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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은 시집입니다”
임철순 2011년 03월 04일 (금) 07:50:28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둑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조병화의 시 <해마다 봄이 되면>입니다. 유례없는 혹한과 폭설을 견뎌 이기고 드디어 봄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성부의 시 <봄>의 마지막 구절처럼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그런 봄을 다시 맞으니 삶도 새 출발을 맞는 것 같고, 봄처럼 부지런하게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느끼는 것, 느낄 만한 것들을 먼저 대신 말해 준 시들이 있으니 다행스럽습니다.

그런 시를 자주 만나는 공간이 지하철입니다. 어쩌다 아주 좋은 시를 만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사진으로 찍거나 수첩에 제목과 시인의 이름을 메모한 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다시 읽곤 합니다. 요즘은 당연히 봄을 노래한 작품을 만나고 싶어지는 때입니다. 서울시도 새 봄을 앞두고 2월에 이미 지하철의 시 1,000여 편을 교체했다고 합니다. 시 자체를 다른 걸로 바꾼 게 아니라 위치를 바꾸었다니 엄밀히 말하면 교체라고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너무 오래 같은 시를 읽어 식상해지는 것은 좀 덜 수 있게 됐습니다.

서울 지하철의 시는 2008년에 처음 등장한 이후 스크린 도어가 확대됨에 따라 계속 늘어나 지금은 293개 전체 역에 4,500여 편이 새겨져 있습니다. 스크린 도어의 투명 유리판에 붙여진 시는 ‘시가 흐르는 서울’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서울의 지하철역은 시집입니다”라는 말로 일상 속의 문화향유 정책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모든 시가 다 만족스러울 만큼 빼어난 것은 아니지만, 늘 이용하는 노선이나 역이 아닌 곳에 가면 일부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스크린 도어를 훑어볼 만큼 나도 지하철 시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하철의 시는 1986년 런던에서 첫 선을 보인 이래 세계적으로 번져 지금은 아일랜드 더블린, 호주의 아델라이드 멜버른 시드니,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독일 슈투트가르트, 스페인 바르셀로나, 그리스 아테네,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중국 상하이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 지하철 시가 등장한 것은 시기적으로 이른 편은 아니지만, 노선 수와 역이 많아 규모 면에서는 다른 도시들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방 각 도시에서도 서울시를 본떠 지하철 시를 올리기로 하고 준비 중입니다.

서울시는 시인협회 등 문인 단체에 의뢰해 시를 추천토록 했고, 이에 따라 2009년 8월부터 시인 1,340명이 자신들의 작품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1편만 추천해 달라는 주문과 달리 시집을 통째로 보내거나 3편을 추천한 분들도 많아 어떤 시인의 경우는 여러 작품이 스크린 도어에 올라 있습니다. 서울시가 지급한 사용료는 1편에 5만원에 불과하지만, 작품이 소개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돈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서울시가 이 사업을 위해 쓸 수 있는 예산은 1년에 1억5,000만원 정도라니 많은 돈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돈만으로도 좀더 의미 있게 지하철 시를 운영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몇 가지 주문을 하고 싶습니다. 우선, 스크린 도어의 공간적 제약 때문에 긴 시를 올릴 수는 없겠지만, 작품을 좀 더 잘 골랐으면 합니다. 고등학교 교실 환경미화를 한 것 같은 수준의 유치한 작품에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시는 시인들이 추천한 작품을 어떻게 심사하느냐고 말하지만,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교과서에 나오는 대가와 일류의 작품, 많은 사람들이 잘 아는 시를 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시인의 작품으로 한정해 소개해 주기를 바랍니다. 어떤 역에서는 중국 당(唐)의 시인 유종원(柳宗元ㆍ773~819)의 작품이 눈에 띄던데, 千山鳥飛絶(천산조비절) 萬逕人踪滅(만경인종멸) 孤舟蓑笠翁(고주사립옹) 獨釣寒江雪(독조한강설)이라는 <강설(江雪)이라는 시를 한자도 없이 한글로만 번역해 놓았습니다. 번역도 썩 잘된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틀리지 말아야 합니다. 2호선 을지로 4가역에 있는 박숙희라는 시인의 작품 <사색>은 ‘회색빛 새벽을 밝히는 태양은 떠올으건만 진남빛 하늘을 내 마음 물드리고’ 이렇게 돼 있습니다. 태양은 떠오르는 것이고, ‘진남빛 하늘을’은 ‘하늘은’의 잘못입니다. ‘물드리고’도 ‘물들이고’라고 써야 맞습니다. 시 한 편에 이렇게 틀린 게 많은데, 이걸 쓴 시인은 그것도 모르고 있는 게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지하철이 시집이라면 더 멋지고 의미있게 만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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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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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3)
바람만 조금 잦아들어도 금방 봄이 온 듯하여 반갑기 그지없는 이즈음 입니다.이런 봄날에 지하철 역사에서 봄시 한 편 읽는 호강을 어디에 비기겠습니까?
여담입니다만 저는 첫 봄을 지하철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다가 처녀의 뽀얀 맨살 (얇은 스타깅을 신은)종아리에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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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9 2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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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그건 남자들이 발견하는 건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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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1 17: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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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31)
지하철에서 싯귀를 읽고 무료함을 달래었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
3호선 경복궁역은 항상 청결해서 감사하며 이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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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5 17: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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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121.XXX.XXX.16)
네, 저도 그곳이 좋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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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5 23: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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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지난 번 한국에 갔을 때는 없었는데 몇년 전부터 그런 멋진 일을 하고 있군요. 이곳 호주 지하철 (열차)은 이마고 몸뚱이고 온통 낙서 투성이라 고상한 시는 커녕 읽고 싶지 않아도 추잡한 욕설을 대하지 않을 수 없으니 사뭇 대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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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5 14: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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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121.XXX.XXX.16)
얼른 다시 오세요. 밥 한 잔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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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5 23: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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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직 (121.XXX.XXX.16)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생략하옵고, 지하철 시를 대한지 2년정도 되었고,관계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어으며, 서울시가 문화도시라는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우로 한정하여, 문학성이 부족 하였던지 고등학생 과정의 시는 무쇼ㅡㄴ 의미인지 입시용으로만 취급되였고, 오로지 유경환 씨의 "나비" 한편으로 40여년동안 일관한 후 최근에서야 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서울 시민이 그렇다고 가정 한다면 보다 폭 넓게 시를 대 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님같이 식견이 높고 전문적인 분께서 지하철 시가 일반 시민에게 생활의 활력소, 마음의 여유를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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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5 10: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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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세 (121.XXX.XXX.16)
너무나 좋은 의견입니다. 제도적 장치속에서 좋은 시를 골라 올리면 시민의 정서 에도 많은 도움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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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5 10: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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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 (211.XXX.XXX.129)
공감합니다
절묘합니다
이창섭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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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4 15: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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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동 (211.XXX.XXX.129)
담연은 정말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 맞구려. 눈에 보이는 글은 담연의 머리로 직행하고 기억하고 심사숙고하니 과연 본바탕에 무엇이 있는지 알것 같군. 나는 전기를 전공하여 가는 곳 마다 전봇대나 변전소 아니면 건물 속의 배전시설이 눈에 잘 띤다오. 음악을 하는 친구 녀석은 길거리 악사를 보아도 그냥 지나가지를 않고 미술을 공부한 아들 녀석은 거리의 포스터도 예사롭게 안 보니 자기 영역을 보전하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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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4 1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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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덕 (211.XXX.XXX.129)
임주필. 건강하시지요?잘읽었습니다.삭막한 땅속을 따스하게 만드는 시가 반갑기도 하지요. 옥의 티. 잘못되거나 틀린 것이 아주 가끔 눈에 보여 서울시에 전화하기도 했었지요.곧 바로잡아 지길 기원합니다.신현덕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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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4 09: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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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 (211.XXX.XXX.129)
정말 지적하신 것들에 두루 공감합니다. 그런데 시가 유리 겉에 있어 못된 이들이 장난을 친 것도 보았습니다. 싹을 씩으로, 와를 외로, 고를 그로, 어떤 것은 아예 글자가 무슨 글자인지 알지도 못할 것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지하철 역에 이 일을 알린지 석달 만에 고쳐진 것을 보았습니다, 어찌 다행스럽든지요. ........저 울산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정진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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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4 09: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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