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온한 새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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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온한 새해를 바란다

황경춘

2011년 12월 30일 (금) 00:12:34

이틀 후면 해가 바뀝니다. 눈으로 보이는 물리적 변화는 없지만 2011년이 가고 2012 임진(壬辰)년이 시작됩니다. “다사다난한 한 해가 가고 희망에 찬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라는 틀에 박힌 말이 많이 쓰이는 때입니다.

사주팔자나 오행 풍수설 같은 동양철학을 저는 크게 믿지는 않습니다. 임진은 사전에 있듯이 60간지(干支)의 순서 29번째라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진’하면 당연히 1592년의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생각나 약간 불안합니다. ‘임진’이라는 해가 우리나라와 무슨 인연을 가진 것은 아니겠지만, 공교롭게도 새해에 예정된 여러 일들을 생각하니 좀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광복 66년이란 짧은 시간에 ‘무역 1조 달러’라는 경제적 금자탑을 세운 우리나라가 새 대통령을 뽑는 새해에 공교롭게도 우리를 둘러싼 나라 거의 전부가 새롭게 국가 지도자를 뽑을 예정이며,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북한은 이미 얼마 전 새 통치권자가 들어섰습니다.

1월에 있을 대만 총통선거를 시작으로 3월에는 러시아 대통령선거,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그리고 금년 하반기에는 중국 지도부의 개편이 있을 예정입니다. 우리와는 직접 영향이 적을 프랑스의 대선도 새해에 있으며, 일본 정국도 극히 불안해 새해에는 정부가 바뀔 전망이 짙다고 많은 국제정치 전문가가 점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이렇게 많은 변동이 예상되는 2012년은 한중수교 20년, 중일수교 40년이 되는 해고 뼈아픈 기억의 임진왜란의 4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유럽 남부에서 시작된 경제 불황 여파로 새해의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도 좋지 않아 약간의 불안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우리가 그저 섣달이라 부르는 12월을 일본에서는 ‘시하스(師走)’라 합니다. ‘점잔을 빼는 스승까지도 바쁘게 뛰어 다닌다’는 뜻이라 합니다. 동일본대지진 부흥관계 예산 염출,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일본천황 78회 생일 등 유달리 바쁜 일정에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는 교토(京都)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고 1주일 후인 크리스마스와 일요일이 겹친 25일에는 베이징(北京)으로 날아가 중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일정에 비교적 여유가 있는 12월 중순에 중국을 방문할 뜻을 전한 일본은 중일전쟁이 시작된 1937년의 12월 13일, 당시의 수도 난징(南京)을 공략하며 감행한 소위 ‘난징 대학살’사건 추념일 행사와 겹친다는 중국 측 불평으로 일정을 다시 잡아야 했습니다.

한편, 한국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이 대통령이 공식 회담에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과와 보상 문제를 제기하자 노다 총리는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기념비를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등 한일 간의 앙금이 노출됐습니다. 독도 문제로 얽혀 있는 두 나라의 앞날이 걱정됩니다.

이처럼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남긴 상처가 아직도 한중일 3국간의 선린외교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날이 갈수록 격화되는 중국 어선의 우리 영해내 불법어로와 가끔 불거지는 이어도 영유권분쟁이 북한 핵문제와 더불어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돌연한 사망은 이런 불안정한 국면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한중수교에 20년 앞선 중국과 일본의 관계도 결코 순조롭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외형적 경제력이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중국이, 오키나와 서남방 섬 영유권 분쟁 이전에, 우리 위안부문제처럼 전쟁이 가져온 깊은 민족적 상처 때문에 일본과의 의견 충돌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난징(南京)사건입니다. 중국은 1985년에 30만으로 추산된다는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南京大屠殺(난징대도살)’ 기념관을 현지에 세웠습니다. 일본 자민당이 집권당일 때 사건 자체가 과장되었다고 반박하고, 학교 교과서에서 전쟁을 호도(糊塗)하는 기재를 하자 중국은 1982년에 처음으로 외교적 항의를 하였습니다.

일본의 진보적 정당과 지식인의 활동이 활발했던 1960~1980년대에는 대체로 중국에 동조하는 보도나 논문도 많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보수세력과 국수주의자들의 반박 공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일부 우익 논객들은 위안부문제에서처럼 난징사건을 과대 포장된 선전이라고 중국을 비난했습니다.

문제가 이렇게 되자 중일 양국 학자는 일본 외무성 주관으로 2010년에 학술회의를 열기까지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중국 수석대표는 난징사건은 ‘피해자 수 문제가 아니라 잔학행위의 진위’ 규명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위안부문제 때처럼 일부 일본 보수주의자들은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떼를 쓰며, 중국이 내세우는 30만이라는 피해자 수 반박에 집착하는 야비한 태도로 일관합니다. 당시 중국군은 공산당을 포함하여 양민을 가장한 소위 ‘편의군(便衣軍)’ 게릴라 활동이 많아 군과 양민의 구별이 어려웠다고 강변하고, 심지어는 일본은 당시 전시포로에 관한 제네바협약에 가입은 했으나 비준절차를 마치지 않은 상태였으니 포로학대 금지 조항을 준수할 법적 근거도 없다고까지 억지를 부립니다.

우리는 술자리 등 모임에서 신세타령을 할 때 이런 말을 가끔 합니다. 즉 ‘한국전쟁의 가장 큰 회생자는 우리 세대였다’든가 ‘한국이 정치나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울 때 우리는 살았다’ 등의 넋두리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37년에, 그때까지 중국 대륙에서 국지전으로 계속되던 일본 침략군 공세가 중일전쟁으로 확대되어 이 땅에서의 일제 착취정책은 급속히 격화하였습니다. 제가 중학에 입학한 38년 4월에 일제는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고 학교 이름도 ‘고등보통학교’에서 ‘중학교’로 바꾸었습니다.

제복은 검은 모자와 산뜻한 교복 대신 일본식 전투모와 전투복으로 바뀌고 군화를 착용케 하였습니다. 3학년 때 창씨개명령이 내리고 곧 징병제도가 생겨 1924년 갑자생부터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옛부터 있었던 ‘묻지말라 갑자생’이란 속담은 이때부터 더욱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우리 동기는 갑자생이 많았고 전쟁의 희생자도 많았습니다. 갑자생인 저는 이제 더 이상 험한 세상을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필자 (114.XXX.XXX.142)

녜, 흑용의 조흥 선물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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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1 11: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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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희 (121.XXX.XXX.97)

보건생활에 힘쓰시고 건필 부탁드림니다.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로 막막한 시절을 많이 보내셔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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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1 08: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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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114.XXX.XXX.142)

고맙습니다. 건강이 제유일한 재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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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1 11: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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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126.XXX.XXX.14)

말씀이 너무 깊게 와서 어떤 표현을 해야할지 막연합니다.
그저 아무 일 없이 건강 하나만을 생각하시길 기원 또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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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0 20: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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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0.XXX.XXX.249)

한해 동안 건강 잘 지키시며 좋은 글,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더는 험한 꼴없이 우리 민족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지구상 우리처럼 모진 고생을 하며 드라마틱한 역사를 이어가는 민족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서로 보듬고 잘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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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0 14: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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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110.XXX.XXX.223)

고맙습니다. 저도 그맇게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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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0 17: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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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석 (110.XXX.XXX.20)

황경춘 선생님
사람의 풍성함은 얼마만한 시간대를 마음에 담고 있는가 하는 것인데 지나간 격동기의 이 나라의 모습을 잘 나타내는 선생님의 글이라 생각됩니다.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더욱 많은 글 주시기를 바랍니다.
노 민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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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0 10: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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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국 (110.XXX.XXX.20)

올 한 해도 좋은 글 대단히 감사합니다
황 선생님!
내년에도 변함없이 좋은 글로써
저희를 많이 깨우쳐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임진년 새해 복되게 잘 맞으시기 바랍니다.
/한승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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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0 10: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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