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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메뚜기 삶의 시작
오진주 2011년 01월 25일 (화) 00:31:20
얼마 전 집을 계약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에 계약한 집도 제 집이 아닙니다. 4년 전에는 월세, 이번에는 전세. 세, 세, 세. 상경한 지 5년째, 저는 아직도 ‘-세’가 붙은 집만 전전합니다. 올해로 제 나이 24살,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되었지만 집을 구하는 동안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고 싶었습니다. 몇 천만 원이 몇 백 원인 것처럼 큰돈이 쉽게 오가는 서울 부동산에서 어머니와 저의 어깨는 발품을 팔수록 좁아졌기 때문입니다.

첫 상경은 19살 때. 2006학년도 수능이 끝나고 재수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어머니의 신조에 따라 양 손에 큰 가방 하나씩 들고 무조건 노량진역에 내렸습니다. 그 넓은 서울 하늘 아래에 내 작은 몸뚱이 하나 뉘일 곳 없겠냐 싶어 무작정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설마 설마 했지만 정말 제 몸뚱이 하나 뉘일 곳이 없었습니다. 습기 차고 냄새나는 고시원마저 수험생으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결국 제 작은 몸뚱이를 받아주는 곳은 양팔이 다 벌려지지도 않는 지하 고시원이었습니다.

지하 고시방에서 바퀴벌레를 처음 보고 아버지에게 울면서 전화하던 날 다짐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으면 꼭 지하방에는 안 살 거야.’ 그 다짐대로 대학교에 붙고 자취방을 알아볼 때 저는 무조건 햇빛이 들어오는 방만 찾았습니다. 그렇게 찾은 방이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 1년 뒤 5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해서 지금은 35만원. 학교 근처는 시세가 비싸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에서 겨우 찾은 방입니다. 미안해하시는 어머니께 “학교까지 걸어 다녀야 운동이 되지.”라고 말씀 드렸지만 사실 수업에 늦어서 뛸 때마다 ‘학교 근처에 살았더라면…’하고 후회를 하곤 했습니다.

작년 말, 이제 월세도 지긋지긋하고 좁은 방에 쌓이는 먼지 때문에 콧물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제가 안쓰럽다며 어머니는 전세방을 찾아 이사를 가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신이 나서 어머니가 말씀하신 5,000만원에 맞는 전셋집을 알아봤습니다. 하지만 정말 5,000만원에 맞는 전셋집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아예 전세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전세대란’.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24살, 제 눈앞에 닥친 현실이었습니다. “5,000만 원 정도 전세 생각하고 있는데요.”라고 말하면 부동산 중개소마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정부가 지난 13일 전ㆍ월세 안정대책을 내놓았다고 했지만 부동산은 정부의 정책을 못 들은 건지 정부의 정책과 상관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5,000만원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1년 내내 장사해서 얻은 수익의 전부입니다. 전 아직 5,000만원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지만, 아버지가 여름에는 땀 흘리며 겨울에는 덜덜 떨며 번 돈을 제 원룸 얻는 데 고스란히 다 퍼붓는다 생각하니 죄송스러웠습니다. 결국 7,000만원 짜리 원룸을 얻었습니다.

이제 2011년 한 해, 아버지와 어머니는 빌린 2,000만원을 갚기 위해 일을 하셔야 합니다. 결혼한 지 25년, 이제 빚 다 갚고 내 땅에 내 집 짓고 사장님 소리 듣던 아버지가 제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지천명이 지난 나이에 또 빚을 지게 되셨습니다. 계약하던 날 밤 아버지가 전화하셨습니다. “너 이제 7,000만원 먹고 떨어져. 삶아먹든 튀겨먹든 그걸로 시집가고 다 해. 이제 부모와 자식의 경제적인 끈은 이걸로 끝이다.” 술을 드시고 농담으로 하신 말씀에 저는 “싫어. 아버지랑 평생 같이 살 거야.”라고 애교를 부리긴 했지만 아버지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 드넓은 서울 하늘 아래에,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 중에 내 작은 몸뚱이 하나 뉘일 곳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이렇게 부동산을 전전하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싶진 않았습니다. 상경한 햇수가 늘어날수록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전세 대책에 귀를 기울이고 부동산 아저씨와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집니다. 돈 개념도 커졌습니다. 전셋집을 찾으러 돌아다니다 보니 5,000만원은 싼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만져보지도 못한 액수인데 말입니다.

저는 너무 일찍 메뚜기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서울 하늘 아래에서 이 집 내놓고 저 집으로 이사 가는 메뚜기 생활을 얼마나 반복해야 할까요. 전세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요즘, 전세가 만기 되는 2년 뒤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얼마나 줄여 이사를 가야 할까요. 상경 햇수가 늘어날수록 살림살이는 불어나는데 평수는 줄어듭니다.

충북대 사대부고 졸. 고교생 때 교내 신문부를 만들어 편집장으로 활동. 고교 급식 실태 등 취재. 기자가 되려는 일념으로 언론홍보학과에 입학, 7학기 재학 중. 현재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아나운싱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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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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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합니다 (124.XXX.XXX.130)
이시대 서민(아니 보통사람?)들의 고충을 대변해 주는 좋은 글이네요 앞으로도 우리들이 공감하고 또 힘을 얻을 수 있는 따뜻한글 많이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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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6 14:16:36
0 0
진천댁 (211.XXX.XXX.204)
아직 젋은나이에...... 졸업후 취업이 걱정되시죠
부디 멋진 기자되어서 좋은글 많이 쓰면 지금 이런 고민들이 조금은 작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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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6 11:41:22
0 0
로하스 (220.XXX.XXX.47)
퇴근길 길이막히는 차안에서 네비에서 나오는 장면이 생각나네요
억대가 되는 집값의 반이 넘치는 전세값으로 시외로 이사를 해야하는
서민의 서글픈 현실이....
요즘 아이들 온실속에서 커서 아쉬운것이 없다 힘든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걱정들 많이 하는데 위의 글을 읽으니 부모님 생각하는 모습이 참 이쁘네요
2년후 전세값 걱정은 접어두시고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강남 큰 손들이 공기좋은 별장으로 내려가 집값이 폭락해서 전세가 지천할 지 누가 알아요...ㅎㅎ
힘내시고 젊은 이들이 세상에 나올때는 지금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서
일자리도 잠자리도 걱정하지 않은 나라가 되었음...
울딸아이 내년 대학입학이 in 서울이라고 해서 여러가지 걱적인 상황이라 더 친근감있게 와 닿는 글 잘 일고 갑니다.
좋은 기자가 되어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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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5 22:36:33
0 0
오진주 (117.XXX.XXX.159)
감사합니다~^^ 꼭 좋은 기자가 되어 기사를 통해 만나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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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5 18:03:00
0 0
이정용 (112.XXX.XXX.53)
정말 잘 쓴 글인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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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5 15:11:46
0 0
김애양 (221.XXX.XXX.77)
아직 어린 학생인데
이런 글을 쓰다니 엄청 장하네요.
어려웠던 경험들을 토대로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큰 사람이 될 것 같아요....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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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5 10:32:20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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