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신종호 독서산책
     
산문기행-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
신종호 2007년 05월 01일 (화) 10:15:46

   

 

산문기행 - 조선의선비, 산길을 가다
심경호 지음 / 이가서 출판
29,800원


요즘의 문화 세태를 둘러보면 풍류(風流)라는 말의 뜻은 남아있지만 그에 걸맞은 행동은 사라진 듯합니다. 소풍을 가거나 등산을 하다보면 사람들의 행동이 정말 가관입니다. 그에 비하면 선인들은 자연을 감상하는 방도에 있어 현대인들 보다 한결 월등했습니다. 산을 오르되 급하지 않았고, 여유롭되 느슨하지 않아 섬세하고 멋스럽게 자연을 즐길 줄 알았습니다. 술을 마시되 풍경을 흐리지 않았고, 한 수의 시로써 화조풍월의 묘를 만끽하였으니 그야말로 자연과 더불어 공히 아름다웠습니다.

백두산, 금강산, 한라산 등 35곳의 산을 소재로 조선 선비 54명의 유람록을 모아 엮은 『산문기행』은 그러한 선인들의 풍류와 기개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조선시대의 산놀이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를 활달하게 하는 ‘호탕한 놀이’였습니다. 유산록은 바로 그 호탕함의 기록입니다. 산에 오르지 못할 때에는 자신이 쓴 유산록을 읽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 거듭 산에서 노니는 것 같은 기쁨을 누리며 속세의 홍진을 잊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일러 ‘와유’(臥遊, 누워서 놂)라 하였으니 산에 대한 조선 선비의 애정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퇴계 이황과 같은 대학자들로부터 촉망을 받았으나 그 능력을 널리 발휘하지 못하고 29세의 나이로 요절을 한 홍인우의 「금강산유록」을 보면, “지세에는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고 경치에는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높은 것은 낮음의 누적이고 큰 것은 작음의 극치다. 높고 큰 것을 이미 내 눈으로 다 보았거늘 작고 낮은 것을 보려고 하필 내 다리를 수고롭게 하랴.
(중략)
큰 것을 보고 작은 것도 관령하고, 높은 것을 들어 보여 작은 것까지 깨우친다고 하면, 정말로 역시 도에 해롭지 않다.”하였으니 조선의 선비들이 어떤 자세와 철학을 가지고 산에 올랐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산행이 진지한 것만은 아닙니다. 남효온의 「금강산 유람기」를 보면 금강산 발연암 폭포 근처에서 ‘물미끄럼틀’을 타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워터 봅슬레이’라 할 수 있는데, 나뭇가지를 꺾어 물 위에 놓고 그 위에 올라타 바위 물길을 내려오는 놀이입니다. 기술이 좋으면 제대로 떠내려가고 그렇지 못하면 벌거벗은 몸이 뒤집혀 거꾸로 내려가 폭포 아래로 물웅덩이로 머리부터 처박혀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냈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놀이를 금강산의 중은 물론 선비들도 앞 다투어 하였다니 선비들의 산행이 체면만 차리는 점잔은 산행만은 아니었을 듯합니다.

또한 선비들의 산행을 통해 개인의 성정과 기질을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위정척사운동을 주도했던 최익현은 한라산 등정에서 최초로 비박노숙을 했습니다. 비박노숙으로 한라산 등정을 한 그의 기질을 보면 반외세 저항정신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정조 주도의 편찬 사업 핵심자로 활동한 서명응은 산수 유람만 하고 간다면 무의미하니 지형을 잘 살피고 위도를 측정해 두는 것이 좋겠다하여 백두산의 곳곳을 세밀하게 관찰 기록하였고, 영조의 총애를 받았던 이의철은 「백두산기」에서 사대부의 산행을 위해 길을 닦고 음식을 마련하는 노역에 동원된 백성들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며 당시 산행의 잘못된 풍토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여성으로 태어난 한계를 절감하되, 규방에 갇혀있기 보다 당당하게 산수를 유람하겠다하여 아버지를 조르고 졸라 금강산, 설악산과 관동팔경을 호쾌하게 유람한 사대부 여성 김금원도 남자들 못지않은 기개를 보여줍니다.

『산문기행』에 나온 산들을 지금과에 견주어 읽어가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를 줍니다. 김종직은 “금강산은 동쪽에 웅장하고, 묘향산은 북쪽에 웅장하고, 구월산은 서쪽에 웅장하지만, 남쪽의 두류산에 오르게 되면 곧 웅장하던 세 산은 눈 아래 깔려 있어 흙무더기와 같이 보인다.”라고 사방(四方)의 명산을 품평하였습니다.

유몽인은 “두류산은 살이 많고 뼈대가 적으니, 더욱 높고 크게 보이는 이유다”라고 하면서 “인간 세상의 영리를 마다하고 영영 떠나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면, 오직 이 산만이 편히 은거할 만한 곳이리라” 하였습니다. 지리산을 애호하는 사람들이라면 유몽인의 품평이 얼마나 적절한지를 느끼실 겁니다.

산을 오르는 일은 바다를 여행하는 일과는 달리 화조풍월의 조화를 일시에 몸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인들은 없는 시간을 내어 산을 찾았고, 그 속에서 풍류를 맘껏 누렸지요. 그 풍류를 따라하지 못하여, 내심 쌓여만 가는 답답한 심정을 『산문기행』의 ‘와유’(臥遊)로 달래봅니다. “남보다 더 걸은 10리 길은 남보다 더 발견한 등산의 즐거움이요, 인생의 가치다” 라는 박제가의 말이 바람처럼 머릿속을 내내 감돕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