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장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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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장벽은...

김영환

2006년 11월 03일 (금) 00:00:00

17년 전인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공산권 맹주,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정책으로 동유럽에 자유화가 확산되면서 1989년 동독인들은 헝가리 등 인접국으로 탈출을 시작했습니다. 자유를 원하는 수만 명의 시위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는 한 민족”이란 구호가 등장했습니다. 동구권에서 잘 사는 축이던 동독 정부가 체제유지를 위해 꺼낸 카드가 베를린 장벽 개방이었습니다. 그 운명의 패는 붉은 공산주의 바다 속에서 한 개의 작은 점(480KM2)으로 묘사되었던 서베를린에게 독일 통일의 물꼬를 트게 했습니다. 동독 주민들의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장벽이 무너지던 11월10일 베를린의 밤 기온은 발이 시렸습니다. 브란덴부르그 문 앞 장벽 위에는 수만 명의 동베를린 시민들이 빽빽이 서서 서베를린 시민들에게 올라오라고 외쳤습니다. 샴페인과 폭죽이 이곳저곳에서 간간이 터졌습니다. 결코 떠들썩하지는 않았습니다. 서베를린 시민들은 옆에 선 낯선 사람들과 담소하면서 장벽의 붕괴를 축하했습니다.

하루 수백만 명의 동독시민들이 퍼블리카 같은 공냉식 트라반트 차를 몰고 서쪽으로 넘어왔습니다. 라디오방송들은 동독주민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라고 동포애를 호소했고 신문들은 서베를린 지도가 실린 부록을 배포했습니다. 서독은 동독주민들에게 100마르크(당시 약6만원)씩 지급했습니다. 12월 헬무트 콜 총리는 동독 드레스덴을 방문하여 시민들에게 차분히 통일을 기다리자고 연설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연설한 셈입니다. 경호시설은 거의 없었습니다. 동독은 다음해 3월 사상 최초의 자유총선을 치르고 얼마 뒤 서독과 통일을 결의했으며 1990년 10월3일 흡수 통합되어 소멸했습니다. 서독이 1971년12월 동서독 기본조약으로 관계를 정상화하고 동방정책을 펼친 지 약 30년만의 일이었습니다.

통독에는 1조5,000억 달러가 들었습니다. 1990년2월 콜 총리는 모드로우 동독총리를 옆에 앉혀 놓은 양독 정상회담 폐막 회견에서 “통일을 생각할 때 뿌듯하다. 매년 수백억 달러의 무역흑자와 해외투자를 하는 서독에는 경제실력이 있으니 통일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2005년 라이프치히에 완공된 BMW 자동차 공장도 그런 상징의 하나입니다.

남북한은 분단 50년이 넘도록 상주대표부가 없습니다. 양독은 기본 조약을 먼저 체결한 뒤 유엔에 가입했습니다. 2개 국가의 존재가 독일민족의 단일성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며 접촉을 확대하는 것이 통일의 첩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는 최근 들어 접촉은 늘어났으되 공식관계보다 각종 정당 사회단체들이 혼란스럽게 북쪽을 오가는 느낌입니다.

냉전기였던 1961년 서베를린에서 케네디 미 대통령은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공산주의가 미래를 해결한다는 사람들, 공산주의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사람들, 그들을 베를린으로 오게 하라. 공산주의는 사악한 체제지만 경제적 진전을 허용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도 베를린으로 오게 하라. 자유는 나눌 수 없는 것. 한 명의 노예가 존재한다면 다른 모든 사람 역시 자유인이 아니다. 모든 이가 자유로울 때 우리는 시선을 미래로 돌릴 수 있다. 이 도시가 하나 뿐인 그날을 기다리며, 이 위대한 유럽 대륙이 희망과 평화 속에 살아갈 날을 고대하며…. 그 날이 올 때 동베를린 사람들은 그것이 20년 만에 처음인줄 알고 기뻐하리라. 모든 자유인들은 어디에 살건 베를린 시민이다. 그러므로 자유인의 이름으로 나는 기꺼이 말하리라. 나도 베를린시민(Ich bin ein Berliner)이라고.”
서독은 동독 정치범 3만3,755명의 석방과 25만여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34억 마르크(약 2조원)를 동독에 지불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특수사정이라며 인권에 침묵합니다. 왕조에서 식민지, 식민지서 공산왕조로 직행한 북한…. 주민 스스로 일어나 자유를 요구하기엔 동독보다 뭐 하나 나은 게 없는 여건입니다. 자유의 씨앗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니 업자를 바꾼다고 으름장 놓고 일부에서 북한의 현금인출기라고 공격하는 금강산 관광을 햇볕정책 성과라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필자는 베를린 장벽의 조각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휴전선의 철조망을 허물고 베를린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의 관광객들에게 끊어 파는 날은 언제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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