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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색
안진의 2012년 01월 17일 (화) 00:02:57
그림자에 색깔이 있을까요? 그림자는 무슨 색일까요? '물체가 빛을 가려서 그 물체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늘'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그림자를 검은색이나 짙은 회색과 같은 무채색으로 연상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그림 1 카미유 피사로, <에라나 쉬르엡트에서 사과따기>, 1888  
어린 시절 술래가 되어 상대편의 그림자를 밟아 보거나, 불빛에 양손을 이용해서 강아지를 만들어 멍멍 짖거나 비둘기가 되어 날갯짓하는 그림자놀이의 경험을 떠올려본다면, 그림자가 기억색(記憶色; memorial color)이 되어 선명하게 남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빛과 어둠, 반사광, 그림자를 마치 암기하듯 연필로 표현하면서 그림자는 검은색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옛 그림에 그림자가 없는 것이 의아할 정도였지요. 나중에야 동양화는 존재의 본질이 중요했기에 빛을 무시했고 따라서 그림자가 없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그림 2 오지호, <남향집> 1939  
어쨌든 지금도 우리는 빛에 의해 조율되는 사실주의 회화에 감탄합니다. 특히 빛의 작가 렘브란트는 마치 어둠에 반응하는 우리의 눈을 실험하듯, 어둠과 밝음의 극적 대비를 경이롭게 표현하는 작가였습니다. 실제보다 실제 같은 렘브란트의 그림에 그림자는 검은색에 가까운 어두운 갈색이었습니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카미유 피사로의 그림처럼,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그림자에 상당히 많은 색깔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상파 이전에 고유의 색깔과 음영에 의해 표현하던 관습은 이젤을 들고 밖으로 나가면서 자연을 관찰하며, 시시각각 색채가 변하고 그에 따라 그림자에도 색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림 3 피카소, <The Shadow on the Woman>, 1953  
괴테 역시 그의 <색채론>에서 황혼 무렵 양초를 흰색 종이 위에 놓고 희미한 햇빛과 타오르는 양초 사이에 연필을 수직으로 놓자 그 그림자가 아주 아름다운 청색이 됨을 얘기합니다. 황색은 항상 빛을 수반하고 청색은 어둠을 수반한다는 그의 이론을 보는 것처럼, 오지호 작가의 <남향집>에서는 담장에 드리워진 나무가 파란색으로 표현되어 인상주의의 영향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러나 그림자가 단순히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외향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 측면을 담아내는 걸로 표현되면서 회화에서 그림자의 색은 보다 다양하게 상징화되어 갑니다. 피카소의 그림 <The Shadow on the Woman>을 보면 누워 있는 여인에게는 한 남성임을 느끼게 하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몸과 만나고 있는 그림자의 부분은 붉은색으로 표현되어 욕망을 은유하는 듯합니다.

   
  그림 4 댄 퍼잡스키, 2011 토탈미술관 전시작 中  
나아가 현대미술에서 그림자는 더 이상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게 됩니다. 낙서 같은 그림, 드로잉의 천재라 불리는 댄 퍼잡스키의 작품에서 그림자는 실존하는 것과 다른 엉뚱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우리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그림자는 빛의 종류, 강도, 빛의 방향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그림자가 나의 분신이라는 건 맞지만 그것이 꼭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림자의 색도 검은색과 같은 기억색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 색입니다.

그림자는 내가 생각하는, 나를 반영하는 또 다른 나일 수 있습니다. 지금 비치는 내 그림자에 의미를 부여해보면 어떨까요? 그림자가 갖고 있는 다른 사전적 의미인 '근심이나 불행으로 어두워진 마음'에서도 벗어났음 싶습니다. 세상, 그리고 내 모습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내 그림자에 마음으로 바라고 느끼는 색을 입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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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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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119 (121.XXX.XXX.42)
그림자에 색깔이 있다니 참 아름다운 상상입니다. 가끔 꿈을 꾸고 나서 아주 생생한 칼러 꿈을 꾸었다고 생각될 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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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1 14:58:21
0 0
인내천 (183.XXX.XXX.177)
그림자는 실체의 색깔에 상관없이 모두 검다는데 동의하고 추호의 의심도 없었는데 보는 이의 마음과 관점에 따라 다양한 빛깔이 존재하는군요!
일상에서 그림자는 긍정적측면 보다는 부정적측면에서 더 많이 사용되곤 하는데 예술의 세계에선 심오한 사색을 유도하는 긍적적측면에서 애용(?)되나 봅니다.
세상,내 모습도 마음먹기에 달렸음 오죽 좋겠습니까만 바램처럼 호락호락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얼핏 생각함 모든게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지만 그 마음을 관장하는 것은 그가 속한 사회적 조건이 절대적입니다. 미개한 시대의 전쟁에선 노예가 없었습니다.
살려준게 아니라 모두 죽였죠. 잔인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생산력은 노예로 잡아다 일을 시켜보았자 노예 혼자 먹고사는데도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생산력의 발전으로 1명의 노동으로 1,5명의 몫을 생산할 수 있었을 때는 2명의 노예를 부리면 주인은 놀고먹을 수 있기에 전쟁의 승리자는 자비심이 발동해서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노예의 효용가치가 있기에 살려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산관계가 생산력을 발전시키는게 아니라 생산력의 발전이 생산관계를 변화시키는거죠.그렇게 노예제사회가 등장하고 더 발전해서 봉건사회로 넘어오고 더 발전해서 자본제사회로 넘어왔죠.
그리고 지금은 자본제사회의 병폐가 만연해서 홍역을 치르고 있으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용틀임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씨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엊그제 한명숙씨가 통합민주당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결정적인 것은 통신수단의 발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사자들의 상품이 괜찮은 것도 있지만 순식간에 공유하는 통신수단이 없었다면 조직없고 돈없는 그들이 언감생심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생산력의 발전으로 변화되는 생산관계를 오기와 아집으로 막으려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무모함 그 자체고 무식의 고백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가 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역행할 수 있단말입니까!
뒤돌아서 자신의 그림자를 살펴보면서
한 물 간 구닥다리 언론장악의 꿈,
안기부,검찰을 앞세운 공안통치의 꿈,
38선을 공고히 하며 무기구매의 구전 뜯는 꿈,
속 빈 강정 세계화를 쫑아리며 FTA체결에 올인하는 꿈,
사회변혁의 요인인 빈부격차를 촉진하는 구조조정과 비정규직의 양산,그리고 부자감세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꿈,
벗어던지세요!
민초들의 아우성에 귀기울이심이 역사발전에 순응하는 길이라고 외치지 않는가요?
당신의 그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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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7 07:15:06
0 1
쇠돌이 (58.XXX.XXX.190)
그림자에대한 댓글을 영 이상하게 쓰는 이분은 이칼럼에 잘못온 모양이니 다른 사이트에 가서 글늘 쓰는게 좋겠네요
답변달기
2012-01-17 16:26:31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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