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의 학원비 마련을 위해 가정주부가 파출부 아르바이트를 나간다는 얘기까지 들려오고 있습니다. 자녀가 좋은 성적을 얻어 일류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남부럽지 않게 살도록 하려는 뜻에서겠지요. 그러나 고학력자들의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사정이고 보면 대학 진학이 반드시 밝은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그런 점에서, 울산 지역의 학부모들 얘기는 하나의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최근 조사결과 전국적으로 비교해서 자녀들에게 과외공부를 덜 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니 말입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자리잡고 있는 덕분에 오히려 다른 데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지역이 바로 울산입니다.

그런데도 자녀들 학업에 관심이 덜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생산직 사원으로 취업하기만 해도 웬만한 대졸자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이 지역 학부모들의 상당수가 고교 출신이면서도 대학을 졸업한 동년배들보다 월급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자녀들도 어렵게 대학에 진학하기보다 자신들처럼 일찍 진로를 결정하기를 바란다는 것이 조사의 내용입니다.

사실은, 고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우리의 현실이 오히려 문제입니다.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학력 콤플렉스’ 탓이겠지요. 기업들도 대졸자 위주로 신입사원을 채용해 왔습니다. 졸업장 장사로 연명해가는 부실 대학이 적지 않은 것도 거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반값 등록금’ 파동도 이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학교 졸업생들에 대한 취업 문호가 대폭 개방되는 조짐이어서 채용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금융권과 공기업은 물론 유수의 대기업들이 고졸자 채용확대 계획을 연달아 내놓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숫자만 채우려는 게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도 파격적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대우조선해양의 '중공업 사관학교' 운영 계획은 새로운 실험으로 평가받을 만합니다. 고졸 출신자들을 해마다 100명씩 선발해 설계, 프로젝트 분야의 중책을 수행할 정도의 전문가로 키우는 자체 교육기관을 운영하겠다는 것입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정상적으로 마치게 된다면 대졸 신입사원들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게 대우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중공업 사관학교라는 용어는 아마 미국의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서 본뜬 듯합니다. 웨스트포인트는 뛰어난 인재들이 몰리기 때문에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의 아이비리그에 비해서도 꿀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육·해·공군사관학교 경쟁률이 해마다 20대 1을 넘을 만큼 높은 인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학비를 면제받는 데다 졸업 후에도 취업이 보장된다는 사실이 강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일단 성공적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미 널리 보도되었다시피 32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에서 뜨거운 호응도를 확인하게 됩니다. 지원자 중에는 과학고와 외국어고, 특목고 학생들은 물론 내신성적이 1~2등급인 경우도 수두룩했다고 합니다. 비싼 등록금을 들여 대학에 진학하느니 차라리 돈도 벌고 실무 경험을 쌓겠다는 지원자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밖에 삼성그룹을 비롯해 SK, LG, 포스코, 두산 등 대기업들도 고졸자 채용확대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채용규모가 늘어났을뿐 아니라 능력에 따라 획기적으로 우대한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부의 공생발전 방침에 의해 기업들이 마지못해 따르는 것이라는 지적이 없지 않지만, 제대로 정착만 된다면 학벌사회의 병폐를 바로잡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학력과 대학동창 인맥에 의해 사회활동이 적잖이 영향을 받는 우리 풍토에서 과연 고졸자들이 제대로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고졸자 채용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대졸 사원들과의 미묘한 알력 문제도 고려돼야 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높다란 장벽이 존재하듯이 학력으로 인한 파벌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균등하게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급여와 보직, 승진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인사 시스템 확립이 선결 과제입니다. 기업들의 고졸자 채용확대 및 차별철폐 방침이 한때의 스쳐가는 바람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필수적이라는 얘깁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은 이제 말끔히 지워져야 합니다. 학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대학 졸업장이 없다고 해서 능력 자체를 무시당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기업들의 고졸자 채용방안은 그러한 관행을 세워가는 지름길입니다. 무엇보다 사회적 편견과 장벽을 뿌리치고 과감히 취업의 길을 선택한 젊은이들마다 앞으로 ‘고졸자의 신화’의 영예로운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