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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국제화
김수종 2007년 04월 25일 (수) 17:07:22

베트남 아가씨를 며느리로 맞아들인 집안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낯선 땅에 시집 온 지 1년도 안돼서 배는 남산만 하게 불었는데 서툰 한국말을 써가며 문화배경이 전혀 다른 가족과 친지들에게 적응하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 그렇게 안쓰럽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최근 내가 아는 집안에 혼사가 있었습니다. 제주도에 사는 40대 총각이 멀리 중국 흑룡강성에서 신부를 맞아들였습니다. 노총각과 젊은 신부가 모두 싱글벙글하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제쳐놓고,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만으로 중국 조선족 여자는 베트남 여자보다 한국 적응능력이 훨씬 뛰어날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개방화와 세계화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득수준이 높은 부유층 및 도시 중산층과 소득수준이 낮은 도시영세민 및 농민층에게 다가온 개방화와 세계화의 현실은 아주 다른 것 같습니다.

도시 중산층에게 세계화는 문물에 대한 개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품, 자본, 정보 및 지식,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과 해외여행 등 선택의 다양성입니다. 그러나 영세민, 특히 농촌사람들에게 다가온 세계화는 반갑기는커녕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당혹스런 변화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전통적 농촌 사회에 불어 닥친 변화는 국제결혼에 의한 가족구성원의 급격한 변화입니다.

대법원이 호적을 기준으로 공개한 ‘국제혼인 현황’에 의하면 작년에 결혼한 8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국제결혼의 76%가 한국남성과 아시아권 여성의 결혼입니다. 말하자면 장가 못가는 농촌 남성들과 아시아 처녀들 간의 결혼입니다. 전남 전북 경북 순으로 국제결혼이 많은 것을 보면 더욱 이런 현상은 뚜렷합니다. 이 비율만으로도 놀라울 정도입니다만 당분간 이런 국제결혼은 늘어날 추세라고 합니다.

이것은 도시 중산층 사람들은 거의 감지하지 못하는 우리 농촌의 큰 사회적 변화입니다. 앞으로 4,5년 지나면 초등학생의 4분의 1이 혼혈어린이들로 채워질 농촌지역도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중소기업이 위치한 도시 공단지역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40만 명 이상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들 근로자들이 돈을 벌고 고국으로 돌아가겠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숫자는 불법체류와 국제결혼으로 한국사회에 편입될 것입니다.

그런데 국제결혼이 파경에 이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불행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어린이들의 한국사회 적응문제입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을 비난하지만 사람이 오랜 문화와 인습에 의해 형성된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버지니아공대의 참극을 불러온 조승희씨의 총격사건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지만, 이민 어린이가 느껴야 했던 인종적 스트레스를 간과할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도 한국전쟁과 그 후 미군주둔을 통해 적잖은 혼혈아가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이들이 큰 사회문제가 된 적은 없습니다. 조용한 유교적 전통사회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런 절제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혼혈의 숫자가 많아지면 모든 게 달라질 것입니다. 이들을 선량한 한국시민으로 키우지 못하면 갖가지 사회문제가 유발될 것입니다.

신문마다 다민족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은 쉽습니다. 미국이야 이민국가니까 그렇지만 식민지를 지배했던 유럽국가들이 인종갈등문제로 겪는 고통은 그들이 대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봅니다. 세계사를 한번 훑어봐도 사람의 이동과 그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이 당대에 고통을 줬습니다. 물론 한 가지 안심이 되는 것은 지금 벌어지는 국제결혼 추세가 다민족사회가 아니라 혼혈사회를 만들 것으로 보이는 점입니다.
그렇더라도 잠재적 위험은 크다고 봅니다.

북한같이 문을 걸어 잠그지 않는 한 인구의 혼합은 추세입니다. 그렇지만 결혼할 상대를 국내서 찾지 못해 외국신부를 수입해오는 것은 당대의 불행이자 훗날 많은 문제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각오해야 합니다.

(2007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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