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무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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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무소유

김창식

2011년 11월 10일 (목) 00:05:25

법정 스님이 쓴 수필 '무소유'에는 스님의 성인으로서의 풍모와 인간적 체취가 함께 배어 있습니다. 스님은 장마가 끝난 어느 무더운 여름 날 외출을 했다가 뜰에 내놓고 나온 난(蘭)이 더위에 시들지 않을까 걱정돼 안절부절 못합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스님은 난을 겨우 소생시킵니다. 며칠 후 지인에게 난을 건네주고 나서야 집착과 번뇌에서 풀려나 평안을 얻는다는 내용이 기둥 줄거리입니다.

처음 이 글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적지 않게 당혹스러웠습니다. 친구에게 난을 주고 마음의 거리낌에서 벗어났다는 말을 어떻게 풀이하여야 하나? 혼란스러운 중 스님이 주창한 무소유란 무엇일까를 나름 정리해 보았어요. 스님 같은 대덕고승이 일생동안 추구하고 몸소 실천한 무소유는 비움을 통한 '텅 빈 충만', 곧 공(空)의 세계와의 우주적 합일(合一)을 뜻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스님이 사바세계의 중생들에게까지 그러한 무위자연의 선불교적 경지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면 실용적인 의미에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무소유란 어떤 것일까요?

우선 "지나친 욕심을 내거나 남의 것을 탐해선 안 된다"는 가르침이니 자신의 분수에 맞는 소유를 일컬음이겠지요. 작금의 우리 사회는 도덕성보단 개인의 영달과 부의 축적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지난 세월 단축 공정과 과속 성장으로 대표되는 산업자본주의에 길이 든 우리네 삶은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바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갖게 되면 이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무엇에 집착하는 것이 욕망의 속성이니까요. 그럴수록 마음은 평온치 않으니 새롭고 별난 것을 취해 불안을 해소해보려 하지만 불안은 가중되기 마련이지요.

무소유에는 또한 '베풀고 나누는 삶'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익히 들어온 말이지만, "기쁨과 행복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과 불행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요.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면 나눌수록 개수가 많아지고 또 다른 기쁨이 마련돼 있으니까요. 기쁨에도 도미노 현상이 있어 보입니다. 나눔의 기쁨은 순열조합과는 상관없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누구에게든 경제적 지출 없이도 베풀고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여럿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상냥한 미소, 좋은 자리 권하기, 정감어린 눈길과 밝은 얼굴빛, 남을 배려하는 마음 씀…….

그런데 우리는 호의와 도움을 나누는 데 인색한 편입니다. 고유한 민족성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희로애락의 표현을 절제한 유교적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인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각박한 사회적 분위기 탓인가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참다운 이유가 될 수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보다 평소 마음의 밭을 가꾸고 아름다운 것을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가 아닐까 반성해봅니다. 더불어 사는 이웃에 대한 공동체 정신과 응달진 곳에 있는 사회적 약자를 보는 따뜻한 시선이 결여된 때문이 아닐까. 자주 잊고 있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항상 우리보다 더 고통 받고 힘겨운 사람들이 있는데도.

소유로부터 온전히 떠나는 삶은 범인으로선 상정하기 힘들겠지요. 다만 '욕망에 의한 소유'와 '필요에 의한 소유'를 구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의식주를 영위하기 위한 분수에 맞는 소유 외에도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그래서 함부로 놓아 보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순수, 의리, 우정, 사랑의 맹세, 관계의 길들임, 은혜에 대한 감사, 사람에 대한 믿음과 배려……. 이 같은 가치들은 이해타산을 앞세우는 현실적 삶에 별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어 우리 삶의 외곽에 위치한 채 쉽게 버려지고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템들입니다.

하긴 요새는 시인묵객도 두 사람이 모이면 주식과 부동산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자조적인 비아냥도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든, 형이상학적이고 공소(空疎)해 보이지만 그러한 보편적 가치에 대한 향수가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잠복해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방향성을 제시하고 역사의 전개에 물줄기를 튼 것은 다름 아닌 그와 같은 가치를 창달하려는 개개인의 깨우침과 보이지 않는 노력의 결과일 테니까요.

스님이 건네준 난으로 돌아옵니다. 스님이 난을 친구에게 돌려주고 평안을 찾았다는 대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석연치 않았음은 기왕에 고백하였습니다. 그런 행위는 '관계의 길들임'을 내던지고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아마 그렇진 않을 것이에요. 평생 '맑은 가난'을 실천하고 말빚을 지기 싫어 당신의 저서까지 불태우도록 유언하신 스님께서 설마 그럴 리가요? 무언가 다른 숨겨진 뜻이 있으려니. 생각을 거듭한 끝에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스님이 지인에게 난을 준 행위는 비유적인 것이며, 스님의 글은 일종의 '메타 화법'이 아닐까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스님은 난을 있던 곳으로 돌려보낸 것입니다.

스님이 "난초처럼 말이 없다"고 묘사한 지인은 자연과 인간을 사랑하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심성이 고운 분으로 느껴집니다. 그분은 거실 한 켠에 난을 기르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새로운 꽃을 피웠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스님의 마음이 실린 난의 은은한 향기는 헐벗은 자의 거리와 빈자(貧者)의 동네를 휘돌아 동구 밖으로, 온 세상으로 널리 퍼져 나가리라 믿습니다. 스님은 난을 원래부터 그것이 있었던 세상, 우리에게로 돌려보낸 것이니까요. 새삼 스님의 엄격한 용모와 형형한 활안(活眼)이 그리운 이 밤입니다.

김윤옥 (210.XXX.XXX.69)

요즘 제 마음에 가득 찬 화두는 * 전도서 1장 2절-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입니다. 그런가 하면 하루에도 두어 번씩 냉장고 문을 열고 식구들이 먹다 남은 음식 먹어 치워야 하는데 고민만 합니다. 과감하게 버리고 깨끗이 정리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걸 알면서도.
고승의 고매한 무소유 앞에서 이렇게 수준 낮은 사람의 일상을 고백하는 것, 큰 허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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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3 00: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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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6.XXX.XXX.182)

김윤옥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도 버릴 것 버리고 정리하면 머리가 맑아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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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3 14: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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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11.XXX.XXX.49)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세사의 부끄러운 데를 나무라시던 스님의 법문을 들을 수 없어 허전할 때면, 길상사 뜨락에 앉아있다오곤 합니다. 불자가 아닌 나그네의 자유로움으로.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스님을 뵙는 듯 마음이 청랑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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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0 1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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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6.XXX.XXX.182)

한희주 선생님, 그간 여여하신지요? 나중 다시 뵙고 인사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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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1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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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길 (119.XXX.XXX.163)

'맑은 가난'을 소유하는 일은 하루에 한 번 하늘 보며 땅 밟는 일 같아 보입니다. 좋은 글에 머물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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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0 11: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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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6.XXX.XXX.182)

김봉길 시인님, 가을이 깊어가는군요. 제 글에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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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1 09: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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