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하늘_(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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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하늘

방석순

2011년 06월 08일 (수) 03:14:12

엄마 얘기라면 뻔한 거지 뭐, 우리 세대에. 끝없는 희생, 거의 동물적인 사랑, 그리고 마침내는 수명을 다한 우주 공간의 초신성(超新星)처럼 폭발하듯 자취 없이 사라져버리는 존재… 그렇게 무덤덤하게 넘겼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뜻밖에 큰 호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그네들이 우리네 정서를 이해나 할까 하면서.

책을 덮으니 그저 망연한 느낌입니다. 잘 썼니 마니, 감동적이니 아니니 하는 생각에 앞서 그저 속에다 나무토막 하나를 삼킨 듯 답답한 기분이 듭니다.

예상보다 읽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대뜸 2인칭 ‘너’를 내세워 이끌어가는 이야기의 진행도 거북했지만 평생 말 한마디 않을 것 같던 3인칭 ‘당신’이 무거운 입을 열어 더욱 가슴을 짓누르는 기분이었습니다.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 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었거니 하며 살었고나.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들을 사람이 없구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 속의 인물들을 쫓다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다가 뜬금없이 아들며느리까지 떠오르며 혼자서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엄마는 그 속에서 태어나 그 손에서 자라난 모든 자식들에게 바로 세상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엄마는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평생 모든 것을 비워주고 시대에 뒤떨어진 채 껍데기만 남은 엄마는 어느 날 다 자란 자식들에게 잘못된 일에 대한 화풀이 상대, 온갖 허물에 대한 타박의 대상, 성가신 구박덩어리가 되기 십상입니다. 잘 해 봐야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세상살이가 너무 고단하거나 지쳤을 때 비로소 찾게 되는 고향 같은 존재, 그게 우리들이 갖게 마련인 엄마에 대한 인식입니다.

책 속에서 새가 되어 날아온 ‘엄마’의 한마디가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힙니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엄마의 엄마’라니. 정말 까마득히 생각지도 못했던 말입니다. 엄마에게도 당연히 엄마가 있었겠지요. 그리고 엄마는 그 엄마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딸이었겠지요.

자식들이 과연 엄마에게도 그런 꽃 같은 시절이, 하늘보다 푸른 꿈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책 속의 아들 형철이도 딸 지헌이도, 심지어 평생을 함께 살아온 ‘당신’조차도 잃어버린 후에야 까맣게 잊고 지냈음을 알게 된 ‘엄마’, 그 엄마 평생의 외로움과 고통을 뒤늦게 깨닫고 회한에 잠깁니다.

누구나 익히 아는 그저 그렇고 그런 스토리… 그런데도 새삼스럽게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지는 이유는 ‘원래 엄마란 그런 거잖아’ 하고 얼버무리며 끝내 아무것으로도 갚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전란 통에 남편을 잃고 홀로 다섯 남매를 키워야 했던 어머니. 어린 시절 제겐 그렇게 무서운 호랑이가 없었습니다. “어디 가서 애비 없는 호로 자식 소릴 들을 테냐!” 어머니에겐 그게 가장 참지 못할 욕으로 생각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철없던 그 시절엔 다른 아이들처럼 어리광 한 번 제대로 부릴 대상이 없다는 게 언제나 허전하고 섭섭한 일이었습니다.

다 자란 어느 날 무심코 “어릴 땐 엄마가 참 무서웠어요” 했다가 참으로 난감한 경우를 당했습니다. “너희들을 애비 없이 키우려니 내가 남의 집 아버지들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되더구나!” 장성해서도 그런 사정을 이해 못하는 철딱서니 없는 아들에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요. 어머니의 한탄에서 서늘한 회한이 느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지각없고 못난 자식이었습니다. 학교 도시락 검사 때 사발이나 소위 ‘미제 벤또’(미군 야전용 스테인레스 식기)를 꺼내놓고는 얼굴이 벌개져서 집에 돌아와 씩씩거리곤 했었지요. 시험 잘 못 치른 건 참고서를 안 사 주었거나 담임 선생님의 과외(지도)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그렇게 늘 볼멘 아들에게 어머니는 정말 마음속으로 기대했던 것처럼 따스한 말로, 손길로 달래주었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우선 살기에 바쁘니 그럴 여유가 없었을 겁니다. 아니면 하나둘도 아닌 것들을 섣불리 가려가며 다독거리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입학원서를 사기 위해,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서남북 분간도 어려운 서울 장안을 헤매고 다니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무거운 음식 꾸러미를 머리에 이고 몇 시간씩 버스를 갈아타고 또 걸어서 아득히 먼 전방부대의 아들을 찾아왔을 때 그제서야 못나게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겨두었던 서운함 서러움 불만이 봄눈처럼 녹아내리는 걸 느꼈습니다.

철이 들며 더욱 놀랍고도 고마웠던 일은 정말 끔찍하게 부끄러운 잘못에 대해 꾸중은커녕 아예 본 척도 하지 않으셨던 일입니다. 그로부터 까맣게 세월이 흐른 뒤에도 저 자신에게나 다른 누구에게 한마디 옮기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알게 됐습니다. ‘엄마는 다 알고 있구나. 스스로 뉘우치고 고치리라는 걸. 엄마라면 원래 그렇게 하는 거로구나.’

노년의 어머니는 말씀을 멈추고 꿈꾸듯 공상에 잠기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따금 당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내가 하늘을 날고 싶었는데…” 탄식하듯 혼잣말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거의 백세를 사시는 동안 자신과 세월의 변화 속에 엄마나 많은 추억과 회한이 서려 있었겠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어머니에게 날개를 달아드릴 재주는 없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꿈꾸었을 그 하늘을 가늠이라도 해 보고 싶건만 여전히 제겐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김윤옥 (210.XXX.XXX.215)

누구나 엄마 얘기를 할때 비로소 착한 아들, 착한 딸이 되어보는것 같습니다.
마치 고향에 찾아가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같은..
제 어머니는 1.4후퇴로 피난가는 날 몇날 며칠을 밤잠 설치며 명주다듬이를 해서 어린 세 딸을 비단 솜저고리를 해입혀서 피난길에 올랐답니다. 언니가 저보다 생생하게 기억하는 엄마의 별난 패션감각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황당함 같기도한데 그렇게 키운 딸들이 지금 고 점을 조금 닮아있음을 우리 스스로 발견하고 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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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2 22:3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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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21.XXX.XXX.42)

저희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어린 자식들을 키웠다던데 김 선생님 어머님은 더 놀라우신 분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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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4 15: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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