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노래’ 붙들어 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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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노래’ 붙들어 매기

임종건

2011년 07월 14일 (목) 00:02:21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내 나이(60대)가 됐을 때 그들에게 남을 ‘흘러간 노래’는 어느 가수의 무슨 노래일까? jyj일까, 비일까, 아니면 서태지일까?

내가 애창하는 흘러간 노래들에 대해 요즘 젊은이들이 따라 부르기는커녕 아예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지금 나의 ‘흘러간 노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흘러가서 자취도 없어진 노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이 나를 때론 쓸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요즘 가수들의 노래에 젊은이들이 열광하지만 대부분 1~2년의 반짝 인기의 노래들이라고 합니다. 50년 넘게 생명력을 이어가는 나의 ‘흘러간 노래’들은 그에 비하면 전설입니다. 그래서 다른 한편으론 위안이 됩니다.

기자 초년병 때부터 술자리에서 제법 풍부한 레퍼토리로 흘러간 노래를 부르면 선배들로부터 “젊은 것이 제법이네”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때 선배들보다 나이가 더 든 지금 나의 주변에서 그런 후배를 찾기를 기대했다간 아마도 엽기(獵奇)로 몰릴 것입니다.

나는 해방 후 세대로서 6·25를 유아시절에 보냈습니다. 전쟁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전쟁의 후유증이자 삶의 태반이었던 빈곤의 기억들은 선명합니다. 일제의 억압이나 해방의 감격은 귀로 들었지만 시간적으로 아주 먼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그 후 개발연대와 민주화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나의 동시대인들이 대개 그러했겠지만, 해방 전의 노래로 망국의 한을 담은 ‘황성옛터’와 ‘눈물 젖은 두만강’을 좋아하고,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감격시대’, 전쟁의 비극과 신산(辛酸)을 노래한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전선야곡’도 좋아합니다. ‘봄날은 간다’, ‘번지 없는 주막’ 같이 가사 중에 사랑이라는 말 한마디 없이도 애틋한 사랑과 이별을 담은 노래들을 나는 특히 좋아합니다.

애늙은이 소리를 듣지 않을 속셈도 있었지만 그때 그때 유행하던 노래 중에 맘에 드는 한두 곡은 열심히 익혔습니다. 그래서 배호, 김추자, 세시봉 가수들과 강산에, 윤도현 등의 노래 한두 곡은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학창시절엔 냇 킹 콜, 클리프 리처드, 비틀스의 노래도 즐겼고, 베토벤의 교향곡과, 오페라의 아리아들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흘러간 노래’는 7080보다 좀 더 이전의 6070쯤에 내가 불렀던 노래들 속에 머물고 있습니다.

유행가는 시대상의 반영이라고 합니다. 나도 그 시대의 일부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노래라면 그 노래는 누구에게도 애창곡이 될 것입니다. 해방과 6·25가 어느 해의 일인지, 가난과 배고픔이 무엇인지 모르는 지금 젊은이들에게 흘러간 노래들에 대한 우리 세대의 감흥을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입니다.

식민지시대, 6·25, 분단은 못난 선대들의 구질구질한 역사인 것은 사실입니다. K-Pop으로 통칭되는 한국의 팝 그룹이 팝의 본고장이라고 할 유럽의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는 시대입니다. 그들의 노래는 노랫말부터 우리말인지 영어인지 알 수가 없고, 너무 빨라 따라 부르기도 벅찹니다. 젊은이들이 아버지 세대의 흘러간 노래에서 유리(遊離)됐듯이 그 반대도 또한 그렇습니다.

유행가는 시간과 함께 ‘흘러(流) 가는(行)’ 운명이라지만 문화나 역사의 일부분으로 후세들에게 전승돼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일까요? 요즘의 유행가 한두곡이 100년 뒤, 1000년 뒤에도 불린다는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닌가요?

요즘 작곡가나 가수들은 옛 노래의 리메이크에도 재능이 탁월한데 흘러간 노래들을 요즘의 감각에 맞춰 빠르고 경쾌한 노래로 리메이크해 젊은이들도 옛날 노래 한곡쯤은 흥얼대고, 가사의 뜻과 시대의 배경도 새기게 할 수는 없는 걸까요?

나는 그 가능성을 ‘나가수’라는 TV프로에서 봅니다. 남진의 ‘님과 함께’ 윤복희의 ‘여러분’을 개성 있는 요즘 가수들이 열창해 젊은이들에게 그런 노래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시대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젠가 그런 가수 작곡가들이 나와 흘러간 노래가 화려하게 부활하는 날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도 흘러간 노래만 좋아할 게 아니라 요즘 젊은 가수들의 노래 한 곡이라도 배워 불러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