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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에 가면
방석순 2007년 04월 20일 (금) 16:50:48

요즘처럼 햇볕 따사로운 봄날이 경주 남산을 오르기엔 제격입니다. 산이래야 북쪽 금오봉(金鰲峰 468m)에서 남쪽 고위봉(高位峰 494m)에 이르는 주능선이 자라 등처럼 완만해 남녀노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오를 수 있는 높이입니다.

경주 남산에 오를 땐 값비싼 등산화도, 무거운 배낭도 필요치 않습니다. 마른 흙길에 덜 미끄러운 신발 한 켤레, 물 한 병이면 족합니다. 오히려 작은 노트나 수첩, 그리고 볼펜 한 자루를 준비한다면 남산행은 더욱 즐거워질 것입니다.

4월 둘째주말. 화창한 봄볕 덕분에 남산 길은 남녀 젊은 학생들, 초등학생 어린 자녀들의 손목을 잡은 부부, 유니폼 조끼를 걸친 직장인들, 고교 동창쯤으로 보이는 지긋한 나이의 남정네와 여인네들로 줄을 이었습니다.

남산은 골마다 언덕마다 돌부처와 불보살입니다. 비바람에 깎이고 오가는 사람들의 손길에 닦여 뭉글뭉글 뭉그러진 부처와 보살의 미소가 세파에 칼처럼 날을 세우고 사는 속인들의 각진 마음을 어루만져줍니다.

불상과 불탑이 서 있는 곳마다 또한 어김없이 만나는 것이 도처에서 모여든 거사님들입니다. 말씨로 보아서는 경주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왔음직한데 남산 골짜기의 유적이나 불가의 언행을 설명하는데 막힘이 없습니다. 부처 앞에 세워놓은 안내문 몇 마디를 옮겨 적고 거사님들의 설명을 추가하면 들고 간 노트는 잠깐사이에 남산 박물지가 됩니다.

냉골서 올라가다 나무그늘에서 만난 아미타불은 앉은뱅이 코 때문에 탐방객들의 미소를 자아냈습니다. 연꽃무늬의 높다란 좌대 위에 우아하게 앉았건만 돌부처의 영검을 믿는 신도들이 코허리를 긁어가는 바람에 앉은뱅이 코가 되고 만 것입니다. 과연 부처가 그들에게 아들을 점지했을까요, 딸을 점지했을까요. 신도들의 극성에 가만 계시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남산의 그 자그마한 산등성이 아래로는 선방골, 얼음골, 절골, 약수골, 산호골, 비파골, 백양골, 용장골…등등 무려 40여개의 골짜기 길이 나 있습니다. 그리고 골짜기마다 등성이마다 118체의 불상과 96기의 불탑과 147개소의 절터가 널려 있습니다. 지마왕릉, 일성왕릉, 경애왕릉, 헌강왕릉 등 왕릉도 13기나 됩니다.

경주 시내에서 시멘트와 콘크리트 건물더미와 자동차 매연에 갇혀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왕릉과 궁성터, 석탑과 절들을 보다가 이곳 남산으로 들어오면 살아있는 신라의 혼을 만나게 됩니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경주 시내가 아니라 이곳 남산골에서 더욱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바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부처가 있는가 하면 무릎 아래 뿌리는 바위 속에 박힌 채로 가슴과 머리가 바위에서 벌떡 일어나 서 있는 보살상, 높다란 연꽃무늬 좌대 위에 근엄하게 올라가 앉은 여래상 등등. 신라인들은 그들이 꿈꾸어온 불국정토를 남산의 바위 속에 재현하고 있습니다. 탐방객들의 시끄러운 줄에서 잠시 벗어나 나무그늘에 앉아 이마에 맺힌 땀을 식히노라면 바람결에 돌부처의 법문 한 구절이라도 들려올 듯합니다.

경주 남산에 부처와 보살이 많다 해서 남산이 불교인들만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남산의 돌부처나 돌탑들은 아득한 옛날 신라인들이 현세의 안녕과 내세의 소망을 기원했던 정신생활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옛 문화유적에 새삼스레 종교적인 의미나 가치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군데군데 머리 부분이 없어진 돌부처에 대한 구구한 억측을 들으며 우리의 살아있는 문화역사 교장이 아프간의 그것처럼 오해와 만행으로 손상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는 언덕 3층탑처럼 우아한 좌대 위에 올라앉은 석불은 그 수려한 몸체 위에 당연히 있어야할 지혜를 담은 머리를 잃어버려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이 법정 스님께 보낸 [비오는 날의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수년 전 저와 함께 가르멜수녀원에 가서 강의를 하셨을 때 ‘눈감고 들으면 그대로 가톨릭 수사님의 말씀’이라고 그곳 수녀들이 표현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마음을 비우면 모두가 부처님이요, 모두가 하나님. 마음을 비우면 누구나 천년도 더 전에 경주 남산을 지키던 신라인들의 영혼과 교감하며, 신라의 옛 정취에 흠뻑 젖어드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2007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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