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한류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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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한류 열풍?

방석순

2011년 06월 27일 (월) 01:32:38

어리둥절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의 노래가, 율동이 비틀즈의 고향땅에 울려 퍼지고 샹송의 거리를 휩쓸다니. 유럽의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온 팝 스타들에 열광하며 공항으로 거리로 공연장으로 몰려다녔다니.

언론 보도는 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서 가진 동방신기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샤이니 에프엑스 등등 우리나라 남녀 아이돌 그룹의 공연에 수많은 관중이 모여들어 열광했다고 전했습니다. 공연에 앞서 공항에 몰려나온 팬들의 열기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각지의 한류 팬들이 파리로 모였고, 공연장은 태극기와 한글, 월드컵 응원까지 온통 한국 빛깔로 물결을 이루었다 합니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열풍이 몰아쳤다고 전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건 새 시대의 새로운 문화 조류일까, 동에서 서로 흐름이 뒤바뀐. 아니면 우리 언론들의 지나친 호들갑일까, 이제 겨우 유럽대륙에 다리 하나 걸쳤을 뿐인데. 국군의 날 퍼레이드 중계방송을 보노라면 언제나 우리 국군이 천하무적 같은데 정작 서해에서 일어나는 사건, 자체 개발한 무기의 불량 사고 소식을 들으면 전혀 딴판이니 말입니다. 사진 찍을 때 동전 하나만 올려놓아도 피사체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데 우리 언론 보도에선 늘 그런 성의가 아쉽습니다.

K-POP이라. 그게 언제 어떻게 생겨난 말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H.O.T. S.E.S. 핑클 등이 맵시 있는 동작으로 방방 뜰 때에도 ‘무슨 이름들이 그래?’ 했었는데, 요즘엔 아예 2AM 2PM 빅뱅 카라 JYJ 등등 국적불명의 이름들이 대세인가 봅니다. 아니 뒤늦게 깨닫고 보니 정말 선견지명의 글로벌 이름들인 것도 같습니다. 그런 틈바구니에 동방신기(東方神起) 소녀시대와 같은 한문 투의 이름이 끼어 있는 게 오히려 신기해 보입니다.

사실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정도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대견스러워하는 주제에 요즘 소위 인기 아이돌 그룹이라는 젊은이들의 노래는 영 딴 세상 것만 같습니다. 혼자만 그런 줄 알았더니 여기저기서 “귀로 듣는 음악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음악, 솔직히 눈요기 감”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과다노출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외설스러운 동작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습니다.

벌써 40여 년 전 일입니다. 인도 태생의 영국 팝 스타 클리프 리처드가 내한 공연을 가졌었지요. 알아주는 어느 명문 여자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공연에서는 흥분한 여대생이 무대를 향해 팬티를 벗어던졌다는 풍문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 전후로 국내에 흘러든 구미 팝 스타들의 노래는 국내 젊은이들의 정서를 파고들었습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우리의 고단한 삶을 구성지게 노래한 대중가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만족시키기엔 미흡했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지금도 그때 따라 부르던 서양 팝송들이 마치 어린 시절 귀에 익힌 자장가처럼 향수를 느끼게 합니다.

그런 구미의 팝 뮤직이 결국 우리네 7080세대의 정서를 담아낸 통기타 음악의 밑거름이 되고, 지금은 신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이번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의 유럽 공연은 서양 대중음악의 역수출, 가공무역인 셈일까요.

경제 성장과 이를 바탕으로 한 대중문화의 발전으로 한류는 꽤 오래전부터 드라마로 음악으로 음식으로 일본, 중국을 거쳐 동남아시아와 중동, 남미까지 적잖게 세력을 뻗쳐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수백 년 동안 지구촌의 문화 흐름을 주도해온 유럽, 특히 문화대국이라는 자부심을 곧추세운 프랑스의 심장부에서 보게 된 우리 아이돌 그룹의 공연 열기는 통쾌함과 동시에 의아한 기분을 갖게 합니다.

무엇이 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유럽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노래라면 보나마나 불에 콩 튀듯 경쾌한 리듬의 노래겠지요. 그런 리듬의 노래라면 오히려 그쪽이 본류일 텐데, 서양 팝에 영향을 받은 한국 그룹의 노래에 서양 본토박이들이 혼을 뺏기다니. 어쨌거나 우리의 아이돌 그룹들이 참으로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어준다면야 광개토대왕이 대륙을 휩쓸었던 것보다 더욱 장하고 가치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셈이 빠른 이들은 벌써부터 우리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유럽에서 거둬들일 부를 계산하기도 합니다. 공연을 기획한 엔터테인먼트사도 “정보기술(IT) 시대에 이어 문화기술(CT) 시대가 올 것이다. 앞으로 한류 문화상품을 단순 수출하는 단계를 넘어 세계 각지 연예인들과 함께 시장을 확장하고, 현지인들과 부가가치를 공유하는 단계로 발전시키겠다”고 야심을 드러냈습니다.

대중문화의 전문가들은 아이돌 그룹의 이번 유럽 공연 성공 비결로 춤, 노래, 외모 등 세 가지 히트 요소를 고루 충족시킨 기획을 꼽고 있었습니다. 감성이 풍부한 젊은이들에게 내놓은 ‘잘 포장된, 신종 종합선물세트’와 같았다는 평입니다. 거기에 처음 대하는 동양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과 신선한 느낌도 보탬이 되었겠지요.

실제로 출연진 가운데 한 사람은 “그동안 외국인 안무가와 프로듀서 등 세계적인 시스템을 갖추어 준비했고, 그에 걸맞은 공연을 보여 줬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 잘생기고 예쁜 외모까지 열기에 한몫한 것으로 자평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우리 아이돌 그룹이 가진 것의 전부라면 다소 아쉽고 위험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중요한 건 포장이 아니라 내용물입니다. 그 선물세트 속에 과연 세계 젊은이들이 오래 공감하고 음미할 만한 삶의 의미, 애환, 꿈이 담겨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별 의미 없는 사랑타령에 괴이쩍은 동작으로 겉포장만 요란했던 것이라면 한국 아이돌 그룹의 유럽 열풍은 한줄기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스러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또 정말 우리의 아이돌 스타들은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전파할 만한 실력과 교양을 갖춘 대표선수들인지, 혹시 기획사들이 반짝 세일용으로 찍어낸 인형들은 아닌지, 스스로 다짐해 보아야 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차제에 공연 팀의 내부적인 건강도 꼭 챙겨야 할 일입니다. 어린 연예인들이 기획사에 의해 혹사당한다, 노출을 강요당한다, 노예 계약에 묶여 있다는 등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문제들에 대해 세심한 점검과 정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바깥 사정에 밝은 현지 공관, 문화콘텐츠산업을 관장하는 관계당국의 협력이나 지원도 필수적으로 보입니다. 모처럼 전해온 유쾌힌 소식들이 사막에 얼비친 신기루처럼 허망하게 사라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