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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글
신아연 2011년 11월 18일 (금) 00:04:33
자정을 30분이나 넘긴 지금, 일터에서 돌아오자마자 입었던 옷가지를 세탁기에 돌려 널고 물 한 잔 마실 새도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지금부터 글을 써야 하지만 밥 먹을 틈도 없이 온종일 ‘뺑이’를 친 후라 실상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일하며 배우는 야간학교 학생들도 이 시각이면 수업이 끝날 터이니 그네들에 비해도 저의 처지는 별반 나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수동적인 수업과 달리 아무리 피곤해도 글 쓰며 졸 수는 없는 일이니 흘러내리는 눈꺼풀을 이쑤씨개로 받칠 필요는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더니 오너는 집에서도 쉬지 못하는 법이라 남편이 자영업을 시작한 이후 아침부터 자정 무렵까지 가게에 있는 시간 말고도 머릿속은 온통 일로 채워져 있습니다. 통으로 하루를 비워 글을 쓴다거나 글 쓰는 것과 관련된 일을 하던 때와는 상황이 사뭇 달라진 요즘, 녹록찮은 현실에 이대로 녹아버린다면 그나마 짧은 글쓰기마저 포기하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종종 느낍니다.

하지만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에 치여 부단히 지치고 조금치도 여유가 없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 뿐이겠습니까. 남들은 진즉부터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이제 막 그 대열에 합류해 놓곤 혼자 죽는소리 한다고 흉 들을까 부끄럽지만, 저로서는 삶이라는 거대한 물살에 휩쓸려 그대로 떠내려 갈 것이냐, 아니면 미미하기 짝이 없다 해도 거부와 저항의 몸짓을 지속할 것이냐의 ‘실존적 갈등 상황’에 놓여 있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글쓰기나 다른 창의적, 예술적 작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 말고 일반 생업 수단을 가진 사람이 순간을 여투고 티끌을 모아 자신의 세계를 오롯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하고 숭고하기조차 한 건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고 할까요, 일상에 찌든 생활인이라는 상투적 외피를 벗은 후에도 참 자기라 할 수 있는 옹골진 내면을 가진 사람, 그 사람을 당신은 가졌냐고, 아니 앞으로 가질 수 있겠냐고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 돌아가신 친구의 아버지는 기업의 중역으로 계시면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장 후배들을 위한 따뜻한 조언과 지혜를 담은 책 한 권을 남겼습니다. 50세가 채 안 돼서 돌아가신 분이니 지금 돌이켜보면 일에 파묻혀 지내야 했었을 중년에 어떻게 시간을 내어 틈틈이 글을 쓸 수 있었는지 그분의 치열한 자기관리와 단촐, 정결했을 내면 세계가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지인 중에는 재즈 음악 분야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음악가이자 독서광으로 ‘직장인 아무개’ 말고도 자기를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자신만의 영역을 꾸준히 가꾸어 온 분도 있습니다.

회사의 중간 간부로 일하는 40대 호주 남성 하나는 아마추어 도자기 공예가로서 10년 남짓 제작한 작품이 2백여 점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경우는 직장 생활과 궤를 같이하는 평생 취미를 개발한 셈인데, 퇴근 후 하루 두세 시간을 꾸준히 투자한 결과였다고 합니다.

병원의 간호사로 일하면서 뒤늦게 화가의 꿈을 이룬 후 호주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분, 배관업을 하며 밤마다 시를 써서 최근에 두 번째 시집을 낸 친구의 남편, 은퇴 후 문인으로 인생 후반을 경작하는 이모작 인생, 치과 의사이면서 글쓰기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제 조카 등 손꼽아 보니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잠 안 자고 글을 쓴다 한들 무에 대수랴, 젊지도 않은 나이에 공연히 몸만 축나지 하는 생각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손가락 사이의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더욱이나 실감하게 되는 요즘, 이대로 상황에 마냥 끌려다닐 수만은 없다는 결연한 다짐을 해봅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자, 인생의 참 의미를 알지니 ‘눈물 젖은 글’을 쓰는 자, 깊은 정신적 성숙과 영혼의 섬세한 울림에 다다르길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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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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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27)
'눈물 젖은 글'에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치열한 생업에 매달려 살더라도 꿈을 잃지않는다는 결연한 자기 다짐같습니다.
꿈이 없는 삶이란 그 누구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늦은 밤 잠 못 이루고 여기 이렇게 쓰신 글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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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4 16: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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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선 (203.XXX.XXX.30)
참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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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20:3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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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 kim (203.XXX.XXX.30)
잘 읽고 따뜻한 느낌 감동으로 젖어 듭니다.
늘 가까이에서 뵙고 있습니다.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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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20: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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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임 (203.XXX.XXX.30)
저도 시간이 손가락 사이의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걸 정말 실감하며 때론 조급한 맘이 들기도 합니다.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을 알차게 쓰고싶은데 잘 안되네요. 그래도 그 시간에 들어와 이렇게 글쓰기를 하시는 아연님은 분명 남보다 더 잘살고 있는 겁니다.그래도 파김치가 되도록 몸을 너무 혹사하지는 마세요. 건강을 잃고나면 아무것도 못하게 되니....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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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9: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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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석균 (203.XXX.XXX.30)
우리 이웃에서 늘상 있을 듯한 내용을 꾸밈없이 진솔하게 쓰시는 귀하의 글 늘 잘보고 있습니다.건강하시고 좋은글 계속 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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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9: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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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국 (203.XXX.XXX.30)
신아연씨 글 잘읽었습니다. 저도 호주에서 5년간 공무원 생활하다가 지금은 한국에 돌아와 법원 감정사로 설계사무소 소장으로 가끔은 대학원 교수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교회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를하고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인생의 2막이 다시 열리는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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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9: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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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섭 (203.XXX.XXX.30)
생활 이해가 갑니다.그래도 글을 쓸 수가 있음을 큰 다행으로 아시고 힘내어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스스로를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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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9:5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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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철 (203.XXX.XXX.30)
바쁜 자영업 하에서도 마음속 깊이 내재된 감성을 지속해 주길 바랍니다. 저는 신아연 작가님의 글을 보면 너무 기뻐 만사 제켜두고 우선 읽는 왕팬입니다. 최병철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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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9: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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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장춘 (203.XXX.XXX.30)
선생님의 오늘 컬럼 앞 부분을 읽으며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끝까지 삐뚤 삐뚤 쓰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읽던 중 '시간을 여투'며 라는 표현에서 다투며를 잘 못 표기한 것이 아닐까 하며 국어사전을 찾아 보았습니다. 몰랐던 단어, 그것도 좋은 단어 한개를 얻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씁니다.
호주에서 사시는 분들 중에서도 틈틈이 글을 써서 자기를 표현하는 분들이
늘어 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만큼 호주의 이민사회가 정착의 길로 가고 있다는 말씀도 되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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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9:5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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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 (183.XXX.XXX.143)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한눈을 팔다보면 주객이 전도 되기도 하더라구요.
물론 좋은 의미의 한눈이죠.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아야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있듯이 눈물젖은 원고지에서 잉태되는 글이야말로 독자들을 울릴 것입니다!
그런 글 속에서만 철학은 또아리를 트니까요! 그리고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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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9 09: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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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지인이 그랬습니다. 이제야 정신 차렸냐고.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제 말에 대한 대답으로요.^^ 저는 생활 전선에 뛰어든 이후 거꾸로 말했거든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글이 쓰고 싶다고. 그 분은 페인트를 칠해서 먹고 사는 분인데, 직업과 관련이 있다할지 없다할지 묘하게도 화가랍니다. 그것도 호주 본류사회에서도 알아주는. 이 분은 새벽에 일어나 그림을 그리지요. 잠을 줄이는 수 밖에는 도무지 방도가 없다 하면서. 제대로 한 눈을 판 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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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5: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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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무섭 (220.XXX.XXX.123)
글이 밥먹여주는 것도 아닐텐데 이렇게 그것을 못 잊어하시는 분! 설마 오늘내일, 곧 정리하고 돌아서시겠지 하는데 도무지손을 놓지 않습니다.이제는 악에 받혀서라도 오래 가시겠지요.
그렇게그렇게 가난하고 힘던 화가 반 고흐는 오히려 그림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명성은 약하지만 숨은 고흐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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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9 07: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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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맞습니다. 하지만 어떤 땐 이렇게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데 급급해야 할까, 나는 누군가의 칭찬에 목마른 사람인가 하며 제 자신 글쓰기의 진정한 동기를 탐색하게 됩니다. 의심의 여지는 아직도 많지만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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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5: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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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211.XXX.XXX.74)
누가 시켜서 누군가에게 쫓겨서가 아니라 스스로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때 그리고 아주 가끔 그 중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글 한편이 나올 때의 행복은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르는 일 같습니다. ^^
그 행복을 위해서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도 꾸역 꾸역 써가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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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8 11: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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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그럼에도 그 행복이 과연 무엇인지, 그런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건지 문득문득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그보다 더 생생한 살아있음의 순간도 별로 없었던 것을 보면 앞으로도 '꾸역꾸역' 써 나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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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5: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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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165)
의연하고 주관적 가치관이 뚜렷한 아연님의 사고방식을 존경함니다.
글쓰는 작업을 놓지마세요.
글을 쓴다는 것은 머리와 가슴에 각인되어 시간의 개념을 현실화 하는 정제된 소금처럼 자신을 지켜나갈 수있는 방편도 되는 듯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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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8 04: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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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늘 격려해 주시는 것에 큰 힘을 얻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글쓰기는 자신을 지켜주는 방편이 맞습니다. 마치 옷을 입어서 몸을 보호하듯 세파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닳아 마모되지 않도록 자신을 덧입혀주는 그 무엇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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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5: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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