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나름 개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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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나름 개 나름

오마리

2011년 08월 30일 (화) 00:06:28

한동안 지치게 만들던 폭염이 수그러지고 날씨가 가을날처럼 선선해져 중단했던 걷기 운동을 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살고 있는 동네가 한적한 곳이어서 언덕을 따라 집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캐나다의 골든 시즌, 최적의 기후와 풍경에 취하여 모든 잡념을 거두고 행복하게 걷고 있는데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며 사나운 개가 나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즐거웠던 기분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내 차를 향하여 급히 돌아갔습니다. 물론 개에게 개가 무서워 도망친다는 인상은 주지 않으려 조심하며 걸었는데, 주차했던 곳까지 와서 뒤를 돌아보니 그 개는 아직도 나를 향하여 짖어대며 언덕바지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차 안에 앉아 문을 열고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며 저 이쁘게 생기지도 않은 개 때문에 다시는 이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니 개를 풀어놓은 개 주인이 언짢아졌습니다.

내 생애 개와의 인연이 몇 번 있었습니다. 어릴 때 집에서 키우던 독일 도베르망(일본식 발음)의 혈통을 받은 영리하고 잘생긴 개가 있었고 선영에서 키우던 복산(福山)이란 이름을 가진 잡종개가 있었습니다. 도베르망은 총명한 개인데 어느 날 주인의 손자인 내 어린 조카와 싸우던 동네 아이를 물어서 한바탕 소동을 벌였습니다. 결국 물린 아이의 치료비를 물고 사과를 해야 했습니다. 복산이는 수명을 다하여 자연사하였으며 마지막 기억에 남은 작은 강아지는 이름도 지어주지 못하고 병든 채 버려졌습니다. 내가 출장을 간 사이 아픈 강아지를 가족 중 누군가가 가정부에게 주었고 가정부는 출장에서 돌아온 내가 강아지를 찾자 강아지가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아 거리에 버렸노라고 했습니다. 일주일은 울었을 것입니다. 병든 강아지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죽게 내버려둔 것도 가슴 아팠지만 간신히 걷기 시작하던 어린 강아지의 눈망울이 떠올라 견디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 다시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죽음이란 것 때문에 슬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산책을 허탕 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근래 보았던 한 편의 영화, 하치(八)가 떠올랐습니다. 주인에 대한 사랑과 충성, 일편단심이 아름다워 하치코(八公)라는 존칭으로 불리고 있는 개에 대한 미국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하치코의 동상이 일본 도쿄 시부야 역 앞에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일본에서 있었던 실화인데, 이 하치코는 한 번 주인을 만나면 오직 그 사람만을 위해 충성하고 사랑을 쏟는 싱글마인드를 보여줍니다. 주인이 죽으면 그 주인의 가족일지라도 새 주인을 따라가거나 섬기는 일이 결코 없어 인연에 대한 숭고한 정신이 감동스러웠습니다. 하치코의 주인이 어느 날 급사를 하지만 주인이 죽은 줄도 모르는 하치코는 언제나 그랬듯이 주인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시부야 기차역 앞에서 기다립니다. 결국 하치코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그곳에 가서 기차역 입구를 바라보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주인을 기다리다 죽습니다.

엉엉 울면서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울 수가 없었습니다. 존속, 연인, 친구 간의 배신 그리고 살인과 살상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세상에 하치코는 사람보다 나은 의리와 충성,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개만도 못한 놈' 이라는 욕을 먹는 사람들이 하도 많은 세상에 하치코는 개도 이렇게 사는데 하물며 사람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교훈을 보여주고 가르치는 귀감입니다.

커다란 개를 다섯 마리 키우고 있는 지인이 있습니다. 밖에서 키우는 게 아니라 집 안에서 다섯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나는 솔직히 무서워 그 집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고양이도 무서워서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집에 방문을 꺼려하는 나는 커다란 개들이 우글거리는 집의 실내를 들어설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섯 마리의 커다란 개 혹은 투견처럼 엄청나게 사납고 사람 몸뚱이만한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처럼 커다란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냐면 사람도 사람 나름이듯 개도 개 나름이기 때문이지요. 제 밥을 챙겨주던 주인의 얼굴을 형태도 알 수 없이 물어뜯어 주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개, 임산부인 주인의 배에 올라타고 물어뜯어 죽인 의리 없는 개, 자기 주인에게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죄없는 다른 사람을 물어뜯는 개들도 있으니까요.

몸체가 사람만큼이나 큰 개, 험상궂은 개, 투견처럼 사나운 개들을 내 집 가까이에서 키우고 있다거나 시끄럽게 짖어대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는 개를 길 가까이에 풀어놓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 개들이 언제 성깔이 나서 사람을 덮칠지 알 수 없으니까요. 널찍하고 외진 땅에 개들을 풀어놓고 키운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꼭 닫힌 공간 수많은 이웃이 함께 들락날락거리는 공동체 건물 안에서 내 몸뚱이만한 커다란 개가 내 집 문 앞에서 자주 마주치거나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다면 결코 즐겁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 나는 무섭습니다. 이것은 동물애호 의식과는 전혀 무관한 것인데 태생적으로 커다란 개는 징그럽고 무섭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이 절이 싫으면 절간을 떠나야 한다.’ 는 말처럼 무섭거나 싫은 사람이 그런 개가 가까이 있는 곳을 떠나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런 개를 소유한 주인도 자신이 그런 개를 사랑한다고 하여 이웃도 자기처럼 좋아하고 무서워하지 않을 거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커다란 개를 밀집된 공간에서 키운다는 것 자체가 동물학대가 아닐까요? 수십억짜리 타워 팰리스 같은 공간에 살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야외의 넓은 전원주택으로 이사가서 자유롭게 키우는 것이 진정 개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사람을 해치지 않고 의리와 사랑만 나눌 수 있는 개,
용모도 아름다운 개, 전혀 무섭지 않고 안아주고 싶은 개,
하치코 같은 개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명순 (121.XXX.XXX.16)

그곳 생활도 이곳과 크게 다르지 않군요. 아시겠지만 이곳 한국에서도 아파트에서의 애완동물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답니다. 님의 글에 다시한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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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 08: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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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애완동물을 사육하는 것을 금하는 콘도들이 이곳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큰 개가 아니라면 애완견 정도는 아파트 안에서도 키울 수 있겠지요.
단 사람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개들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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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 12: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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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kley (67.XXX.XXX.78)

이 글을 읽는데
어떤 연유인지,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이 함께 떠 오릅니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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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1 13: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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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작은 세상의 이치를 보면 큰 세상의 이치가 읽혀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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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 12: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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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12.XXX.XXX.244)

모처럼 산책길에 초를 치셨군요.
이웃을 배려하지 않는 동물사육은 아무리 취미 생활이라지만 삼가야죠
저도 개는 무서워하는 편인데 애완견은 좋아합니다. 미물의 짐승이지만 자신을 사랑해주는 정도에 비례해서 따르더군요.가장 쉽게 친근감을 사려면 역시 먹을 것이 최고에요. 적당히 살이 붙은 돼지뼈라면 금상첨화죠 ^^
근데 요즘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즐비하죠. 특히 하치코에 비해선 더 수두룩 하구요. 복날이 다 지났으니 움츠렸던 울나라 개들 허리좀 편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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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0 22: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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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요사이 무섭게 생기고 큰 개들이 넘 많아요.
사납게 짖을 때는 정말 무섭죠.
근처 좋은 산책 길엔 큰 개들이 넘 많아 좀 실망일 때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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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 12: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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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203)

주인이 조정할 수있는 방법안의 삽살개는 좋아질듯하나 덩치가 큰개는 두렵습니다.
마리님의 글에서 여러가지 유형의 사람들도 연상되어 지네요,
산책을 다녀온 후여서 더욱 실감,공감을 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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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0 08: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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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삽살개...
그리운 이름처럼 떠오릅니다. 저 못가에 삽살개, 저 못속에 맹꽁이, 라는
동요가 생각납니다. 삽살개같은 강아지만 있다면 무섭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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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 12: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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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 (123.XXX.XXX.8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주택에 산다면 우리 진돗개를 키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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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0 07: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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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우리 진돗개,,,
참 잘 생겼지요. 진돗개 한 마리는 저도 키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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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 12: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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