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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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이성낙

2011년 12월 02일 (금) 00:22:43

근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폭력 행태를 지켜보노라면 우리 사회가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이라도 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자폐성 장애처럼 우리 사회가 사회적으로 상호 교류하는 데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슴앓이라도 하듯 답답한 와중에 이번엔 국회 내에서 최루탄 난동이 벌어지기까지 했습니다. 더럽고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헤어나지 못해 애태우는 악몽을 꾸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을 가누기 힘들고 허탈한 마음을 달랠 수 없던 차에, 김황식 국무총리가 보여준 조용한 거행(巨行)은 마치 우리가 캄캄한 동굴에서 헤매다 한 줄기 스며든 실낱같은 햇살을 보는 듯했습니다.

지난 11월 23일, 대전 현충원에서는 연평도 포격으로 희생된 전사자의 1주기 추모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언론에 따르면 유가족과 군부대원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시작되면서 비가 내리자 많은 참석자가 우산을 썼다고 합니다. 김 총리의 경호 담당자도 급히 우산을 펼쳐 들었으나, 총리는 단호히 거절하면서 결코 짧지 않은 40여 분 추모식이 진행되는 내내 장대비를 고스란히 맞았다고 합니다. 인터넷 영상 자료를 보면, 김 총리가 입은 옷이 빗물에 흠뻑 젖어 속살까지 젖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초겨울 날씨였으니 결코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을 터인데, 총리는 끝까지 젖은 옷을 입은 채 희생 장병들의 비석을 묵묵히 어루만졌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사한 젊은 장병들의 혼을 달래며 유족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아픔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김 총리가 장대비를 피하지 않고 흔들림 없는 조용한 모습을 보여준 것보다 더한 애도사(哀悼辭)가 어디 있겠습니까.

진솔함의 아름다움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