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안진의 마음결
     
보지 않을 권리
안진의 2011년 04월 12일 (화) 02:36:20
아버지는 종이신문을 넓게 펼치시고 숙독하셨습니다. 제가 바짝 붙어 들여다보면, 아버지는 몇 장의 지면을 당신 앞으로 당겨놓고 나머지를 밀어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읽기가 끝나면 비로소 신문을 바꿔보았습니다. 신문을 읽은 후에는 맘에 드는 기사나 간단한 사설을 오려 붙이고, 짧은 소감을 기록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신문을 봅니다. 그런데 아이 옆에서는 기사읽기가 두렵습니다. 아이가 가까이 오기라도 하면, 자극적인 문구나 선정적인 사진은 없는지 재빨리 검열을 하거나 화면을 닫습니다. 종이신문은 공부하는 공간이기도 했는데 인터넷으로는 공유하기가 어렵습니다. 기사와 상관없는 낯 뜨거운 광고들 때문에 아이가 포털 사이트를 열 때도 긴장되기 마련입니다.

선정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화면 좌우에 늘어선 배너광고와 기사 중간 중간에 있는 삽입광고까지, 기사를 보는 건지 광고를 보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광고는 창 닫기를 하려고 하면 도망 다니기도 하고, 클릭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상한 사이트로 데려가는 어이없는 일도 빈번합니다. 당연히 글 읽기에 집중하기 어렵고, 마우스를 움직이며 계속해서 광고를 닫아야 하는 번거로움에 스트레스만 가중됩니다.

웹상에서 고정된 위치를 갖는 일반 배너광고보다 삽입광고가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어서 삽입광고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웹사이트나 기사에 걸맞은 삽입광고가 효과를 볼 수도 있겠지만, 삽입광고는 기사 숙독을 방해하는 주범입니다. 광고주나 광고기획자들이 사용자를 이해하고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가치를 느껴보는 경험디자인을 고려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무조건적인 노출 빈도수가 마케팅의 성공을 부른다는 것도 오산입니다. 요즘과 같은 인터넷 시대는 원하기만 하면 스스로가 필요한 정보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웹상의 무차별적인 노출이 얼마만큼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방적으로 눈을 자극하고 피곤하게 하는 광고들은 더더욱 불쾌감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물론 광고의 중요성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공해로 다가설 때는 심각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광고의 노출은 인터넷상에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길을 걷거나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리에도 승강장에도 벽보와 전광판까지 광고더미 속에 있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은 어느덧 이 광고들을 열심히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떼는 순간 잊힐 내용임에도 그 광고를 보고 있습니다.

세상이 나를 소비자로만 보는 듯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길을 걷거나 지하철을 타고 조용히 사색을 하는 것은 광고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광고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광고야말로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쏟아지는 광고 안에서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사라지고 소비자로서의 나만 남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인간의 시지각에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순응이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자극을 바라본 후에 눈을 감거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잔상이 생깁니다. 지금의 시대 우리의 눈은 쏟아지는 광고환경에 순응되어 갑니다. 무의미한 자극들이 광고를 보았던 순간이외에도 계속적인 잔상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볼 권리도 있지만 보지 않을 권리도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보지 않을 권리를 행사하기가 참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보지 않아야 행복해지는 욕구는 충족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시력이 좋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안경을 벗어서 세상에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흐릿하게 보았을 때입니다. 보지 않을 권리도 보장받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2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인내천 (112.XXX.XXX.244)
^^ 보지않을권리, 생소한 권리 주장이신데 생각해보니 백번 지당한 주장 같습니다. 웹상에서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요동치는 광고는 정말 짜증나고 얼마나 눈을 피로하게 하는지요.
더 부아가 치미는 것은 "닫음"으로 또는 X로 표시함 될 것을 모두 c lose로 표시해서 영어에 까막눈(?)인 사람은 닫지도 못하게 하고, 조금만 비켜나면 엉뚱한 창들이 열려 당황할 때가 비일비재하니까요. 당리당략에 찌든 국회에 "보지않을권리" 제정을 청구함 좋겠죠?
답변달기
2011-04-14 10:43:21
0 0
두샤디 (124.XXX.XXX.99)
I couldn't have agreed with you more.
답변달기
2011-04-12 10:17:34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