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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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와의 전쟁

김영환

2011년 06월 22일 (수) 05:03:01

부산저축은행 사건으로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힘깨나 쓰는 관련 공직자들의 부패상이 연일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축은행 사건은 전 정권에서부터 이어져온 부패라고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현 정부는 황망하기 짝이 없는 모습입니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 패배한 이유의 하나가 파렴치한 저축은행의 비리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부패가 단기간의 캠페인으로 사라질 리 만무한 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가령 5만원권 발행이 부정부패를 조장할 것이라는 시민사회단체의 반론은 권력에 의해 파묻혀 버렸습니다. 얼마 전 전북 김제에서 마늘 밭에 감춘 불법 도박 수익금 5만원권 110억 원을 굴삭기로 캐냈습니다. 물류창고에도 불법 도박 수익금 10억 원이 보관되어 있었죠. ‘함바’식당 비리에도 5만원권이 사용되었습니다. 5만원권 발행은 금융실명제로 부패의 적발을 쉽게 해준 사회의 진전을 뒤엎고 지하경제를 다시 창궐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신용카드에 수표에 다 갖춘 나라에 무슨 후진적인 고액권이 필요했는지 의문입니다. 부패를 막는 데 그깟 수표 종이 값이 문제가 아니죠.

부패의 덩굴은 도처에 자라고 있습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감사원장 시절에 저축은행을 감독하는 금융감독원에 대해 감사를 실시하자 오만 군데에서 압력이 들어왔다고 밝혔습니다. 감히 감사원장에게 압력을 가한 자들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김 총리는 국회에서 정치권은 아니라고 한 발 뺐지만 감사원장에게 압력을 가한 간 큰 남자들은 정치권밖에 없을 것이라는 심증이 갑니다. 실제로 저축은행 사건을 놓고 여야와 청와대는 서로 물고 늘어졌죠.

자신은 “찔리는 것이 없다”고 했지만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3월 7일 법사위 에서 감사원이 저축은행을 감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질의했죠. 민주당 저축은행 진상조사위원장인 그는 작년 4월 16일 법사위에서도 김황식 당시 감사원장에게 “저축은행의 내부 자료를 예금보험공사 등을 통해 요구했는데 민간 금융기관까지 감사하는 어떤 법적 근거가 있는가”라고 했습니다. 김 전 원장은 “감사원법을 보면 필요한 경우 감사원이 자료 제출을 요구할 근거가 있다”고 답했죠. 박 전 원내대표는 지난 4월 27일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는 “사법당국은 (저축은행)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직무유기를 철저히 수사하라”고 요구했었습니다.

저축은행 사건의 핵심은 누가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건당 80억 원 대출한도를 무한대로 풀어주게 만들었고, 감사원에서 감사를 하려고 하자 누가 감사원법 위반이니 불법행위이니 하면서 감사원 감사를 방해하고 저축은행을 옹호한 자인지를 가려내는 일입니다.

최근 한때 사법개혁특위 국회의원들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해체한다며 이를 발표했었죠. 이는 사정의 칼끝이 국회의원들을 겨냥할까 겁을 먹고 사정(司正)의 집중화, 고도화를 막으려는 정치권의 파렴치한 시도가 아닌가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서민과는 무관한 권력형 비리를 적발하는 중수부를 대체할 조직을 만들지도 않고 덥석 해체부터 공언하며 대안 없이 서두른 것은 자신들의 걸림돌이 되는 조직을 없애보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할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이었던 공직부패수사처 설치가 생각납니다. 민주당은 2009년만 해도 중수부를 폐지하고 공수처를 설치하자더니 이제 공수처는 쑥 들어갔습니다. 공수처가 중수부보다 더 강하면 강했지 덜 할 게 없으니 그냥 두자는 속셈인지 모릅니다. 입으로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면서 뭘 계승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실행을 위한 공약이 아니라 그저 던져보려는 소리였나 봅니다.

스스로 부패의 온상인 정치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는 증거입니다. 조선말 3년간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했던 영국인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 부인은 ‘조선의 양반으로 충원되는 관리 계급은 자신의 피를 빨리는 것이 존재이유인 전 인구의 5분의4가 되는 하인들의 허가받은 흡혈귀(vampire)’라고 공격했습니다.

지금 상황은 몰라보게 개선되었지만 정치인들이 부패 사건에 연루되면 입에 마스크를 하고 휠체어에 올라 병자 행세를 하다가 실형을 선고받아도 곧 사면 복권된 후 다시 당선되어 제 세상인 양 떠들어대는 저질 부패 정치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종지부를 찍지 않는다면 우리 앞날을 한 단계 상향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골드만삭스가 2010년 9월 8일 밝힌 ‘향후 20년간 성장률(연간)’ 예측을 보면 중국 9.0%, 인도 8.4%, 필리핀 7.5%, 말레이시아 6.9%, 인도네시아 6.5%, 태국 5.6%, 브라질 5.5%, 남아공 5.4%, 러시아 5.3%로 한국의 3.7%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와 ‘아이돌’의 ‘K-pop’이 아무리 요란하게 한류로 퍼져나간들 고도성장의 동력을 상실한 나라가 부패의 늪에서도 헤어나지 못한다면 무슨 밝은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수처건 무슨 조직이건 권력의 분점과 견제에는 국민들이 눈을 부릅떠야 합니다. 권력기관끼리의 견제와 균형이 없이는 부패의 종식도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