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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주의 저편
김영환 2012년 01월 20일 (금) 00:56:47
아주 오래 전에 네덜란드의 코이겐호프를 간 적이 있습니다. 튤립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서였죠. 드넓은 꽃밭에 빨강, 노랑, 검정, 하양, 분홍 등 각가지 고운 빛깔의 튤립 꽃들이 거짓말처럼 피어 있었습니다. 때는 5월5일이었는데 그곳의 새벽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영하의 추위였습니다. 튤립이 저온에 강한 식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요즘 이 축제에선 32만 평방미터의 꽃밭에 450만 포기의 튤립 꽃을 전시한다고 합니다.

네덜란드 인들의 튤립 사랑은 16세기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오스만 제국에서 수입되기 시작했던 튤립은 부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진귀한 것이었습니다. 수입된 종자를 키우려면 몇 년이 걸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인류 최초의 주식회사라는 동인도회사를 세운 네덜란드인들은 시장 참여자들이 현물 거래에 짜증을 내자 장부상으로 거래하는 튤립 선물(先物)방식을 택했죠. 투기열풍이 일어났습니다. 튤립 구근의 거래 단위는 0.05그램으로 가격은 금보다 더 비쌌다고 합니다. 구근 하나가 대저택과 맞교환될 정도였습니다.

영국의 어느 식물 애호가는 네덜란드의 지인을 방문하여 신종 양파인줄 알고 튤립 구근의 껍질을 벗겼다가 재물손괴로 철창에 갇혀 상당한 금화를 낸 뒤에 풀려났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천장 모르고 치솟던 튤립의 투기에 서민들마저 가재를 팔아 막차를 탔습니다. 1637년, 마침내 살 사람을 찾지 못해 어음이 줄줄이 부도가 나면서 버블이 붕괴했습니다. 튤립 가격은 100분의1로 떨어졌답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투기가 일어났습니다. 1960년대 최초의 증권파동에서는 관련자들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파동으로 공화당이 창당자금을 모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지요.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1970년대에는 해외건설, 1990년대에는 벤처붐으로 인한 정보통신, 2000년대에는 황우석 교수의 바람으로 인한 생명공학, 근년에는 신․재생, 대체에너지 주식들이 신성장 동력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인기를 모았습니다. 최근 정권 실세와 외교부 공무원까지 증권 투기에 가세한 CNK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코스닥에는 별별 희한한 투기 종목들이 테마라는 이름을 달고 득실거린다고 합니다. 정직한 생산과 서비스를 기반으로 가진 기업에 대한 투기적 요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오로지 소문을 퍼뜨려 투자자의 돈을 훑으려는 것은 완전 범행입니다.

요즘 대선을 앞두고 시대착오적인 정치인 테마주 바람이 불고 있죠. 거명자들이 대통령이 된다 한들 특정 기업에 별 영향이 있겠습니까. 가령 안철수 씨가 대통령이 된다고 안연구소의 사주인 그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보안솔루션 발주액을 통째로 독식하느냐는 겁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작전세력의 투기가 있다고 보고 금융감독 당국이 개입했지만 때는 늦었죠. 항상 이런 뒷북치기가 그들의 본업입니다. 2007년 대선 때도 4대강 테마주라는 게 있었는데 어느 건설회사 주가는 11개월간 3,673%나 올랐다가 지금은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하네요.

거품이 부담스러웠는지 아니면 옛날 강호동 씨의 ‘무르팍도사’ 출연시의 언급을 지켜보려는 수순인지 안 교수는 보유 주식의 절반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했죠, 그것이 정재(淨財)인지 아닌지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99%’라면서 1%의 부자를 향해 포효하는 세계 주요 도시의 성난 군중 모습이 떠오를 뿐입니다. 놀랍게도 미국의 소득 랭킹 순위 1%에는 의사, 변호사가 금융자본가의 8배 정도로 많다고 합니다.

문제는 사회 제도입니다. 일본은 우리와 같은 부가가치세 도입은 못했지만 주식양도세에는 성공했습니다. 일본에서 상장 주식을 양도할 경우 2013년까지는 양도차익의 10%를 분리과세합니다. 2014년부터는 20% 과세로 두 배 강화됩니다. 놀라운 과세의 민주화죠.

사회에 대한 기여는 주식 양도차익을 거둔 사람의 선의에 기대는 것보다는 과세 제도를 통하여 환수를 보편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사회이죠. 외국인 지분이 불과 1% 선인데도 불구하고 작년 초 이후 대선 출마 불확실성의 베일에 힘입어 최저가 대비 800%의 주가 폭등을 보이는 업체의 사주인 안 교수의 주식 헌납에 극찬을 보내는 여론이라면 보편적인 주식양도차익 과세 원칙에도 수긍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몇 푼 안 되는 투자액에도 손해를 보건 이익을 보건 증권거래세를 부과하는 것이야말로 말이 안 되는 것이죠.

‘버핏세’는 부자만 낼 것이 아닙니다. 부동산이건 주식이건 어떤 판에서 돈을 딴 사람은 모두 일정 비율을 세금으로 내는 사회가 되어야죠. 수수께끼 같은 외환은행 매입으로 수조 원을 챙기고 도망갈 론스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교한 주식양도세 장치가 존재한다면 이 국제적인 투기자본은 천문학적인 세금을 낸 후에야 이 땅을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도 실행하지 못하는 이명박 정권이 무슨 공정사회의 실현이라고 그동안 요란한 나팔을 불어댔는지 가소로울 뿐입니다. 야당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죠. 핏대를 올리며 1%를 공격하는 당신들은 1%에 속합니까, 99%에 속합니까? 가슴에 손을 얹어 보시죠. 공정사회를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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