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혼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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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혼은 그만

오마리

2011년 09월 21일 (수) 01:57:16

마지막 어머니를 뵈었던 그날은 흘러간 명화의 인상 깊었던 한 장면처럼 떠오릅니다.
시간이 흐르면 잊힌다는데 오히려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은 그 이별이 내 가슴에서 지울 수 없을 만큼 슬펐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둑어둑 해 저물녘,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지팡이에 의지하여 선영의 언덕을 내려와 바위에 걸터앉으셨습니다. 뇌경색으로 언어장애가 생겼던 어머니가 손짓발짓으로 제게 마지막 하신 말씀은 ‘이제 다시는 못 보는 거지’였습니다. 항상 어머니는 그 바위나 정자에 앉아 멀리 산허리를 넘어가거나 오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시곤 하셨는데 행복하지 못했던 고국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해외로 떠나는 막내딸을 그곳에서 지켜보시고 계셨습니다. 산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통곡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어둠이 깔리는 바위에 앉아 우시던 어머니와 지팡이의 실루엣이 그림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의 통곡이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출국 전 처음으로 남편 앞에서 나 또한 어머니처럼 통곡을 하였었는데 그 이유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충분한 용돈을 드린 적 없었던 불효 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다른 형제들보다 잘 살지 못하고 몸도 성치 못한 막내의 용돈을 한사코 받으려 하시지도 않으셨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직접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는 것보다는 남편이 스스로 장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것을 원했습니다. 자신의 봉급을 스스로 관리하는 남편, 언제나 친정이 시가보다 모든 것이 더 여의하고 자식들이 많아 어머니를 잘 보살피지 않느냐, 그러니 우리는 그저 멀리 있어도 된다, 라는 남편의 생각이 서운할 때가 한두 번 아니었고 부당하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지만 나는 남편 모르게 친정에 한 푼이라도 보낼 생각이 없었습니다.

결혼 이후 시어머니와 남편과 자식들을 위한 것 외에 내 어머니의 생일을 챙긴다거나 명절마다 제대로 따뜻한 선물조차 해 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해외에 산다는 핑계도 있었겠지만 짧으나마 국내에 거주하던 동안도 그랬었기에 처음으로 남편에게 항의를 하며 통곡이 터졌던 것입니다. 유학생활 동안 수년간 큰 아이까지 키워주신 장모께 무얼 우리가 해드린 게 있었느냐는 나의 반발이었던 것입니다.

해마다 명절이 지나면 명절 이혼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부부 갈등이 심해진다는 국내의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내가 살아왔던 시간을 다시 반추해보았습니다. 해방 전 태어나신 내 어머니의 세대도 전후에 태어난 나의 세대도 아닌 세대가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7080 세대를 지나 386세대, 그 이후의 젊은 세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 사회입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친정, 시댁, 처가, 친가라는 단어가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전통미를 벗어나 왜 불편한 어휘로 전락하고 있는지, 왜 한국에서만 아름다운 명절이 불협화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너 아니면 못살아, 너 아니면 죽을 거야, 울며불며 하다가 사랑의 완성이란 결혼식장에 섭니다. 그러나 결혼 후 너 아니면 죽겠다던 그 뜨거웠던 사랑과 열정은 이제 네가 가면 어디로 가겠니? 네가 내 것이 되었는데, 어디 갈 테면 가봐라, 그렇게 안이함으로 변질되어버립니다. 더욱이 가파른 현실 속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작은 열정의 잔재도 모두 사라져 버립니다. 거기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조차 게을리한다면 결국 결혼이란 대양에 떠 있는 배는 키를 잃고 좌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혼은 젊은 날의 열정과 뜨거운 사랑으로만 살아가는 두 사람만의 삶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만나 아이를 낳고 많은 갈등과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해야 하는 결혼이란 나보다 상대방을 위한 삶이 우선이라는 이타심과 인내심을 길러야 합니다. 내 부모가 소중하면 배우자의 부모도 소중한 것이고, 내 부모와 형제를 상대방이 소홀하게 하지 않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상대방의 부모 형제를 보살피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어찌 보면 무척 단순하고 간단한 논리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싫은 것은 상대방도 싫어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상대방도 좋아한다는 유치원 아이들의 논리입니다. 그러니 서로 이기심을 버리고 배우자의 마음과 그 상황 위치에 서서 헤아려 보면 매사가 원만히 해결될 것을 끝까지 자신의 식대로만 독선을 하려 하니 불행한 결과가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디 명절 때 받는 가사노동의 스트레스나 갈등이 부부를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몰고 가겠습니까? 평소부터 쌓인 것들이 명절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결국 봇물이 터지듯 터지고 마는 것이지요. 부부가 평소 배우자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고 배우자의 불만과 아픔을 들어줄 아량이나 대화에 인색했던 결과일 것입니다. 서로 마음을 열고 같이 아픔을 나누려 하는 자세, 사소한 것들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 된다면 명절이혼이란 말도 없어지지 않을까요?

bioj56 (211.XXX.XXX.208)

요즘 영악한 젊은새댁들은 친정을 더 더 잘챙기는걸 보면
우리네 시대엔 너무나도 바보같이 시댁만을 챙겼지요
그러나 시어머니도 친정어머니도 둘다 똑같이 잘 챙겨야할텐데
왜 그리도 그런 지혜가 이렇게 다 나이든 다음에 생각나는지요
다행이 부모님이 오래 사셔서 효의 기회를 가진 저는 참으로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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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0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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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 (24.XXX.XXX.229)

그렀습니다, 아직도 구시대적 편견을 타파치 못한 우리네 현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점점 나아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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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6 07: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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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시댁이냐. 친정이냐, 처가이냐, 친가이냐, 라는 개념을 지우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내 딸이라고 생각하도록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도록 하는 마음으로 부모님들을 대한다면 문제는 없어질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들께서도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셔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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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1 0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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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어멍 (211.XXX.XXX.251)

아들의 여자는 딸이 될 수 없고, 딸의 남자 역시 아들이 될 수 없는 현실. 친정엄마는 언제 들어도 가슴시리고 시어머니는 언제 들어도 복장터지는... 뭐 그런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가끔 글로 배운 가족이 실현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네요... 구력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정다운 시댁이 되기에는 너무 먼 당신입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만큼이나 더디고 어려운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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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5 2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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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아기 키우기에 바쁘신 분인 것 같은데 댓글까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영원한 평생선이 시댁과 친정사이의 길인가요?
그래도 마음을 열고 어렵지만 먼저 사랑을 보낸다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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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1 0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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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장춘 (24.XXX.XXX.229)

명절 때 일어나는 부부간 갈등 모습이 평소에 쌓인 배려나 사랑의 결핍에 기인한다는 작가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우선 우리집에서 부터 이러한 대화와 애정실천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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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2 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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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노력을 하신다는 말씀 매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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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2 22: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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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욱 (24.XXX.XXX.229)

어머니 얘기는 항상 짠한 마음을 가져다 줍니다.
요번 명절에 누가 그러더군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딸과 며느리의 관계가 서로 다른 것은 조건을 갖다 붙이느냐, 안붙이느냐의 이유인 것 같다고..
친 핏줄에 대하여는 무조건이고 인척관계는 조건부라는 거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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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2 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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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어머니,라는 단어는 항상 애잔한 마음을 불러일으키지요.
남들이 만나도 가족을 이루어 살 수 있는데 부부간의 가족으로 하여 일어나는 불화는 모두 내 조건만 편하려고 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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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2 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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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 (123.XXX.XXX.242)

좋은 글 잘 보아았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명절에 고향을 찾아 대 이동을 하는 좋은 풍습이 있는 나라도 적은데 말씀처럼 명절이혼은 없어졌으면 좋겠습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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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1 0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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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정말 아름다운 풍속입니다. 명절을 지키는 풍속이.
이곳의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머스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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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2 22: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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