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빠이 이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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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빠이 이상룡

임철순

2011년 07월 21일 (목) 00:27:36

세상은 암투성이입니다. 2008년에 박경리 이청준, 2011년에 박완서, 이렇게 좋은 작가들을 우리는 잇달아 암으로 여의었습니다.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 화가 김점선 씨 이런 분들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암환자는 점점 늘어나고 인간의 몸 어디에나 암이 생길 만큼 그 종류도 많습니다. 암은 고치기 어렵습니다. 췌장암 수술을 받은 뒤 의사의 권유로 스케치 여행을 계속하다가 10여 년 만에 건강하게 돌아온 전규태 시인으로부터 최근 <나의 삶 나의 문학>이라는 에세이집을 받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본인의 말대로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암을 이기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왜 어려우냐? 뽀빠이 이상룡 씨의 말에 따르면 이런 사정이 있습니다. “하느님, 하느님두 못 고치시는 병이 있슈?” 이 질문에 대해 하느님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못 고치는 병? 아암, 있지, 암.” 이렇게 대답을 하는 바람에 그때부터 암은 고치기 어려운 병이 됐다는 게 뽀빠이의 주장입니다.

한 달에 한 번은 그를 만납니다. 그는 한국일보사가 매달 세 번째 일요일에 개최하는 남산 거북이마라톤대회의 사회를 30년 넘게 맡고 있습니다. 행사장에 가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이크를 잡고 시민들을 즐겁게 해 주는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를 만나는 날은 개그든 와이당(猥談)이든 몇 가지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 분야에서 진도가 많이 나가는 날입니다. 어떻게 그리도 많은 유머와 개그를 아는지 그의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끝이 없습니다.

그가 해준 이야기 중 아주 재미있는 것 하나. MBC TV의 ‘늘 푸른 인생’을 녹화할 때라고 합니다. 각 지방을 돌며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이 프로그램은 일요일 오전에 방영되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남산에 가면 실제 뽀빠이를 만나게 됩니다. 그날은 그를 두 번 보게 되는 셈입니다. 어쨌든 충청도 어느 동네에서 프로그램을 녹화할 때, 시간은 다가오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잘 모이지 않았답니다. 애가 탄 스태프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빨리 오세유. 곧 녹화 시작돼유.” 그러자 밭고랑으로 을미적 을미적 걸어오던 할머니가 한 말-. “힝, 그렇게 급하먼 어제 오지 그랬어?”

뽀빠이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웃게 된다”고 말하던데, 내 생각에도 그 할머니 정말 멋재이(멋쟁이가 아님)입니다. 나도 충청도지만, 충청도 사람의 멋과 여유, 느긋한 시간관념, 한 방으로 남을 쓰러뜨리는 재치, 이런 건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 뒤 이 이야기는 다른 버전으로 만들어져 활용되고 있습니다. 도로 체증이 심할 때 빨리 가라고 뒤에서 빵빵거리는 운전자에게 “힝, 그렇게 급하먼 어제 나오지 그랬어?”하고 약을 올리는 식입니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온몸으로 작품을 배어 온몸으로 낳는 것처럼 개그맨이나 코미디언들도 온몸으로 우스운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남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하는 사람들은 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들입니다. 언어의 조합과 충돌을 통해 삶의 비의(秘義)를 전달하고 정리하고 창조하는 일은 문학가나 코미디언이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인들이 늘 언어를 생각하는 것과 코미디언들이 새로운 유머를 궁리하는 것은 똑같은 일입니다. 독창적이고 신선한 새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문인들보다 코미디언들에게 훨씬 더 절박하고 절실한 과제입니다. 그들에게는 반드시 웃겨야 할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은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면 절대로 웃어 주지 않습니다. 더욱이 유머나 개그는 1회적입니다.

“유머는 언제나 기쁨이 아니라 슬픔에서 나온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뽀빠이처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 자신이 기술한 삶의 이력은 간난신고 그 자체입니다. 그를 뱃속에 넣고 열 달간 걸어서 백두산까지 갔던 그의 어머니는 남편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 친정인 부여에서 그를 낳았습니다. 병 덩어리 자체인 데다 못 먹어서 거품에 싸인 채 나온 아이를 식구들이 땅에 묻자 불쌍히 여긴 이모가 캐내어 솜에 싸서 뒷산으로 도망갔다고 합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이틀 만에 찾긴 했으나 뽀빠이는 누워서 6년을 살았답니다. 여섯 살에야 걸음마를 시작해 열두 살까지 여덟 가지 성인병을 다 앓고, 열세 살에 아령을 시작해서 열여덟에 미스터 대전고, 이어 미스터 충남, 1966년 미스터 고려대와 응원단장, ROTC 탱크 장교로 근무하고 나와 22가지 외판원을 하다가 28세에 TV에 출연하면서 뽀빠이가 됐습니다.

‘우정의 무대’라는 프로그램으로 큰 인기를 누리던 1996년 가을에는 심장병 어린이 수술 후원금을 떼어먹은 파렴치범으로 몰려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는 수난도 겪었습니다. 대전에서 국회의원 나오라는 걸 거절했다가 보복을 당했다는 건데, 그가 쓴 글에는 “32년간 심장병 어린이 567명 수술해 주고 국민훈장 두 개나 받았는데 한 명도 수술 안 했다고 하고, 지프차 20년 타는데 벤츠 탄다고 신문에 나고, 무죄인데도 신문에 안 내주고…. 죽고 싶어도 진실한 국민들의 격려로 참고 살아 왔더니 지금 이렇게 사랑 받고 건강히 살아갑니다.”라고 돼 있습니다. 그는 이듬해 2월 혐의를 완전히 벗었지만 한 번 잃은 명예를 회복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저는 덤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나 무엇에나 다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냅니다. 세상에 가장 약하게 태어나 가장 건강한 뽀빠이가 되다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그가 쓴 글의 일부입니다. 그런 마음과 자세로 그는 끊임없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운동을 하고 번데기로 아침 식사를 대신합니다. 술과 담배 커피는 입에 대지 않는데, 어쩌다 누가 담배를 주면 받긴 하지만 빨아들이지 않고 연기만 내뿜습니다. 그는 점심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음식이 생각나면 세상 없어도 그걸 먹어야 한다는데, 남들과 약속을 하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음식이 갑자기 먹고 싶어지는 건 몸에서 요구를 하기 때문이며 그 요구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이런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을 만큼 대단한 독서인이라는 점입니다. 어떤 책이든 책 속에는 갈무리하고 싶고 생각을 발전시키거나 변형해 활용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주머니에는 메모지가 항상 들어 있습니다. 점잖은 자리에 가서 강연할 때 써먹을 말은 파란 글씨, 사람들을 배꼽 잡게 만드는 음담패설은 빨간 글씨로 앞뒤에 빼곡하게 써서 비에 젖어도 지장이 없도록 비닐 코팅을 하고 다닙니다. 그는 “내가 이렇게라도 (노력을)하니까 남들이 불러주지 이 나이에 누가 날 찾겠느냐”는 말도 했습니다. 해방 1년 전인 1944년생이니 그는 이미 67세입니다. 감히 그에 맞서 나도 한마디 개그를 하자면 그는 태어나자마자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긴 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서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17일에도 거북이마라톤 행사에 나와 오리고기를 상품으로 받은 70대 할머니를 안듯이 붙잡고 서서 오리 개그를 했습니다. 돈은 못 벌지만 집에 들어앉아 살림 잘하는 여자는 집오리, 안정적 수입이 있는 전문직 종사자는 청둥오리, 부동산과 주식으로 큰돈을 벌어오는 여자는 황금오리라고 하더니 “살림도 못하고 돈도 못 벌어오는 아내는 뭐라고 하지?”하고 물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뽀빠이는 “어찌하오리!”라고 해서 한바탕 웃겼습니다. 남편 말을 아주 잘 듣는 아내는 그리하오리, 돈 많이 모아 놓고 일찍 죽는 아내는 아싸가오리라고 한다던데, 거기까지는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를 보면 삶의 달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철물점에 가 보면 크기가 열 가지 이상의 못이 있고 그 못은 저마다 다른 쓰임새가 있으니 키 작고 못생겼다고 실망하거나 기죽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샘 내지 말고 내 생긴 데서 장점을 살려 최선을 하다 보면 어느새 우뚝 서게 된다는 게 그가 늘 말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는 많은 불운과 고통을 극복해왔습니다. 남들이 모르는 슬픈 일이 참 많습니다. 그의 웃음 뒤에는 많은 것이 가려져 있고 숨겨져 있습니다. 남보다 훌륭해지려는 노력이나 자신만의 비애를 남들이 금세 알아챌 수 있게 내비치는 사람은 하수입니다. 그가 마르지 않는 영감과 샘솟는 열정으로 변함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내고, 그리하여 팬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계속 받기를 바랍니다.

XRumerTest (84.XXX.XXX.148)

Hello. And 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