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선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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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선 자본주의

방석순

2011년 10월 10일 (월) 01:18:02

오랫동안 자유와 평등의 나라, 지구촌의 이상국가로 부러움을 사던 미국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번영의 상징이던 미국이 외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모순, 내부적 갈등에 의해 위태로운 지경에 놓였습니다. 자본주의의 꽃으로 여겨지던 미국의 금융시장이 지금 젊은이들의 거센 항의에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중순 미국의 심장부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젊은이들의 시위는 노조와 사회단체까지 가세하면서 거대한 분노의 물결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피켓을 치켜든 시위자들은 대기업과 금융 자본을 ‘돈을 탐하는 괴물’이라고 규탄하며 ‘일반시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부와 권력에 치우친 금융체계’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사태가 젊은이들의 일과성 화풀이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미 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기회의 불평등, 빈부격차의 확대, 자본과 대기업의 부패라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들을 들고 합세한 만큼 그런 문제들이 누그러지지 않는 한 얼마든 계속되고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는 현상,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멀리 플로리다에서 친구들과 함께 차를 몰고 와 시위에 참여했다는 한 고교생의 말이 시위자들과 지지자들의 밑바닥 심리를 대변해주었습니다. “혁명을 해야 한다. 빈부 격차가 너무 심하다. 탐욕스러운 부자들한테 중과세를 해야 한다.”


	<지난달 17일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진 시위>

미국은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꿈을 이룰 수 있는 곳, 기회의 땅으로 불려왔습니다. 너도 나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찾아들던 나라였습니다. 베트남전 후 다소 의기소침했던 미국은 1980년대 감세, 시장규제 완화 정책을 내세운 레이거노믹스 덕분에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활기를 되찾고 모두가 부자의 단꿈을 꾸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시장경제의 열풍 속에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중류층은 소리 없이 사라져 사회불안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는 것이 최근 상황에 대한 학자들의 분석입니다. 2005년 통계에서 미국의 상위 1%가 전체 소득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이 8%에서 17%로, 최상위 0.1%의 초부유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3%에서 7%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엘리트들은 앞다퉈 증권가, 금융가로 뛰어들어 7~8억 원의 고액연봉에 우쭐거리며 월스트리트를 활보했습니다. 반면 세계 제일의 부국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극빈층은 수천만 명으로 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잘난 금융 전문가들이 터뜨린 것이 2008년의 리만브라더스 사태입니다. 창작과 생산에 썼으면 더 좋았을 아까운 두뇌로 돈놀이에 몰두한 결과였습니다. “금리가 인상돼도 오른 집값으로 다시 융자 받으면 된다”며 빚을 내 집을 사도록 꼬드기고, 부실채권을 우량증권과 뒤섞어 팔아 결국엔 수많은 노숙자를 만들고 세계를 금융위기에 몰아넣은 것입니다.

뉴욕 시위에 대해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하고서도 여전히 부를 누리고, 유세를 떠는 데 대한 반감의 표출”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혹시 번영의 상징으로 미국의 환영, 허상만 보고 좇아왔던 건 아닌지, 회의에 잠기는 경제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자원이 부족하고 땅덩이가 작은 우리로서는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 시장을 겨냥한 교역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시장경제, 자본주의 폐해의 진행이 오히려 미국을 앞질러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서민의 금고 저축은행들이 거덜나는 과정을 살펴보면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탐욕과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고 있습니다. 금융기관의 몰염치와 감독기관의 부도덕이 서민들의 치를 떨게 합니다.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으로 은행을 떠나며 동료들에게 눈물로 재기를 당부하던 여직원의 고별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막대한 공적 자금으로 되살아난 은행들이 지금 돈에 쪼들리는 기업과 서민들은 외면한 채 이자놀이로 거둬들인 과실을 나눠먹기에 바쁩니다. 불투명한 금융상품에 꿀과 분을 바르고 장밋빛 전망으로 개미 투자자들을 유혹, 이익 챙기기에 골몰하는 주식시장에 대한 불만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습니다.

세계화, 친기업적 환경 조성 등 정부 시책에 편승해 부를 쌓아온 대가업들의 행태도 목불인견입니다. 불법적 비자금 조성과 음성적 로비, 편법적 재산상속, 중소기업에 대한 일방적 납품가 인하는 물론 어린아이 손에서 사탕 빼앗듯 기술력 탈취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 사이 중소기업, 소상인은 몰락하고 영세서민들은 거리에 나앉을 정도로 소득격차, 빈부격차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생존을 위한 서민들의 발버둥은 아랑곳없이 수십억 원으로 치솟은 대기업 임원 연봉에 대한 시비에 어느 재벌 총수는 “더 줘야 한다”고 응수해서 서민들의 기를 죽였습니다. 기업 편애적인 정책에 힘입어 고수익을 올리면서도 정부의 경제운용에 “낙제점을 면한 수준”이라고 평하는 오만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기술 개발, 산업구조 개편, 고용형태 변화로 부익부빈익빈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것입니다. 정부가 뒤늦게 공정사회를 부르짖고 동반성장을 외치지만 효과는 미지수입니다. 단순히 생산 품목을 규제한다고 해서 공정경쟁, 동반성장이 이뤄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칫 관련 산업의 낙후와 고사만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품질을 높이고 효율성을 제고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해 보입니다.


	<지난 주 잠실 롯데마트 본사 앞에서 벌어진 일인시위>

123층의 국내 최고층 빌딩 롯데 슈퍼타워가 건설되고 있는 잠실에서 대기업을 성토하는 구호가 적힌 널빤지를 등에 매달고 기어 다니는 일인시위를 보았습니다. 영세 상인들의 생존권이 달린 전통시장 가까이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시위였습니다. 순서로 보면 제조업보다 전통상가나 마을 상점의 영세 상인들이 더 다급해 보입니다. 상인들의 생업도 보호하고 일반 주민들의 소비생활에도 도움을 주는 시공간적 조정과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 탓인지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도 나눔과 베풂에 쏠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진 자들의 나눔과 베풂에 호소해서 공정사회, 따뜻한 사회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돕고 지켜주는 확실한 룰을 만들지 않고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극화현상을 막을 수도, 사회 안정을 꾀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통제받지 않는 시장경제,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괴물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본성을 도외시하고 이상에 치우쳤던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했듯이 자본주의 역시 탐욕과 약육강식의 인간 본성을 무시하고 방치했다가는 어떤 화를 부를지 알 수 없습니다.

인내천 (112.XXX.XXX.244)

생산의 무정부성,부의 편중으로 자본주의는 한계에 다다를 수 밖에 없죠.계획생산과 평등을 지향하는 시회주의도 망했는데......
문제는 몇 미터 앞에 벼랑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멈추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음이 답답합니다.
멈추지 않는 세계화,마구 체결하는 FTA,중소가게 잡아먹는 대형 체인점,재벌이익 챙기는 비정규직 양산,제조업이 아닌 주식과 증권의 야바위 놀음,각종 복지정책의 후퇴,자국 농업의 천대 등이 우리사회를 내리막 길로 가게하는 요인인데 시정되기는 커녕 확대되고 있으니 희망이 없죠. 그래서 분노하는 국민들이 거리로 몰려 나올 수 밖에 없죠. 생산으로 축적하지 않은 부는 모두 거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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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2 17: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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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홍진 (1.XXX.XXX.234)

자본주의 시장경제 까지--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잘 읽고
생각을 고쳐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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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1 16: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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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121.XXX.XXX.42)

관심을 가지고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금융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릴 만큼 모두가 그 큰 비중과 역할의 중대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금융이 당초 바라던 기능이나 역할보다 사리사욕에 골몰할 때 그 만큼 폐해도 커지겠지요. 현재의 경제 위기를 몽땅 부도덕한 금융업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가장 큰 원인, 특히 시위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BoA가 적자를 이유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서도 그 책임으로 물러나는 경영진에게 수십억 원의 퇴직금(?)을 지급해 격분을 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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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1 10: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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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장춘 (121.XXX.XXX.42)

방석순 위원님의 컬럼을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칼럼 뿐 아니라 다른 비슷한 컬럼 몇몇도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금융업 주도층과 종사자들의 도덕적 해이 뿐 아니라 나아가 탐욕이 세계적인 경제문제의 핵심적인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는 데에 일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컬럼이 지적하는 방향은 맞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들 금융이 차지하는 책임의 비중을 얼마로 측정해야 하느냐 하는 점이 중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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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1 10: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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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121.XXX.XXX.42)

내용에 공감합니다. 너무 잘 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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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1 10:2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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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국 (121.XXX.XXX.42)

방 선생님! 외람되지만 오늘 글은 넓고 깊은 바다를 보는 것 같습니다. 온갖 풍랑과 잔잔함을 다 품은 대양말입니다. 멋진 모습 더 빛나는 가을이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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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1 10: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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