은 소와 말의 고기로 사람 머리 모양을 빚어 죽은 원혼을 달래니 이것이 우리가 즐겨 먹는 '만두(饅頭)'의 유래입니다.

happy (112.XXX.XXX.231)

삼국지 정사에는 공명의 남만 정벌이 언급이 안되어있고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나옵니다. 맹획은 그의 인상 묘사로 보아 분명 漢族이 아닌 이민족으로 보고있습니다. 남만의 현 위치가 명확하게 나오질 않습니다. 김 작가님께서 언급한 지금의 베트남으로 보기도하고, 당시 촉의 중심지 成都에서 비교적 가까운 중국의 운남성(곤명) 일대로도 보기도하고, 광동,귀주,복건성 일대로도 보기도하고, 운남성 방향의 라오스와 캄보디아 일대의 메콩강과 그 일대의 험준한 산악 지대로도 보고 있습니다. 어쨋건 이것 모두 그다지 중요한것은 아니고 칠종칠금의 고사와 만두의 유래가 흥미있는 것이겠지요. 그야말로 종횡무진으로 묘사한 작가님의 칠종칠금 고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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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19: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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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43)

중국문학에 밝으신 happy님의 '남만의 위치'에 대한 가르침 감사합니다.
제가 쓰는 삼국지가 연의 이야기인 데다 일종의 퓨전, 크로스오버 성격이어서 정사를
연구하신 분들께 누가 되지 않을까 항상 걱정이 앞섭니다. 널리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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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4 13: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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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232)

종횡무진으로 치닫는 유추와 서사로 정신없이 빨려들다(끌려들다)보니 아니,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만두 얘기로 끝났습니다. 만두의 모양을 아무리 곰곰 되새겨 보아도 사람 머리모양하고 닮아보이진 않는군요. 그 맛과 영양 조합이 이상적인 만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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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2 23: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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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0.XXX.XXX.243)

김윤옥님, 만두 좋아하시는군요.^^ 아마 지금이랑 그때 만두는 모양이 서로 다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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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14: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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