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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임철순 2007년 04월 16일 (월) 09:36:22

지난 일요일 아침, 남산 순환도로를 걸었습니다. 공기는 상쾌했고, 간밤 내린 비에 더 곱게 씻긴 벚꽃 목련 진달래가 저마다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답다는 말에 뭔가 수식어를 얹고도 싶지만 그저 아름답더라고 말해 두고 말겠습니다.

함께 걸은 분은 꽃과 나무마다 막힘 없이 설명해 주는 ‘식물박사’였습니다. 남산에 메타세콰이어를 촘촘하게 심은 무지, 산수유와 생강나무의 비슷한 점 다른 점, 라일락은 알면서 수수꽃다리를 모르는 한국인들…. 기업 일을 하면서 언제 그렇게 해박한 지식을 쌓았는지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나이가 들수록 꽃보다 나무가 더 좋아진다”는 말이었습니다. 바로 이유를 물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나름대로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강대 영문과의 장영희 교수가 <영미시 산책>이라는 칼럼에 소개한 시 중에 조이스 킬머(1896~1918)의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를 내 결코 보지 못하리/…온 종일 하느님을 바라보며 잎 무성한 두 팔 들어 기도하는 나무/…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만들지만 나무를 만드는 건 오직 하느님뿐…’ 이런 내용입니다.

장 교수는 이렇게 썼습니다. ‘때로는 나무가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자기가 서야 할 자리에서 묵묵히 풍파를 견뎌내는 인고의 세월이, 향기롭지 않지만 두 팔 높이 들어 기도하며 세상을 사랑으로 껴안는 겸허함이 아름답습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달이 걸리고 해가 뜨는 나무는 신만이 지을 수 있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로 시작되는 영문학자 이양하의 명수필 <나무>에 담긴 생각과 비슷합니다. 대지에 뿌리를 박고 하늘 향해 팔을 들어 올린 나무는 동양에서든 서양에서든 문학작품 속에서 곧잘 사람의 모습으로 의인화하곤 했습니다.

나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삶의 아름다움을 아는 것과 같지만, 지금 말하려는 것은 사실 나무가 아닙니다. 나무만 가지고도 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말하고 싶은 것은 ‘나이가 들수록’, 이 부분입니다. 어떤 방식과 모습으로 나이가 들고, 나이가 든 뒤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나이든 사람들의 삶의 모델로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꼽을 만합니다. 그는 <나이 드는 것의 미덕>(The Virtues of Aging)이라는, 제목 자체가 상징적인 저서에서 ‘대학시절과 은퇴 이후, 인생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기는 이렇게 딱 두 번’이라는 것을 70대에 자각했다고 말합니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면서, 무주택자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운동, 외국인들을 초대하는 ‘우정의 힘’ 민박프로그램을 이끄는 카터는 “나이든 마흔보다 젊은 일흔이 낫다”고 말합니다.

그런 삶은 사실 은퇴 이전부터 준비돼야 합니다. 퇴직한 선배 한 분과 최근 점심을 먹다가 인상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골프를 칠 때 바람이 불면 젊어서는 짜증이 났는데, 지금은 바람에 맞춰 샷을 하려고 노력한다, 꽃을 떨구어 열매를 맺게 하려고 바람이 부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까다롭고 괴팍하다는 인상까지 주던 분이어서 좀 놀라웠습니다. 60대 후반을 넘어가니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인지, 오랜 신앙생활 덕분인지,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름을 대면 금방 알 만한 여성명사 한 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일이 있습니다. 나이 예순을 넘고 보니 모든 게 그렇게 편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삶의 고비와 갈피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접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분은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그런 기분인가 봅니다.

또 하나, 제자백가를 300여 수의 한시로 지어 최근 책으로 낸 철학교수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이 50대가 되니 혼란스럽지 않아 더 좋다”고 말했습니다. 잘 아는 대학 후배인데, 그 말을 읽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뭘 어떻게 했길래 혼란스럽지 않게 됐을까 하는 의문 때문입니다.

나이와 인간의 삶에 대한 말씀 중에서 공자의 말씀은 항구불멸의 고전입니다. 공자는 30에 일어서고 40에 불혹이요, 50에 지천명하고 60에 이순하며 70에 종심소욕불유구(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고 자신의 삶을 요약했습니다. 공자 말씀은 진짜 공자 말씀입니다. 베토벤은 60, 70대를 경험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의 일기 한 대목에 “나는 이제 서른살이다. 인간으로서의 전 역량을 드러내야 할 때이다”, 이런 말이 나옵니다. 30은 일어서는 시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대체 뭐가 불혹이고 어떻게 지천명이라는 말입니까? 불혹은커녕 세상의 온갖 것에 아직도 홀리고 시달리고 부대끼는 걸 보면 나는 오히려 40에 다혹(多惑)이라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50대에 천명을 알기는커녕 대체 나의 천명이 뭔지, 究天命(구천명) 問天命(문천명)이라야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키면 나는 한 번도 젊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젊다는 게 참 싫었습니다. 그 미숙하고 어리석고 분별없음, 무엇이든 행동을 해야 하는 구속감, 덧없고 허망한 감정소비 이런 것들이 참 싫었습니다. 빨리 나이 들고 싶었고, 세상만사 얼른 졸업하고 산 위에 편히 올라 앉은 달관도사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나이 들면서 이젠 철이 들어야 할 텐데, 아직도 한참 말 안 듣는 나이인 것처럼 거꾸로 퇴행현상을 겪는 것도 같고, 철들자 마자 노망 나는 경우가 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어쨌든 나도 꽃보다 나무가 더 좋아지도록 앞으로 노력해 보겠습니다.

(2007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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