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_(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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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김창식

2011년 11월 29일 (화) 00:09:31

케이블 TV 프로그램 중 동물, 특히 새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즐겨봅니다. 뭇 날짐승 중 가장 관심이 가는 새는 부엉이랍니다. 어둠이 일렁이다 한 조각이 통째로 날아가면 부엉이가 먹이를 찾아 앉아 있던 가지를 홀연히 떠나가는 것이죠. 부엉이의 털이 부스스 일어나며 몸집이 슬로비디오로 커지거나 목이 360도 회전하는 것을 볼 때면 무섭기도 하지만 유현(幽玄)한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박제 부엉이를 본 적이 있어요. 원족 길 숲속에서 부엉이의 주검을 마주친 기억도 납니다. 산짐승에게 털이 뜯긴 채 눈을 꼭 감고 널브러져 있는 부엉이의 사체는 한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지요.

부엉이는 올빼미과의 조류 중 귀깃[耳翼]이 있는 종의 총칭입니다. 어두운 밤 화등잔 같은 두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을 보면 통찰력 있는 현자(賢者)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부엉이의 귀는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높고 귓구멍 방향도 좌우가 비대칭이어서 상하좌우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미세한 파동을 감지해 음원의 위치를 재빨리 집어낸다고 합니다. 또 움푹 파이고 깃털로 덮인 안반(顔盤)을 움직여 소리를 모아 뒤에 감춰져 있는 귀로 전달해 사물을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파악한다고 하니, 소리를 보는 능력을 가졌어요. '들리는 곳에서 보고, 보이는 곳에서 듣는' 셈입니다.

부엉이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새입니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자장가가 귓바퀴에 맴도는군요. "착한 아이 잠 잘 자는 베겟머리에 어머니가 사다주신 과자 한 봉지~"로 시작되는 자장가 동요죠. 무슨 아이가 잠자면서 과자를 먹는지 한 봉지를 다 먹어도, 그것을 지켜보는 어머니가 바지 한 벌을 다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진다는 것이에요. 부엉이 이야기는 2절에 나옵니다. "부엉새가 울어여도 울어여도 밤은 안 깊어~'. 자장가치곤 가사가 이상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다행스러움을 느끼며 잠이 들곤 하였답니다. 베갯잇을 적시는 불안하고도 감미로운 행복감에 젖어.

그때의 복합적인 감정은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과 복귀에 따른 안도감이 겹친 때문이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집에 머무는 날이 드물었습니다. 쇠락해가는 여느 종갓집 장남이 그렇듯 다른 일에 빠져 밖에서 지내는 성 싶었어요. 술에 취해 집에 오는 날이면 대판 싸움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술추렴할 돈을 구해오라고 타박하는데, 이상한 것은 어른들이 대개 아버지 편을 든다는 것이었어요. 싸우고 난 다음 날이면 어머니는 며칠씩 집을 비우곤 했죠. 친정으로 쫓겨갔다는 것이에요. 그런가보다 했지만 애먼 어머니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답니다. 나는 어머니가 불러주시는 애조 띤 단조의 자장가를 들으며 어머니가 옆에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부엉새 노래를 부르며 실은 자신의 한과 시름을 달래며 마음을 다스렸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지금은 차디찬 곳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

부엉이가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헤겔이 쓴 <법철학 개요>를 번역본으로 읽고 나서입니다.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나 날아오른다."는 레토릭으로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이 진행 중인 현상에 즉각 개입하지 않고 상황이 종료된 뒤에나 관여함을 언급했지요. 철학이란 학문의 미흡한 역할을 설명하며 미네르바(아테나)의 상징 새인 부엉이를 비유적으로 끌어 쓴 것이지만, 부엉이가 야행성이니 해가 지고 어슬 녘에 날아오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싶네요. 부엉이가 밤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은 또 다른 무지(無知)의 세계가 도래함을 예언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원래 이 세상은 어둡고 모호하며 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닌가요.

생각해보면 우주 질서의 또 하나의 감추어진 주역인 '밤'과 어둠의 중요함을 잊고 살았군요. 밤의 정밀과 고독, 그것이 숨기고 포용하는 함의의 세계를 간과했어요. 밤에는 온갖 사물의 숨겨진 형상이 드러나 존재의 강렬함으로 차오릅니다. 달과 별의 운행, 바람의 궤적, 서걱대는 숲, 적막한 산 그림자……. 거미는 밤에 줄을 치고 다람쥐는 밤에 도토리를 모으나 봐요. 밤에는 모든 개별 존재자들이 호응하여 우주적 합일을 이룹니다. 밤은 또한 죽어 있는 자, 죽어가는 자들과 산 자가 교호하는 시간이기도 하죠. 부엉이는 충직한 파수꾼의 넋처럼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지혜의 나무 위에 앉아 세상을 굽어봅니다.

김윤옥 (210.XXX.XXX.74)

70~80년대에 '세 부엉이'라는 남성 보컬이 "호수에 잠긴달은~~" 이란 노래를 불렀지요. 어딘지 애조를 띄운 노래여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습니다.
김창식님의 글을 읽으면 새삼 빛과 어둠의 교응, 끝없이 되풀이하는 우주의 순환,삶의 의미를 생각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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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9 17: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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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6.XXX.XXX.182)

아, '세 부엉이' 생각납니다. 한 동안 잊고 있었는데요.
빛과 어둠의 교응... 김윤옥님의 해몽이 더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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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9 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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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175)

오래 전의 영부인 "프란체스카"여사님이 어린 저의 눈에는 부엉이 할머니로 보인 적이 있지요.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옛날 이야기를 듣던 나이 쯤에...
영화관의 대한 뉴스가 비춰주는 외국인 할머니가 특이한 느낌을 주어서요.
밤...
시골의 밤은 초라한 살림을 가려주는 커텐같은 느낌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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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9 12: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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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116.XXX.XXX.182)

차덕희님 관점에 급 공감합니다. 프란체스카 여사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군요.
그리고 시골의 밤! 초라한 살림을 가려주는 커텐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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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9 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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