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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난도를 아시나요
서재경 2007년 05월 16일 (수) 10:44:45
존 포드 감독의「쉐난도」를 기억하시나요? 올드 팬들은 제목만 들어도 주제음악이 생각날 만큼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작품입니다. 미국 남북전쟁의 말기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주제는 부성애(父性愛)입니다. 여섯 아들과 딸 하나를 둔 찰리 앤더슨은 전쟁 중인데도 중립을 지키며 농장을 돌보며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그는 노예제를 반대하기에 남군을 배척하면서 또한 전쟁이 싫어서 북군에의 협력도 거부합니다. 그때 막내아들 제이콥이 스파이 혐의로 북군의 포로가 되면서 집안은 비운에 휩싸이게 됩니다. 온 가족이 나서서 막내를 수소문하며 눈물겨운 수고 끝에 아들을 찾으면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본시 한국인들은 엄부자친(嚴父慈親)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아버지가 주인공 제임스 스튜워트처럼 자식을 찾아 수만리를 헤매는 것은 한국적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어머니는 자애롭게 자식을 감싸는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구한말 조선의 실상을 관찰한 그리피스는 『은자의 나라 한국』에서 당시 엄격했던 부자 관계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담배를 피워서도 안 되며 자세를 흐트려도 안 된다. 아들은 밥상에서도 아버지가 먼저 들기를 기다리며, 아버지의 잠자리를 보아 드린다. 아버지가 연로하거나 와병중이면 아들은 그 옆에서 잠을 자며 밤낮으로 옆을 떠나지 않는다. 만약 아버지가 투옥되면 아들은 그 부근으로 숙소를 옮겨 옥바라지를 한다. 길거리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아들은 진흙구덩이든 하수구이든 간에 무릎을 꿇고 큰 절을 해야 한다.」

그리피스의 기록으로부터 1세기가 지난 오늘, 한국은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부자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의 몇 가지 사례는 오늘날의 부자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첫 번째 사례-. 김대중 정부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초대형교회 목사의 장자가 법을 어겨 교도소에 갔습니다. 때마침 겨울이었는데 아버지는 차디찬 감옥 바닥에서 떨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편안한 잠자리를 버리고 자기도 맨 바닥에 누워 아들의 고통에 동참했습니다. 비판자들은 죄지은 아들 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뉘우쳐야지, 고생하는 아들을 생각해서 바닥에 자리를 편 것은 성직자로서 온당한 처신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두 번째 사례-. 국민의 정부가 끝나갈 무렵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씨가 죄를 지고 감옥에 갔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되자 그는 사면 복권되었고 최근의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이런 변신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후광 덕분이었습니다. 비판자들은 죄지은 아들을 국회의원으로 만든 것은 대통령을 지낸 국가원로로서, 더구나 노벨상까지 받은 DJ가 지도자로서의 금도를 잃은 처사며 비록 당선은 되었지만 DJ의 고향에서 얻은 아들의 득표율로 볼 때 사실상 수치스러운 패배라고 지적했습니다.

세 번째 사례-. 재벌총수 한 사람이 자기 아들이 술집 종업원들에게 매를 맞은 것에 분을 품고 불법적 린치를 가함으로써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경찰의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믿기지 않는 재벌회장의 처신에 아연실색할 지경입니다. 언론은 총수의 지난날 전과를 들먹여 여론재판의 판을 키우고 있으며, 비판자들은 그 총수의 평소 튀는 스타일을 거론하면서 이번 사건이 한국이 법치국가인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중대한 사건인 만큼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마지막 사례-. 지금 이 시간에도 기러기 아빠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러기 아빠는 이제 더 이상 뉴스가 아닙니다. 어쩌다 혼자 병을 앓던 기러기 아빠가 세상을 떠나도 세상이 무심히 받아들입니다. 최근의 성균관대학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버지 열 사람 중 여덟은 자기 자신보다 가족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의 아버지들은 번 돈의 대부분을 자녀들의 교육에 쏟아 붓습니다. 비판자들은 평균수명이 계속 늘어나는 시대에 노후 대비도 없이 자식에게 모두걸기를 하는 것은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례를 열거한 것은 누구를 비방하기 위함이 아니라, 지도층 인사들의 쉐난도 영화를 뺨치는 자식사랑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부자관계가 과연 건강한지를 생각해보자는 뜻입니다. 한국의 어떤 아버지도 다른 사람의 지나친 자식 사랑에 돌을 던질 수 없는 현실이니까요. 1세기 전 그리피스의 눈에 비친 부자관계가 지나치게 아버지 쪽으로 추가 기우러져 있었다면 오늘날은 지나치게 아들 쪽에 쏠려 있습니다. 극단과 쏠림은 결코 좋은 답이 아닙니다. 건강한 부자관계를 모색해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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