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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에서 아쉬웠던 것들
임종건 2011년 09월 05일 (월) 01:03:36
언론인들의 친목단체인 관훈클럽의 해외문화답사단의 일원으로 지난 달 말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을 여행했습니다. 작년 대만(臺灣)에 갔을 때는 특히 양안(兩岸)관계의 순조로움과 관련하여 부러운 것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양국 간의 순조로운 협력관계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뒷맛으로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일행이 도착하기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우즈벡을 방문하여 카리모프 대통령과 40억달러 규모의 가스전개발사업과 관련한 계약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우즈벡 방문은 2009년에 이어 두 번째인데 우리 대통령이 임기 중 제3 세계에 속하는 나라를 두 번씩이나 방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 대통령에 앞서 1995년 김영삼 대통령, 2005년 노무현 대통령도 이 나라를 방문했으며 카리모프 대통령은 1992년 이후 한국을 6차례나 방문, 양국 간에 정상회담만 9차례나 가졌습니다. 2008년 이후에는 매년 정상회담을 갖는 나라가 되었는데 이번 이 대통령에게 약속한대로 카리모프 대통령이 내년에 방한하면 10번을 채우게 됩니다.

과거 실크로드의 요충이었던 이 나라는 지금 한국에게는 서역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주 11편의 항공편(한국 9편, 우즈벡 2편)이 개설돼 한국의 기업인과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양국의 교역은 한국이 공산품 위주로 연간 15억달러 이상 수출하는 데 비해 우즈벡은 자원 위주로 기천만 달러밖에 수출을 하지 못해 한국의 일방적인 흑자 구조입니다만 자원의 중요도가 높아가는 추세라 점차 균형을 찾아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면적이 한반도의 2.5배에 이르는 우즈벡은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평원 위에 물길이 닿는 곳마다 도시와 농촌이 형성돼 문명을 일궜습니다. 동서양의 문물이 왕래했지만 남아 있는 것은 이슬람 문명의 자취뿐이었는데 모스크에선 독경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여성의 차도르(얼굴가리개) 착용이 법으로 금지된 것에서 보여 주듯이 원리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개량적 이슬람 국가였습니다.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유적지는 한국 관광객들에겐 필수 코스였습니다. 그곳의 박물관에 전시된 7세기 때 벽화에 조우관(鳥羽冠), 즉 깃털장식이 달린 모자를 쓴 두 명의 사신이 고구려벽화에 나오는 사람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고구려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좀 더 연구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마르칸트에서 타슈켄트로 향하던 열차 안에서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낙조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낙조만 보아왔던 사람들에겐 색다른 감흥을 주는 장관이었습니다. 지평선도 없는 비좁은 국토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키워 낸 한국이 새삼 자랑스러웠습니다.

우즈벡이 나에게 아쉬움을 준 것은 오로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대우자동차가 만든 경차 ‘마티즈’의 나라였습니다.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산 자동차를 흔히 볼 수 있지만, 굴러다니는 차의 70% 정도가 마티즈이고, 다른 라벨의 대우차를 포함하면 90% 이상, 신차를 기준으로 하면 99%가 대우차인 나라는 세계에서 우즈벡 한 나라뿐일 것입니다. 이제 이 나라에서도 대우차의 문자형(DAEWOO) 무늬형(분수모양) 로고는 한국에서처럼 십자형 쉬보레(CHEVROLET)에 의해 지워져가고 있었습니다.

대우의 김우중 회장이 우즈벡과 동구의 헝가리에 자동차 공장을 세운 것은 1990년대 초의 일이었습니다. 중앙아시아와 동구 시장을 겨냥한 포석이었습니다. 그러나 IMF사태의 여파로 대우그룹이 몰락하면서 이 회사 지분은 우즈벡 정부(75%)와 GM(25%)으로 넘어가 대우와는 무관한 회사가 됐습니다.

대우는 당시 이 지역의 낮은 경제 수준을 감안해 경차 중심으로 생산라인을 갖추었습니다. 그 포석대로 지금 마티즈가 우즈벡의 도로를 메우고 있으며 내수용 외에 이웃 나라에도 수출되는 이 나라 최대의 효자 수출품이 되었습니다. 대우와의 인연은 국산 자동차 부품 수출을 통해 겨우 이어지고 있는데 연간 10억달러 규모라고 하니 그걸로 만족해야 하나요?

타슈켄트로 가는 비행기 옆자리의 우즈벡 청년이 바로 그 대우차 부품상이었습니다. 그는 “장안평(*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중고차 및 부품상가)에서 물건을 사가지고 간다”며 연신 “대우차 원더풀”을 되뇌었습니다. 우즈벡에서 대우의 자리가 지켜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아쉬웠던 것은 1930년대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 살던 한국인이 이곳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의 아픈 역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고려인의 흔적을 둘러보는 것은 관훈클럽 여행의 주된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한때 60만 명에 이르렀던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의 활약상을 대표적으로 증거하는 것이 우즈베키스탄의 ‘김병화 농장’이었습니다.

김병화는 집단농장 콜호즈를 이끌며 소련연방 정부로부터 별 둘의 영웅메달을 받은 탁월한 영농지도자로 1974년에 타계했습니다. 그의 업적을 기리는 ‘김병화 박물관’이 타슈켄트 근교에 서 있었습니다. 한때 1만 명 가까운 고려인이 살았던 이 농장에 현재 남아 있는 고려인은 노동력을 상실한 천 여 명의 고령 노인뿐이라고 했습니다. 농장도, 박물관도 퇴락한 모습이었습니다.

스탈린이 한국인을 강제 이주시킨 것은 폭력이고 야만이지만 한국인에게 내재된 근면 개척 창의의 유전인자를 살릴 수 있었다면 넓고 비옥한 땅을 갖고 있는 중앙아시아는 한국인의 힘으로 이미 번영의 땅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갖게 했습니다. 김병화 농장의 영웅담이 지속될 수 없었던 것은 토지의 사유를 허용치 않은 사회주의 혁명의 한계 때문이었을 겁니다.

석유와 가스를 생산해 수출하는 나라이면서도 1인당 GDP가 2010년 기준 1,400달러 수준에 불과한 불가사의, 박물관 공항을 포함한 모든 공공시설의 화장실이 유료이고, 호텔의 관광안내책자조차 유료인 나라. 우즈벡이 실크로드의 영화를 되찾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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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opco (65.XXX.XXX.77)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여 부를 자국으로 가져와 거대한 부를 축척하며 15세기부터 스페인, 포루투칼, 네덜란드, 프랑스(18), 영국(19)……

이제 20세기 메이꼬꾸에서 이제 거대한 대륙 종구오로 ……

순전히 내 개인적인 착각일 수도 있지만 대우사태가 나지 않고 지금도 그룹이 존재한다면 아마 한구오의 3만불 국민소득은 진즉 넘어갔지 않았을까?

해외 사업장의 대부분의 사업을 현지에서 자금 조달하고 자원 개발하고 그 과실을 국내로 가져오는 것이 대우의 세계화 진행과정이었으니까

공통적인 의견이 3~4년 만 더 지났으면 사업이 안정되어서 어떤 외풍에도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고 global 대우공화국이 완성되었겠지. 요즘 의식있는 경제학자들 사이에 재조명되고 있으니......

물론 역지사지의 거대한 분식자금 비판도 있지만.
그때 우리의 모든 기업이 다 그랬다고 말하는 것도 절대 선으로 보면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이 있으니......

우즈벡 진출 후 교민들 한자리에 모아 대우전자 생산 TV 몇백대를 선물로 주신 미담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지속적 좋은 컬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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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0 10: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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