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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기억하자
이종완 2011년 04월 13일 (수) 01:21:51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한 영화 <피아니스트>는 매우 감격스러운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입니다. 나치 독일이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를 연상케 하는 비극적 걸작품입니다.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이라는 젊은이는 구사일생으로 죽음을 면하고 88세가 되기까지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그는 버려진 아파트에서 숨어 살다가 독일군 장교와 마주칩니다. 장교가 그의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자 피아니스트라고 대답합니다. 장교는 한 구석에 있는 피아노로 그를 안내하며 무엇이든 하나 연주해 보라고 말했고,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완벽하게 연주합니다.

장교는 그가 숨어 사는 유대인임을 알고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지만, 곧 먹을 것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조금만 기다리면 모든 게 끝날 것이라고 위로하며 외투를 벗어주고 사라집니다. 장교는 스필만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알았으나 그는 장교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 헤어지고 곧 수복이 됩니다.

여기서 내가 몹시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굶어 죽기 직전에 생명을 구해준 그 장교를 스필만이 나중에 왜 찾지 않았으며 은혜를 잊고 갚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장교의 이름을 알아내고 은혜를 갚을 생각이 있었더라면 어렵지 않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스필만도 생명의 은인인 그 장교의 은혜를 갚지 못한 데 대한 자책과 후회를 했을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사람이 과거를 기억하고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과거를 잊고 은혜를 갚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1)은혜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을 •때에는 은혜를 고맙게 여겼으나 이제 그 아쉬운 마음이 사라지니까 은혜에 대한 고마운 생각이 사라진 것입니다. 고마운 마음이 없어지면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갚을 생각은 더더욱 없게 됩니다.

2)아쉬웠던 마음이 없어지고 교만해진 때문입니다. 처음에 가졌던 순수한 생각은 없어지고 마음이 무뎌지고 각박해진 것입니다. 한국이 가난했을 때 중동으로 일자리를 찾아가는 노무자들이 난생 처음으로 대한항공 여객기를 타고 갈 때에는 승무원에게 고맙다면서 고분고분했는데 몇 해 후 집에 돌아올 때에는 마음이 교만해져 승무원에게 술을 더 달라고 무리하게 요구하고 거절 당하면 이 년 저년 폭언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교만해진 것입니다.

3)문제가 해결돼 아쉬운 생각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젠 돈도 좀 벌었으니까 감사한 생각보다는 욕심만 더 커져 웬만한 건 고맙지도 않고 오히려 불평 불만이 더 많아졌습니다. 돈이 없고 가난했던 때에는 큰 욕심이 없었는데 이제 돈이 좀 생기니까 욕심이 생겨 오히려 불행해진 것입니다.

4)문제가 해결돼 안일해진 때문입니다. 의식주가 해결되기 전에는 생각이 단순하고 목적이 뚜렷했는데 먹고 사는 급한 문제가 해결되고 배가 부르니까 잡념과 고민이 생겼습니다. 한국이 가난하고 사람들이 의식주를 위해 노력했을 때에는 범죄가 적었는데 먹고 살게 되니 쓸데없는 생각과 잡념이 들기 시작해 헛되고 망령된 짓을 하게 됐습니다. 요즘 범죄하다가 붙들린 젊은이들에게 왜 범죄를 했는가 물으면 배가 고파 범죄한 게 아니고 유흥비를 벌려고 범죄했다고 대답합니다.

사람이 과거를 잊어버리면 배은망덕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이 공산 침략과 6ㆍ25 동란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세계 경제 13위를 차지하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작년이 6ㆍ25 60주년 되는 해인데 한국 국민, 특히 젊은이들이 6ㆍ25 동란, 동족상잔의 비극을 잊어버리고 미련하고 무식한 착각으로 우리의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근원이 무엇인지 지난 날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잊어 버린다면 바보나 마찬가지입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있는데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해야 합니다. 46명의 아까운 젊은이들을 희생시킨 천안함사건 겨우 8개월 후에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나 군인 둘과 민간인 둘이 죽고 수십 명이 다치고 막대한 재산 피해를 보았습니다. 이런 비극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인가?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인가?

천안함 격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은 북한이 우리를 테스트한 것입니다. 군함 한 척을 가라앉히고 군인들 수십 명을 죽이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우리가 얼마나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가를 테스트한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6ㆍ25의 참상과 비극을 기억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 비극을 직접 경험한 늙은 세대가 그럴 때 그 후손들, 젊은 세대는 오죽하겠습니까? 늙은 세대는 망각의 세대이고 젊은 세대는 무지의 세대입니다. 우리의 과거도 모르고 현재도 모르고 미래는 더 모릅니다. 386세대는 3ㆍ1절도 모르고, 8ㆍ15도 모르고 6ㆍ25도 모릅니다. 천안함과 연평도에서 우리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정신 못 차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은 어리석고 무책임한 소리입니다. 과거를 기억해야 미래도 있습니다. 한국이 과거에 너무너무 가난했으나 요즘 경제적으로 성장하니까 과거를 잊어버리고 흥청거리며 전 세계로 관광 여행이나 다니고 많은 공무원들이 연수라는 이름으로 외유를 다니면서 귀중한 외화를 낭비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어려웠을 때 남의 도움을 받았는데 지금은 형편이 좋아졌으니 남들을 도와 은혜를 갚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불란서 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는데 신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도의적 의무가 크다는 뜻입니다. 국민들의 수준은 낮은데 경제적으로만 발전했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피상적 물질적 경제 발전에 도취되지 말고 우리의 과거를 똑똑히 기억하고 우리의 현주소를 알아야 합니다.

이종완  : Ejongwan@hotmail.com
1932년 중국 선양(瀋陽) 출생. 8세 때 귀국, 감리교 신학대 졸. KBS와 CBS 근무. 미국 Union 신학대 대학원 졸업(1959) 후 Voice of America 근무. Maryland International Academy 컴퓨터과 졸(1967). American Airlines에서 Computer Systems Analyst(1994), Tulsa 한인 침례교회 영어 목사로 시무. 1998년부터 옌볜(延邊) 과학기술대 영어교수로 봉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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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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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158)
두어달 전에 제가 다니는 교회에(청와대 근처 옥인교회) 연변 과기대 분들이 주일날 오셨는데 이종완님이 연결되어 반가웠지요.
가끔 강한 메세지를 컬럼을 통해 받아서요.
과거,현제,미래는 동떨어지지 않고 일직선상에 놓여있는 직선이지요.
내부(국내)에서 잘 안보이는 것이 밖에서는 잘보이지요.
역사의 가운데 홀로 서계신 이력에 존경심을 보냄니다.
건강하싶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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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2 10: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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