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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죽음 보도를 보며
박상도 2011년 10월 31일 (월) 01:56:49
1985년 7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에서 물놀이를 하던 다섯살 난 에드워드 로메로가 물에 빠져 숨졌습니다. 해마다 수천 명이 익사하는 사고가 나는 미국에서 이 사건이 주목받은 이유는 단 하나, 그 아이의 시신을 찍은 사진이 보도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이 사진을 게재한 지방지 ‘캘리포니언’에는 신문에 시신 사진을 싣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진을 본 편집국장이 “어린이들이 수영할 때 부모들이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줘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진 게재를 결정했습니다. 신문을 본 8만명의 독자 가운데 400명이 전화를 걸어 항의하였고 500명이 항의 편지를 보냈으며 80명이 구독을 취소하였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사진이 퓰리처상 후보로 추천된 것입니다. “나쁜 일은 시작이 어렵지 한 번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쉬워진다”고 했던가요? 이 사건 이후 우리는 죽은 사람의 모습을 대중매체를 통해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TV를 통해서는 상당한 부분이 모자이크 처리가 되고 있지만, 무아마르 카다피의 처형은 모자이크마저 생략되었습니다.

생물학 용어 가운데 역치(閾値ㆍthreshold valueㆍ문턱값)라는 것이 있습니다. 생물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 자극의 크기를 의미합니다. 약한 자극에 흥분하면 역치가 낮은 것이고, 강한 자극을 주어야만 흥분하면 역치가 높은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같은 크기의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역치가 올라가 더 큰 자극을 주기 전에는 자극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 역치의 개념을 카다피 최후의 순간 보도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불륜과 폭력이 난무하는 오늘날 TV드라마와 비교해봐도 42년 간 무소불위의 철권 통치를 자행했던 독재자 카다피가 쫓기고 쫓겨 고향 마을인 시르테의 하수구에서 시민군에게 발각되고 개처럼 끌려다니다가 길바닥에서 삶을 마감하는 장면은 스토리 그 자체로도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었습니다. 스토리 자체가 이미 역치의 최고판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쏘지 마”를 연발하다가 길바닥에 흥건한 핏자국을 남기며 쓰러지는 모습은 비주얼적으로도 9ㆍ11테러 장면 이후 최고의 볼거리(?)를 선사한 셈입니다.

이러한 충격적인 영상을 언론에서는 ‘독재자의 비참한 최후’라는 설명으로 자신들이 보내는 영상의 폭력성에 대해 당연하다는 듯이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하긴 그렇습니다. 정권 이양을 요구하는 무고한 시민 수만 명이 카다피의 군화 아래 목숨을 잃었습니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카다피는 능지처참을 해도 시원찮을 나쁜 인간임에 틀림없습니다.

시민군이 카다피를 생포해서 옥신각신한 끝에 누군가 총을 쏴서 그를 죽였든 혹은 정식 재판을 해서 그 결과 사형을 집행하든 그들의 선택일 뿐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그렇게 끔찍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매스미디어에서 그렇게 여과 없이 보여줘야만 했나?’ 하는 점입니다. 단순히 카다피가 숨이 끊어져서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모습만이 아니었습니다. 죽고 나서 상반신이 노출된 채 정육점 냉동창고 바닥에 누워 있는 카다피의 모습을 옆에 두고 휴대폰으로 인증 샷을 찍고 있는 시민군의 모습까지 우리는 뉴스를 통해 여과 없이 보았던 것입니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 죽은 것과 그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보고 그 시신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1985년 당시 시신 사진을 실은 신문은 독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안방에 앉아서 사람이 죽어가는 리얼한 장면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젠 이러한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행위가 시청자에 대한 친절한 서비스로 여겨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도대체 지난 20~30년간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우리의 이성이 이렇게 마비되었을까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Don’t think of elephant!)>의 저자인 인지과학의 대가 조지 라코프 교수의 생각을 잠시 빌리면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해집니다. 조지 라코프는 프레임(fram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비이성적인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 이 프레임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동성 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안(Prop 8)이 발의되었고, 이 법안은 찬성 52.24%, 반대 47.76%의 근소한 차이로 통과됐습니다. 사실 동성 간의 결혼은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개인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인정해 줘야 한다는 점에서 이성적 판단에 따른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의 관습에 의하면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고 특히 미국의 경우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동성 간의 결혼은 부적절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조지 라코프는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의 틀, 즉 프레임엔 동성 간의 결혼이 부적절하다는 것이 깊이 뿌리 박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프레임과 이성적 판단이 충돌하는 상황이 되면 우리는 기꺼이 이성적 판단을 희생하게 된다는 것이 조지 라코프의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이 프레임은 고정불변인 것일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Prop 8에 대한 반대표가 47.76%나 나왔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프레임이 변화한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50년 전에 이 같은 법안이 발의되었다면(물론 발의되지도 못했을 테지만)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를 생각하면 사람들이 갖고 있는 프레임이 변화 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프레임은 지속적인 노출에 의해 변화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수년 전에 커밍아웃한 연예인을 생각해 봅시다. TV프로그램 여기저기에서 많은 활약을 하던 그는 자신이 게이임을 밝힌 직후 이 땅의 모든 매체에서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서서히 다시 TV에 모습을 비치고 있지 않습니까?

동성애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30년 전에는 허용 불가, 20년 전에도 허용 불가였지만 10년 전에는 오락가락, 지금은 그저 그런 상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필자는 느끼고 있습니다. 이같은 변화는 지속적인 노출에 의해 우리의 프레임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다시 이 글의 논점인 카다피 최후의 순간에 대한 영상 보도의 문제로 돌아오면, 충격적인 영상을 보는 다수 시청자의 수용 태도, 즉 매스미디어를 대하는 프레임에 변화가 있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립니다. 캘리포니언이 어린이의 시신 사진을 게재한 이후 수많은 매체가 수많은 시신을 모자이크에 의한 것이든 시신의 일부만 보여주는 것이든 사진과 영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방금 우리는 사람이 처참하게 죽어 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유튜브에 올라 있는 카다피 최후의 영상은 4백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씩 조금씩 쇼킹한 장면을 보는 것에 대해 편안해지고 있습니다.

즉, 죽은 사람을 매체를 통해 보는 것이 금기였던 우리의 프레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매스미디어 수용자의 역치 상승과 상업적 이윤이 지상 목표인 매체들의 과다한 경쟁에 의한 옐로 저널리즘의 야합에 의해 우리는 계속해서 더 큰 자극을 향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장면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카다피도 죽고, 그 시신 보도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도 사망선고가 함께 내려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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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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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03.XXX.XXX.30)
글 잘 읽었습니다. 프레임의 변화에 대한 의견 개진만큼 제기능에서 많이 빗겨나가고 있는 매스 미디어에 대한 반성도 좀 더 깊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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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13: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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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도 (222.XXX.XXX.249)
신아연 선생님의 글은 항상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글로만 접하던 선생님께서 이렇게 직접 제 글에 대해 의견을 달아주시니 큰 영광입니다. 부족합니다만 혹시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매스미디어에 대한 깊은 반성이 담긴 글을 써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1-11-02 09: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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