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요, 콜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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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콜롬보!

김창식

2011년 07월 08일 (금) 01:12:34

지난 달 말 한 방송사의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을 보는데 화면에 '형사 콜롬보'로 잘 알려진 피터 포크(1927~2011)가 타계했다는 자막이 뜨더군요.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친지를 잃은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이 '쿵' 허물어져 내리며 착잡해졌습니다.

'형사 콜롬보'는 1970년대 인기절정의 TV 수사시리즈물이었는데, 무엇보다 피터 포크가 연기한 콜롬보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힘입은 바 큽니다. 의안(義眼)에 싸구려 시가, 빗질하지 않은 머리칼, 더듬거리는 말투, 아무렇게나 걸친 허접한 바바리(트렌치 코트). 특히 자리 몽땅 어중간한 바바리는 콜롬보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소품이었죠. 콜롬보만큼 어정쩡한 길이의 주름진 바바리가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아, 우리나라에도 영원한 수사반장(최불암)이 있군요. 그러고 보니 두 인물의 이미지가 상당 부분 겹치기도 하네요.

콜롬보의 화법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용의자 집을 방문하고서도 딴청을 하며 실내를 어슬렁거리다 우연히 생각난 듯 사건과는 아무 관련도 없어 보이는 말을 '투툭' 던진단 말예요. 특히 시퀀스의 마지막 부분, 그러니까 콜롬보가 용의자 집을 떠나려다 말고 돌아서면서 이마를 탁 치며 건네는 어눌한 말 한마디는 사건의 핵심과 연결되는 결정적 단초를 제공하죠. "아, 참, 잠깐만요. 그러니까, 한 가지만 더(Just one more thing)!"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한숨 돌리려던 범인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죠. 추레하고 어수룩해 보이는 콜롬보는 사실 두뇌가 명석한 데다 심리전의 달인이기도 했어요.

범죄수사물인 콜롬보가 '선결후론법(先結後論法)'을 채택한 점도 특이했습니다. 드라마 시작과 함께 범행 장면을 서두에 배치하거든요. 시리즈마다 이른 바 '사건트릭'이 아니라 '서사트릭'의 문법을 답습합니다. 이후 용의주도하게 구축한 범인의 알리바이를 허물려는 콜롬보의 활약상이 펼쳐집니다. 시청자는 범인의 정체와 방법, 동기를 이미 파악한 상태에서 범인과 형사 간의 지략대결을 감상하는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자신을 콜롬보에 투사하여 고도의 지적 유희에 참여합니다. 범인의 논리구조가 파괴됨에 따라 대리만족을 취하는 것이고요.

콜롬보 시리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백조의 노래(The Swansong)'입니다. 'C&M(Country and Western) 음악의 제왕'인 자니 캐시가 범인으로 특별출연합니다. 패셔니스타인 자니 캐시는 올백 헤어스타일에 위아래 검정 일색의 옷을 입은 채 특유의 아우라를 내뿜습니다. 극이 전개되며 주류적 특성(도회적 외모에 날카롭고 세련됨)과 아웃사이더적 표징(시골풍 용모에 무디고 소박함)을 대표하는 두 인물 간에 벌어지는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이 보는 이에게 긴장감을 자아내지요. 따지고 보면 이들 두 요소 간의 길항대립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묘사되는 보편적이고도 해묵은 주제입니다. 결과는 대개 후자의 승리로 판가름나곤 하죠. 빙탄불상용(氷炭不相容)!

콜롬보 시리즈를 끝으로 그만그만한 영화에 간헐적으로 출연하던 피터 포크는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 빔 벤더스 감독의 걸작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1987, 원제는 베를린의 하늘 ‧Der Himmel über Berlin)에 반가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페터 한트케의 시 '어린 아이가 아직 어린 아이였을 때(Als das Kind Kind war)'에서 모티프를 차용한 '베를린 천사의 시'는 유년에 대한 향수, 기억과 시간의 소멸 문제, 순수와 세속의 충돌을 그린 철학적 성찰의 영화였죠. 그 영화에 피터 포크는 미국인 고용주의 의뢰로 고용주 동생의 아이를 찾는 사설탐정(사실은 인간이 된 전직 천사) 역으로 출연합니다.

'배를린 천사의 시'를 보며 피터 포크의 새롭고 변모된 역할에 감탄하면서도 시종 콜롬보 형사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도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움찔하며 싱겁게 웃고 마는 우리의 콜롬보 형사. 그를 떠나보내는 마음 쓸쓸하기만 합니다. 삼가 피터 포크의 명복을 빕니다. 잠깐만요, 콜롬보!

김윤옥 (210.XXX.XXX.215)

저도 며칠 전 그의 서거 소식을 들었습니다. 70년대 가장 인기있던 TV 시리즈물로 그 시간을 기다리는 즐거움도 컸었습니다. 형사 콜롬보 이외의 그의 작품을 본 기억은 별로 없는데 그 때는 저 자신이 영화관에 갈 형편이 아니었던 탓 같습니다. 김창식님이 계셔서 옛 영화의 한 장면을 선명하게 떠 올릴 수 있다는 것 즐겁습니다. 요즈음도 다양한 영화 감상을 꾸준히 하시겠지요? 10년, 20년 뒤 이곳에서 제가 지금 못본 영화 얘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락교회에서는 주일과 토요일에 좋은 영화,흘러간 영화,등을 상영하는데 내일(10)오후 2시40분은 '로마의 휴일' 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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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0 00: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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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4.XXX.XXX.58)

저도 어쩌다 영화를 봅니다, 김윤옥님.
예나 지금이나 영화 보는 일이 쉽지많은 않습니다. 절차가 필요해서요.
영락교회에서 그런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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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0 13: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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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어리숙하면서도 문제의 핵심을 장난처럼 터치해 보는이들로 부터 감탄사를 유도하던 형사 콜롬보,우리의 현실에서도 이런 형사 한사람 있었음 체증이 쑤~욱 내려갈텐데....... 안뇽~ 형사 콜롬보! 울 나라에서 부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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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8 18: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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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4.XXX.XXX.58)

수더분한 콜롬보 형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죠, 인내천님.
어리숙하고 어눌한 사람이 오히려 진정성이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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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0 13: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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