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벌써 미수(米壽)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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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벌써 미수(米壽)라는데

황경춘

2011년 03월 09일 (수) 01:13:53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새 또 한 번의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여든여덟이시니 이번에는 미수(米壽)잔치’라는 말이 아이들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매주 만나는 대학 선배 두 분은 3년 전에 미수를 맞이하였는데, 그 때만 해도 저 자신은 아직 먼 훗날의 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작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딘지 쑥스러운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원래 미수니 졸수(卒壽)니 백수(白壽)니 하는 것은 이웃나라에서 유래된 것으로 우리 고유의 생일행사는 아니라고 타이르고, 또 일본은 나이를 만으로 계산하니 그런 점에서도 금년에 해당되는 일이 아니니 이번에도 예년처럼 조용히 지내자고 했습니다.

제 말을 받아 아이들이 계획한 것이 가족여행이었습니다. 세 대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시간이 나는 가족 열한 명이 2박3일의 시골 여행에 나섰습니다. 강원도 홍천 어느 스키장에 있는 대형 콘도에서 준비해 간 음식을 중심으로 가족끼리 오붓하게 주말을 보냈습니다.

우리 식구들 생일은 주로 한 해 상반기에 몰려 있어 새해 들어 벌써 이번이 네 번째 생일 모임이고, 바로 이틀 전에는 선친 기제사를 모셨으니 다섯 번째로 많은 식구가 한자리를 한 것입니다. 가풍이라 할지, 예부터 명절 생일 기제사에는 거의 온 가족이 모이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재산이라고는 작은 집 하나밖에 없는 몸이지만 이런 행사에 많은 가족들이 건강한 몸으로 모여 화목하게 한 때를 보내는 것을 우리 부부는 남부럽지 않은 행복으로 여깁니다. 모임이 끝난 뒤에는 언제나 행복한 시간이었다라는 짧은 글을 제가 반드시 인터넷 가족 카페에 올려 이런 화목한 분위기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나라에서 주는 경로우대증을 받은 지도 오래 되고 지하철도 경로석을 이용하고 있지만 저 자신은 나이에 그리 큰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새삼 생일을 맞이하니 문뜩 나이를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이분은 동네 목욕탕에서 갑자기 옆 노인으로부터 “난 23년생인데 선생은 몇 년생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아 30년생이라고 대답했더니 “좋은 때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같이 있던 세 사람이 크게 웃었습니다. 이 노인은 무슨 뜻으로 같은 80대 초반의 자기보다 크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사람에게 ‘좋은 때‘라고 말했는지 모르지만, 저 자신은 열 살 정도 젊은 사람들과의 육체적 정신적 차이를 그리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아직은 건강에 큰 불편이 없는 덕분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 되도록 노인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노화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그렇게 힘쓰고 있습니다. 많지 않은 모임 같은 데에도 되도록 참석을 하고 가끔은 2차로 노래방에 가기도 합니다. 짧은 국내여행도 꽤 자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거의 모든 자리에서 제가 최연장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어느 때부터인지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나이로 인한 콤플렉스가 생긴 것입니다.

나이 많다는 것이 무슨 벼슬도 아닌데 모인 자리에서 가끔 특별한 소개나 대우를 받아 민망할 때가 생깁니다. 연장자에 대한 자연스러운 예의는 고마운 일이지요. 그러나 지나치게 마음을 쓰는 상대가 거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대학 선배와의 만남에서는 유달리 홀가분하고 잔심부름은 솔선 도맡아 합니다. 그러면서 난청으로 통화에 어려움을 겪고 흐린 기억력으로 고생하는 두 분을 무척 안쓰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한국동란 때 피란수도 부산에서 발간된 영자신문에 성균관대학 영문과 교수였던 허현 선생이 주필로 계셨습니다. 거의 매일같이 ‘HH’라는 필명으로 영문 칼럼을 쓰신 이 노교수는 신문제작이 끝나면 20대의 젊은 우리와 변변치 않은 안주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떠드는 잡담을 즐겼습니다. 중국 고전에도 조예가 깊은 박식과 천진난만한 소년 같은 그의 소탈함은 바로 젊은 우리가 바라는 우리의 미래상이었습니다. 가끔 제자로 보이는 여학생들과 환담할 때 보이는 그의 젊음이 몹시 부럽기도 했습니다.

허 교수의 그 당시 나이는 아마 60대 후반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별 신기하게 생각할 일도 아닌데, 살벌한 전시 분위기에서 항상 온화한 표정으로 매일 같이 구수한 영문 칼럼을 써내는 허 선생님은 우리의 인생 스승이었습니다. 우리가 나이 들어 과연 저렇게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환도 후 직장 관계로 자주 뵙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얼마나 남아 있는지 가늠할 수 없는 여생이니, 이제는 아름답고 밝은 것만을 보며 살아가겠다는 것이 이 늙은이의 조그마한 자기중심 이기주의입니다. 가능성 있는 소망을 최소한으로 줄여 만사에 무리 없이 안전운전을 기하려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문상오 (203.XXX.XXX.238)

moonso1888@hanmail.net 문상오 2011-03-22 20:18:43 O

미수를 축하합니다. 부족한 이사람도 10세 부족한 78세 입니다. 좋은 때인듯합니다. 아직 88세가 멀어서 인지 좋은 때란 실감은 없읍미다. 이제는 건망증이 심하고 사지가 근력이 부족하고 지구력이 없어 늙었음을 실감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아직도 노인병원에 진료차 나가고 있읍니다. 사람마다 건강상태가 다르니 무어라 말할수는 없으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느낌이 다를것같읍니다. 육신적 나이도 중요하겠지만 정신적 나이가 더 중요한것같읍니다. 자신감과 너그러움과 행복감으로 살아가는 것이 조을것 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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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3 15: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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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芝雲 (122.XXX.XXX.24)

늦게나마 '米壽'를 경하드립니다.
미수란 호칭도 더더욱 아름다워 '美壽'라고도 고쳐 부르고 싶습니다.
내내 다복하시기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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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4 11: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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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203.XXX.XXX.186)

감사합니다. 더욱 정진하여 건강하고 보람있는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ㅏ겠습니다. 아년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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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4 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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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운 (98.XXX.XXX.112)

그간 안녕하십니까?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여기로 인도가 돼 들어왔다가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일교차 조심하시고 내내 다복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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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7 19: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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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174.XXX.XXX.138)

행복하고 흐믓한 얘기입니다.
그저 건강하신 모습에 감사할 뿐이랍니다.
더욱 활발하신 모습을 보여주시길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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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3 0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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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203.XXX.XXX.186)

오랜 만에 뵙겠습니다. 늘 글 읽어주시고 도움 말 주셔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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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4 14: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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