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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과 무소속 정치
임종건 2011년 09월 23일 (금) 00:41:17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당들의 적폐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라는 분석이 보편적입니다. 안씨는 서울시장 출마를 무소속으로 할 것이라고 했고, 그로부터 바톤을 넘겨받았다고 할 참여연대 출신의 박원순 변호사도 민주당의 입당 러브콜을 외면하면서 무소속 출마 입장을 아직까지는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덩달아 범여권 후보로 나선다는 경실련 출신의 이석연 변호사도 무소속 출마입장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한나라당 또는 민주당을 선택한다면 그들에 대한 높은 인기는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추락할 수도 있습니다. 안씨보다 박씨의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박씨가 이미 이전 정권을 거치면서 정치적 성향이 드러난 인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씨보다 이씨의 지지도가 더 낮은 것은 그가 현 정부에서 각료급 공직을 맡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당정치에 대한 염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평생을 살아가는 부부간에도 권태기가 있습니다. 선거는 국민들의 정치적 권태기를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권태기는 대통령이 5년, 자치단체장은 4년 이내로 잡혀 있으며, 흔히 말하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은 정치적 권태기의 상한선이라고 할 것입니다.

무소속 출마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과 조급함 속에서 감지할 수 있는 다른 하나의 현상은 유권자의 권태기가 빨라진 나머지 거의 상시화 단계에 와 있지 않느냐는 점입니다. 실제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시행된 이후 찍어 놓고 후회하는 일이 일상화 돼있는 게 한국적 현실이기도 합니다.

많고 많은 정치불신의 원인 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여야 정당들이 다르지 않은 것을 다르다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보수와 진보는 흔히 균형을 이뤄야 잘 날 수 있는 좌우의 날개로 비유됩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정당들은 보수 진보로 갈려 죽자하고 싸웁니다. 진보도 집권을 하면 보수로 변하고, 보수도 야당이 되면 진보를 주장하는 법인데도 말입니다.

인간의 의식 속에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듯이 지역이나 세대 간에도 진보와 보수의 성향은 섞여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한나라당을 찍은 영남에는 보수만, 민주당을 찍은 호남에는 진보만 사는 것처럼 왜곡돼 있습니다.

여야가 같다는 것은 선거 때 공약을 보면 확연합니다. 표가 될 것 같으면 서로 베껴 쓰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반값등록금에 맞장구를 치고 나선 것은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같은 족속들이 서로가 다르다며 싸우고 있는 중에 더욱 가관인 것은 그렇게 싸우다가도 자기들의 밥그릇을 챙길 일이 생기면 잽싸게 한통속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같이 젊고 참신하고 성공한 벤처기업인에다, 학벌 출중하고(서울대 의대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 MBA출신), 금상첨화로 기존정치에 발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등장하니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안철수 현상의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양당제 역사가 100년 이상 된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보수 진보의 대립은 있고, 정강정책의 동질화 현상도 있습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이념적으로 사형제, 낙태, 감세 등에서 차이가 있다곤 하나 많이 좁혀졌고, 이제는 정당의 차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차이로 인식되는 추세입니다.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도 대처 수상의 보수당 정권 때 노조개혁과 공기업 민영화 문제로 첨예하게 대결했으나 그 후론 두 정당의 노선이 비슷해졌습니다.

이런 이념의 동질화 현상이 유권자들의 기존 정당에 대한 무관심을 심화시키는 한편, 제3당의 출현을 대망(待望)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낳았습니다. 그 한 예가 1992년 미국 대선 때 로스 페로라는 기업인 출신이 개혁당의 기치로 출마, 19%의 지지를 얻은 사건이었습니다. 같은 해 한국의 제 14대 대선에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이 국민당을 창당해 민자 민주당의 양당에 도전, 16.1%의 지지를 얻은 것은 우연의 일치치곤 절묘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대통령제와 내각제라는 상이한 정치제도 하에서도 양당제를 모범적으로 운용하는 나라입니다. 이념의 동질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두 정당에 대해 국민들이 덜 권태롭게 여기는 것은 정권교체가 순탄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3당이나 무소속 세력의 도전이 성공을 거두기 어렵게 돼 있는 구조인 겁니다.

그 점에서 내각제 국가인 일본에서 1980년대부터 모습을 드러낸 무당파의 입지가 상당히 견실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주목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무당파 현상은 자민당의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적 염증의 반영이자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에 대한 불만의 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민당은 변화에 무디고, 야당은 지리멸렬해서 미덥지가 않다는 표시가 무당파지지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95년 자치단체 선거에서 도쿄와 오사카의 지사가 무당파에서 나오는 등 큰 파장을 일으킨 이후 도쿄에선 무당파의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가 1999년 첫 당선이후 올 봄 선거에서 4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재작년의 오사카지사 선거에서도 사실상 무소속이라 할 수 있는 ‘오사카 유신회’라는 지방당의 젊은 후보 하시모토 도루가 당선됐습니다.

잡다한 야당들과 자민당 탈당파들이 연합한 민주당이 2009년 집권함으로써 55년만에 자민당 장기집권이 붕괴됐습니다만 그 후 민주당 정권 2년 사이 3명의 총리가 바뀌는 등 정치불안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일본에서 무당파의 존재이유도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의미의 무소속은 없었습니다. 기존 정당에 공천을 신청했다 떨어진 사람들이 출마할 때 내거는 기치가 무소속입니다. 그들은 당선되면 대개 원래 소속 정당으로 되돌아 갑니다.

안철수 현상은 그 점에서 이전의 무소속과는 다른 현상입니다. 일본을 닮아가는 조짐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앞서 1997년 대선에서 야당의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일본보다 10년 이상 전에 정권교체를 경험했고, 그 정부는 같은 뿌리의 노무현정부로 1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 점에서 한국이나 일본은 보수정권의 장기집권 끝에 진보 야당에 의한 짧은 정권교체를 경험한 셈입니다. 그러나 타협을 모르는 대결의 정치, 당내 분열, 지역할거형의 정치 등의 면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이같은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한국에선 무소속에 끌릴 수 있는 많은 유인들이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권태기를 해소해 주는 정치행사로 선거가 치러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나 그런 정치의 싹은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소속의 정치는 아나키즘처럼 이론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현실에선 성공하기 어려운 정치 모델이고, 무소속정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큰 것은 그만큼 정치의 건강도가 낮음을 반증하는 겁니다. 순탄한 정권교체를 통해 국민들의 권태를 해소해주는 양당제의 정착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안철수 현상에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것이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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