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不十年_(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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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不十年

임종건

2011년 02월 11일 (금) 00:28:59

권불십년과 화무십일홍은 인생무상을 빗댄 말입니다. 신호등이 고장으로 10분 이상 빨간불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파란불을 기다리다 지친 보행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횡단보도로 들어설 것이고, 차들은 멈추게 될 것입니다.

고장 난 신호등 앞에서의 10분 속엔 혁명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정부가 기능을 못하면 백성은 참을 만큼 참다가 끝내는 정부를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그 10분은 인간이 뭔가에 염증을 느끼게 하는 인내의 임계치라는 점에서 권력의 10년, 꽃의 10일과 같다는 말입니다.

올 들어 이슬람권이 정치적으로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튀니지에서 정권이 무너졌고, 이집트에서 정권 퇴진 시위가 열을 뿜고 있습니다. 알제리, 시리아, 예멘, 리비아 등의 나라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집권기간이 긴 나라일수록 불안이 큽니다.

이 나라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개 서방진영의 식민지였다가 2차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이고, 아랍민족주의 기치 아래 사회주의 혁명을 거쳐 공화정을 채택했으나 실제 정치는 왕정처럼 하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쫓겨난 튀니지의 벤 알리 대통령이 24년,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30년, 리비아의 국가원수 가다피도 30년 이상 장기집권을 하고 있고 나머지도 대부분 10년 이상 권좌에 앉아 있습니다. 임계치를 훨씬 넘긴 정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화국들과는 달리 사우디 쿠웨이트 같은 왕정국가들이 조용한 것이 대비됩니다. 오일달러로 국민들을 배불리 먹여 살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허나 이 열풍의 최종 목표지점은 왕조정권일 것이라는 견해에 나는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부자는 해방 이후 대를 이어 66년이라는 최장기간 일당 독재를 하고 있습니다. 20대의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을 한다니 100년 넘는 독재를 하겠다는 배짱이겠지요. 지금 중동에서 전개되고 있는 사태를 지켜보며 불면의 나날을 보낼 사람은 김정일 부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미국이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8년)으로 한 것은 절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2선으로 임기를 마친 것이 불문율처럼 내려오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2차 세계대전 때 “장수는 강을 건너다 말을 갈아타지 않는다”는 구실로 4선을 하게 되자 비로소 수정헌법에 3선 금지를 규정하게 됐던 것이지요. 그 점에서 워싱턴 대통령은 권불십년의 동양적 권력관을 깨친 탁월한 통찰력의 소유자였다고 생각합니다.

권불십년은 우리나라에서 더 극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미국식 임기로 시작했으나 54년 자신에 대한 중임제한을 철폐하는 종신제 개헌(4사5입파동)을 통해 3선을 했고, 집권 12년째인 1960년 3·15부정선거로 4선을 했으나 4·19혁명으로 하야, 망명길에 올랐지요. 박정희 대통령도 집권 11년째인 1972년에 유신을 해야만 했고, 그것으로 연장된 집권기간은 7년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반성 때문이었겠지요. 5공의 전두환 대통령은 7년 단임 약속을 지켰으나 집권말기 호헌론을 앞세워 집권연장을 기도하는 바람에 국민들은 6·10항쟁의 호된 시련을 치러야 했습니다. 6·29선언으로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으로 단축된 뒤 노태우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 5명의 대통령에 의해 23년째 이렇다 할 장기집권 시도 없이 운영돼 오고 있습니다.

장기 집권의 근본적인 이유는 권력의 사유화에 있습니다. 헌법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지만 대통령은 권력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독재와 부패를 저지르고 또 그것이 퇴임 후 폭로되는 것이 두려워서 장기집권의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지요. 현재의 중동 사태에서도 그것이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으나 우리는 이미 숱하게 겪었던 일입니다.

반면 국민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유능한 지도자라 해도 집권기간이 10년쯤 지나면 염증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지도자와 국민 사이의 이 같은 감정의 상충이 필연적으로 혁명적 상황을 초래케 한다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5년 단임 이후 전직 대통령의 재직 중 권력 오·남용의 내용이나 규모는 현저하게 개선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대통령이 재직기간 동안은 물론 퇴임 후를 편안히 보낼 여건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권력 사유화 논란이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추징금 문제가 걸려 있고,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그런 일로 자살까지 했습니다.

지금 정치권에서 분권형 개헌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한국 정치에서 장기집권 시도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수긍이 갑니다. 인터넷 보급률이 10%대의 튀니지나 이집트에서도 시민혁명이 일어나는데 IT강국 한국의 국민들이 독재자의 비리를 그냥 놔두겠습니까.

요는 분권의 내용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너무 약화시키는 개헌이라면 대통령으로 유력한 사람이나 유력한 정당은 반대할 것입니다. 그래서 개헌은 매번 흐지부지됐던 겁니다. 한나라당에서 이미 그런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후보 때 내각제 개헌을 한다고 했다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딴전을 피운 대통령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차지한 자리인데, 라며 향유하고픈 유혹 때문이었겠죠. 대통령이 하고 싶어도 추종자들의 반대로 안 된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임기 말에 가서야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이 꺼내들곤 했지요.

이번에는 그런 식의 개헌 논의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하나 유념할 일은 4년 중임으로 대통령 임기를 고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인 것처럼 얘기되는데 이는 분권과는 무관하거나 자칫 역행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8년 임기의 대통령제로 변질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