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투표와 형주성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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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투표와 형주성 싸움

김창식

2011년 09월 19일 (월) 03:26:57

복지 포퓰리즘 논란 속에 지난 달 24일 실시된 서울지역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개봉도 못하고 막을 내렸지요. 이후 정국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후보단일화 합의 당시 상대후보 매수 의혹, IT 아이콘 안철수 교수의 갑작스런 커밍아웃에 이어 박원순 변호사와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합의, 한명숙 전 총리의 서울시장 선거 불출마 선언, 이석연 전 법제처장의 출사표 등으로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변화를 갈망하는 보통사람들의 정치 에너지가 용틀임하며 기성 정치질서 곳곳을 허물고 있는 형국이군요.

무상급식 투표 결과를 두고 해석이 분분했지만 무엇보다 25.7%라는 저조한 투표율이 눈길을 끕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로 정치권과 서울시민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보수언론도 아연실색, 별일 아니라는 듯 짐짓 큰 타이틀로 다루지 않았죠. '사후약방문' 격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투표율을 예상했다'는 반응을 내비치긴 했지만, 속내는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였겠죠. 여권 일각에서 나온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 비교해 실질적 승리', "여론은 아직 무상급식 반대" 등 자조 섞인 넋두리는맥 빠진 소극(笑劇)을 보는 듯했습니다. 아직도 '제 논에 멋대로 물 대는' 버릇을 못 고치다니.

'형편과 예산에 비추어 치우침 없이 가능한 한 복지를 확대한다'는 일반론에 대부분 찬성하리라 봅니다. 주민투표의 과정에서 아쉬운 점은 서울시장ㆍ한나라당 안(이하 1안)과 서울시의회ㆍ민주당 안(이하 2안)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여기에는 정치권은 물론 언론의 책임도 큽니다. 그저 '단계적 무상급식(1안)' 대 '전면적 무상급식(2안)'의 대결처럼 비쳤죠. '단계적'이란 말에는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숨은 뜻이 있고, '전면적'이라는 말에는 '전체를 대상으로 실시한다'는 뉘앙스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1안에는 초ㆍ중학생에 대한 범위의 확충이 결여된 반면, 2안대로라면 고등학생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어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말에 어폐가 있습니다. 2안에는 고등학생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이 없는데 비해 1안에는 50%라는 목표치가 제시돼 있죠. 또한 2안대로 해도 유예기간(준비기간)이 있으니 당장 실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부 시간 개념이 포함돼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각각의 안에 대한 정확한 비교는 물론 안의 집행에 따른 예산 소요, 재원조달 방법, 절감 예산분의 전용(轉用) 계획 등 구체적 내용이 다루어지지 않은 채 투표가 '아이들을 볼모로 삼은 나쁜 (단계적ㆍ선별적 무상급식)' 대 '나라 망치는 인기 영합 (전면적ㆍ보편적 무상급식)'이라는 구호 위주 감정적 대결구도로 진행됐죠.

외전적(外傳的) 성격이지만,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형주성(荊州城) 싸움을 떠올리게 합니다. 무상급식 투표와 형주성 싸움이 그 촉발원인과 진행 과정, 결과에 있어서 아귀가 꼭 맞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 겹치는군요. 촉(蜀)ㆍ오(吳)ㆍ위(魏), 삼국의 접경에 위치한 형주성은 '작은 정부'라 일컬어질 정도로 상징성이 큰 군사적 요충이었습니다. 성주는 로열 패밀리의 일원이자 당대 최고의 무장 중 한 사람으로 추임 받은 관운장이었지만, 오나라 여몽ㆍ육손의 계교로 형주성을 빼앗기고 패사합니다.

기개가 하늘을 찌르는 자부심 높은 장수인 관우는 위ㆍ오 동맹의 파괴력을 우습게 알았을뿐더러 내심 믿는 바가 있었습니다(초반 정세판단의 그르침). 강 언덕 산봉우리마다 설치돼 오군의 침입을 예보해 줄 조기경보시스템이 그것이었죠. 그러나 봉화대는 객상(客商)으로 위장한 오군에게 함락돼 통신망이 붕괴됩니다(내부 소통 부재). 패주 중에는 어느 곳으로 혈로를 열지 갈팡질팡하고, 맥성(麥城)으로 쫓겨온 후에도 출성하여 에움을 뚫을지 수성할지 망서립니다(출구전략 미비). 결정적으로 유봉ㆍ맹달 등도 관공의 어려움을 외면하죠(우군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함).

형주성 싸움을 관전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르는군요. 촉나라 실세 대주주인 제갈량의 그 무렵 행적이 묘연합니다. 천기를 꿰뚫는다는 제갈량이 왜 유독 이 대목에선 무기력한 걸까요. 전능한 제갈량이 형주성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나 형주성 패배를 방지할 사전 대책을 세우거나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촉주(蜀主)인 한중왕(漢中王) 유비를 부추겨 오히려 관우로 하여금 형주를 비우고 출성(出城)하여 위(魏)의 번성(樊城)을 선제공격하도록 유도합니다. 나중 비상사태인 형주성 함실과 관우의 분사를 알고도 유비에게 급고하지도 않죠. 왜 그랬을까요? 원모(遠謀)와 심계(深計)가 있었으리라 추측합니다. 제갈량은 중원 공략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내심 불편한 관계인 관우를 내치고 책무를 방기한 것이 아닐까…?

그나저나 오는 10월 26일이면 향후 정국의 가늠자 역할을 할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실시됩니다. '거대한 전쟁'의 서막이 오르는 것이지요. 뜻밖의 사건ㆍ사고와 자천타천 영웅들 간의 쟁투, 이합집산이 관전자들을 헷갈리게 할 것입니다. 삼국지 후반부에 등장해 제갈공명과 함께 천하를 다툴 중달(仲達) 사마의가 누구일지도 관심거립니다.

김윤옥 (210.XXX.XXX.91)

그동안 서울 시민이 참았던 가지가지 못볼꼴들이 여북했으면 지금 이지경까지 왔겠습니까? 미쳐 상상 할 수도없었던 IT 황제가 정치판에 뛰어드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해서 그동안 참았던 시민들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보았습니다. 말씀 하신대로 역사를 통해서, 고전을 통해서 우리가 만난 오늘을 재 음미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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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0 0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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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4.XXX.XXX.37)

김윤옥님 말씀 옳습니다. 난공불락일 것 같던 박근혜 전대표의 지지도가 허수일 수도 있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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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0 10: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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