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칼럼 | 게스트칼럼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지만…
이상대 2011년 03월 08일 (화) 00:11:28
무엇이든 싸게 사려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고들 합니다.

주기적인 검사가 필요하다 하여 어쩔 수 없이 다시 병원에 갔습니다. 작년 7월 암 수술 후 두 번째입니다.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약을 하였기에 접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의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별다른 이상이 없다면서 이번에는 6개월 후에 오라고 하였습니다. 별 이상이 없다니 다행이었습니다.

처방전을 들고 나오는데 여러 사람들이 약국으로 안내하겠다며 서로 자기 차를 타라고 법석을 떨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가까이 있는 차를 타고 약국으로 갔습니다.

손님이 적어서 바로 약이 나왔습니다. 영수증을 확인해 보니 339,610원으로 지난번보다 9,610원이 더 붙은 것 같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한 알에 얼마인지 확인해 보니 낱알 값은 지난번에 샀던 약국 것과 같았습니다. “그럼 덧붙은 9,610원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조제료랍니다.

여태껏 약을 사면서 조제료를 따로 받는다는 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인지라 “지난번에 간 약국에서는 조제료를 받지 않았던 것 같은데…”라고 물었더니 “아마 받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모든 약국에서 조제료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고 대꾸했습니다. “……”

곰곰이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약을 팔겠다고 차로 안내까지 하면서 다른 약국에서는 받지 않는 조제료를 받다니… 차로 안내할 정도면 가격도 싸게 해 줘야지, 안 받는 곳도 있는데 굳이 조제료를 받으면 되는가? 보험 혜택도 없는 고가의 약이라 안 그래도 속이 쓰린데…’하며 눈치를 살폈으나 “우리 약국에선 조제료를 받습니다.”하는 당당한 대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사정을 더 알아 보고 필요하면 환불한다는 조건으로 약국을 나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집에 지난번 영수증이 있어 확인해 보니 역시 조제료는 없었습니다.

하찮은 액수일지 모르지만 약국이 밀집한 곳에서 약국에 따라 조제료를 받고 안 받고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여겨 확실한 방침을 알아 보려고 건강보험공단에 전화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지난번 약국에 전화하여 이것저것 확인하면서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 규정상 조제료를 받는다.
2. 영수증에 조제료로 명시하지 않지만, 각각의 약값에 조제료가 붙는다.

문외한이라 조제료의 부과 이유를 잘 모르지만, 여러 가지 약을 병에서 꺼내어 개별 봉지에 넣어 밀봉이라도 하여 주면 몰라도 포장된 채로 팔면서 조제료를 받는다는 게 선뜻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의약 분업을 하면서 의사(처방전)와 약사(조제료)의 수입만 보장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종로의 대형 약국에선 싸다는데 그곳에 가보자.’ 그래서 약을 샀던 약국에 들러 환불을 받고 그길로 종로에 갔습니다.

종로 5가에 오니 약국 간판이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우선 약값을 알아봐야 하는데 몇 곳을 그냥 지나치다가 용기를 내어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약국마다 약값이 조금씩 달랐을 뿐 아니라 심한 곳은 한 알에 2,000원(개당 10,000~12,000원)이나 더 비싸기도 하였습니다.

괜히 온 것 같아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이왕 왔으니 100mg짜리 약을 대충 반으로 나눠 이틀에 반알(50mg) 씩 복용하는 게 성가시고 양도 부정확할 듯해서 조금 더 지불(개당 50mg은 6,000원, 100mg은 11,000원)하더라도 50mg짜리로 사려고 했으나 100mg으로 처방이 되어 불가하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같은 100mg을 조제료 없이 330,000원에 사고 말았습니다. 지불한 돈으로 봐선 헛걸음만 한 꼴입니다.

염치불구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발품을 팔아 알게 된 것은, 병원 처방약은 값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종로에 있는 약국에서는 대부분 조제료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동대문운동장역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바뀐 것도 오래인지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둘러보고 집으로 오는데 도심을 너무 돌아다닌 탓인지 졸음이 와 혼이 났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것에 고무되어 신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글쓴이 이상대님은 경북 영주 태생의 농업인입니다. 육군 장교 출신으로 1988년 가을부터 전북 무주에 터를 잡아 자연 속에서 자연인으로 마음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처음엔 가축, 주로 염소를 방목 사육하다가 정리한 후 지금은 소규모 영농을 하고 있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