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에서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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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에서 걷기

김수종

2011년 08월 25일 (목) 01:57:10

지하철의 발달로 서울 시민의 상당수가 하루 한두 시간은 땅속에서 삽니다.
그래서 어느새 지하철 문화, 즉 땅속의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지상의 사회 변화는 지하철의 풍속도를 바꿔갑니다. 신문을 읽던 승객이 무가지(無價紙), 휴대폰, 스마트폰, 아이패드로 하루가 다르게 바꾸어 갑니다. 이러한 지하철의 광경은 광범하게 확산되는 지상의 변화를 아주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지하철을 타면서도 선택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땅속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 걸어야 할지 타야 할지를 선택하게 됩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땅 밖으로 나오려면 세 가지 방법, 즉 계단을 걸어 올라오거나 엘리베이터 또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됩니다.

계단을 걸어 오르내리는 것은 가장 고전적이고 원시적인 방법입니다. 언제나 탈 것만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이 계단일 텐데, 계단은 항상 비어 있습니다. 젊은이도 잘 타지 않고,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는 장년층도 지하철 계단을 걷는 운동은 별로 즐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워에 에스컬레이터가 워낙 붐빌 때 거기에 몸을 끼워 넣기 싫어서 계단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보통 시간대에는 계단은 비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대개 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빠르기도 하고 지하철을 탈 때는 전동차의 중간부분에 접근하기 쉽게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로 노약자, 임산부, 신체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라지만 멀쩡한 젊은이들도 잘 이용합니다. 그러나 인원수가 제한되고 멀쩡한 사람이 타기에는 좀 민망한 경우가 많습니다.

에스컬레이터는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지하철 시설입니다. 좁은 공간에 갇히지 않고 거의 기다림 없이 움직이니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합니다. 그러나 지하철 이용객에게 에스컬레이터가 편리한 이유는 그냥 타고 있어도 되고 걸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통기관을 이용하는 데 참을성이 모자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딱 맞는 시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지하철 질서의 축소판이라 할 만합니다.

에스컬레이터는 그 폭이 두 사람이 겨우 나란히 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하철 당국도 지금까지 오른쪽 줄에는 서서 갈 사람이, 왼쪽 줄에는 걸어 오르내릴 사람이 타도록 권장했습니다. 같은 기계 시설인데 서서 가는 줄은 조용하지만 걷는 줄은 정말 시끄럽습니다. 걷는 게 느린 사람이 오른쪽으로 비켜서지 못하면 뒤에서 보채는 눈치가 정말 뜨겁습니다. 욕도 먹을 때가 있습니다. 걷는 속도가 달라도 분위기가 살벌합니다. 전철을 타느냐 놓치느냐, 출근 시간 전에 도착하느냐 지각하느냐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 지하철 당국은 에스컬레이터 이용 방식을 바꾸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말고 두 줄로 타라는 겁니다. 걷다가 넘어지면 줄줄이 다칠 위험이 있어 안전상 문제 때문이라고도 하고, 한가한 시간에도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사람들이 오른쪽에 몰려서니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이 난다는 것입니다. 에스컬레이터가 그렇게 민감한 것인지 모르나 까마득하게 높이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곡예를 하듯 달려 내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불안할 때가 많습니다.

오래 전 런던 지하철을 탄 적이 있습니다. 지하철의 원조 격인 런던 지하철이 여행객에게 주는 인상은 너무 땅속 깊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동차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 앞에 서면 그 길이와 경사도에 압도되고 맙니다. 어떤 승객도 지하철을 빠져 나가는 데 에스컬레이터를 마다하고 계단을 오를 엄두가 나지 않을 듯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생들로 보이는 수명의 건장한 남녀들이 배낭을 진 채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에스컬레이터 속도를 따라잡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기합을 지르며 걸음을 옮겼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그들의 모습을 보니 여간 경쾌하고 씽씽해 보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한번 객기를 부리는 청년들인 줄 알았는데, 그 당시 런던 지하철역에서는 종종 이런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지하철 승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에스컬레이터는 움직이면서도 계속 가속도를 내고 싶어 하는 한국인의 잠재 심리가 표출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말자는 지하철 당국의 캠페인이 성공할지 궁금합니다. 그 성공 열쇠는 아마 시민 의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행로가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는 편리함과는 무관한 관행이었지만, 역시 캠페인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30년 전 자동차 경적으로 시끄럽던 서울 거리에서 지금은 자동차 경적이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에스컬레이터는 모두 서서 가는 사람으로 조용하고 안전해 보이고, 계단은 걸어가는 사람의 움직임으로 시끌벅적한 지하철 역사의 모습이 보기에 좋고 좀 더 세련된 사회로 보인다는 시민 의식만 발아한다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걷는 것이 멋쩍고 불편해지는 때가 올 것입니다.

김윤옥 (210.XXX.XXX.143)

당연히 에스컬레이터 옆에 따로 마련된 계단을 걸어오르는 것이 개인의 건강에도 좋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법도 되는데 타고난 조급증 유전자가 번번이 에스컬레이터로 유혹합니다. 곧 가을이 오고 더위도 한풀 꺾이면 조금 일찍 서둘러서 느긋한 마음으로 지하철 계단을 오르면서 하루 적당한 운동량을 채워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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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8 22: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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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아, 에스컬레이터에서 왼쪽 빈 공간으로 걷는 것은 당연한줄 알았는데 읽고보니 걸어선 안되겠군요.
전 가끔 서울 나들이 할 때에는 되도록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운동삼아 걷는편인데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않게 하려면 좌측을 비우지 말고 당당하게 서서 방해(?)함 되겠죠? ~~^^
말씀하신대로 이런 행동도 일종의 시민운동이니까요. 다음번 서울 나들이 때에는 일부러 에스컬레이터 좌측에 버티고 서겠습니다! 그러기 전에 걷지않는 질서가 잡혀있음 더할나위 없구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리 바쁘다고 에스컬레이터에서 걷는 것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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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6 14: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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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완 (221.XXX.XXX.98)

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걷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우두커니 서 있지 않고 걸으면 운동도 되고 시간 절약도 되니 일거양득입니다. 현대인들은 운동 부족으로 비만해 지고 온갖 질병에 걸립니다. 자동차를 타지 않고 웬만한 거리는 걷는 것이 여러 모로 유익합니다. 우리사 즐겨 타는 자가용은 영구차입니다. 기름 한방울 안 나오는 나라에서 옛날처럼 걷는 것이 유익합니다. 나는 미국에서 40년을 살면서 늘 내 차를 운전했으나 중국에 와서는 웬만한 거리는 걸어 가고 운전을 하지 않으니 돈도 절약되고 운동도 되어 아주 좋습니다. 걷는 것이 보약입니다.이종완연변 과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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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6 13: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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