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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도 늙는구나 (1) - 이제야 보이네
임철순 2007년 05월 28일 (월) 09:24:36

 지지난 주, 그러니까 5월 19일 오후, 포스코 센터 음악회에 다녀왔습니다. 음악회는 그 건물의 1층 로비에서 월 1회 열리는데, 5월 프로그램의 제목은 ‘추억 속으로의 여행’이었습니다. 출연진은 여성 4인조 빅마마, 남성 3인조 동물원, 김창완 순이었지만 사실은 김창완의 무대나 다름없었습니다.

 올해 데뷔 30년이 된 록 그룹 ‘산울림’의 김창완은 특유의 친근한 표정과 편안한 목소리로 10여 곡을 들려 주었습니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마세요”로 시작되는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를 부를 때,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불렀습니다. 객석에는 1970년대에 20대였던 남녀가 많았습니다. 추억 속으로의 여행다운 분위기였습니다.

 그는 이어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아직 전 어리거든요”를 불렀습니다. 그걸 들으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네, 좀 어색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똑같은 기분이었던지 노래를 마친 뒤 멋쩍게 웃으면서 쑥스럽다고 말했습니다. 20대의 감수성으로 만든 청년의 노래를 50대에 부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는 우리 나이로 올해 54세입니다.

 김창완은 동물원의 공연을 무대 뒤에서 지켜보면서 노래도 늙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동물원의 멤버들은 그의 도움으로 데뷔한 모양인데, 그들도 벌써 20년이 됐다는군요. 김창완의 데뷔곡 그대로 '아니 벌써' 어느덧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 그들의 노래에도 나이의 무게와 이끼가 얹혀진 것이지요. 동물원의 노래가 그렇다면 김창완의 노래는 당연히 더 늙었을 것입니다.

 30년 전 그 무렵, 김창완의 노래는 참 신선했습니다. 약간 떨리는 듯한, 불안한 듯한, 겁먹은 듯한, 속삭이는 듯한 노래의 호소력. 어느 책에는 투명한 듯 쓸쓸하고 해맑은 듯 구슬픈 노래라고 묘사돼 있더군요. 또 김창완을 가리켜 '비 갠 날의 바람결 같은 음색으로 슬픔과 우울을 동시에 유포하는 천진한 페시미스트'라고 했던데, 나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공연 막바지에 그는 '이제야 보이네'를 불렀습니다. 이제야 보이네 아버지 자리/떠난 지 7년/이제야 보이네 어머니 자리/누우신 지 3년/술에 취해 걱정말라시던 그 무거운 어깨를 누가 아나(중략) 얼마나 좋을까 같이 계시면/떡 보니 생각난다/얼마나 좋을까 건강하시면/놀이터에서 내가 운다....이런 가사입니다. 내용은 모르지만 2004년에 방영된 TV드라마 '떨리는 가슴'의 삽입곡이었다고 합니다. 김창완은 그 해 가을, 이 노래를 만들면서 울었고 부르면서 또 울었다고 합니다.

 그가 쓴 글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내 이름을 불러준 이가 20여년 중풍으로 고생하다 떠났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입니다. '치매어르신을 위한 김창완 음악회'를 하면서 남긴 그의 글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고독만이 친구일뿐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는 때가 언젠가 올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오그라붙는 느낌입니다. 우리에게 세월이나 죽음을 이겨낼 힘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그것에 대한 희망을 가질 권리는 있습니다....

 '이제야 보이네'를 듣는 동안 괜히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 무슨 우습고 주책없는 일인가. 고개를 들어 위를 치켜 올려 보면서 계속 눈꺼풀을 깜빡였습니다. 나오려고 하는 눈물을 그렇게 말려버렸습니다.

 '이제야 보이네'는 그의 글을 모은 책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노래 만큼 글솜씨도 좋은 김창완은 '내 글들이 우리 시대 사람들을 다른 방법으로 위로할 수 있다면' 이런 말을 하며 여기저기 발표한 글을 모아 출판했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사람들에 대한 위로라는 말도 듣기 좋지만, 다른 방법으로 위로한다는 말이 나는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그에게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는 노래를 부르면 행복하다고 공연 중에 말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행복한 사람은 남에게도 그 행복을 나눠 주고 싶어 하기 마련입니다. 그의 노래는 그의 삶입니다. 삶에서 우러난 노래는 그 속에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담아 세월과 함께 나이들어 갑니다.

 하지만 노래를 만들어내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어쨌든 생명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나 이 풍진 한 세상을 살다가 노래 하나도 끝내 이 세상에 보태고 남기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게 대부분의 삶입니다.

 그래서 그가 부러웠고, 노래와 인간의 삶의 얼굴이 이제야 함께 보이기 시작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노래는 추억만일 수 없으며, 노래에는 세월이나 죽음을 이겨내는 힘이 있다는 것도 이제야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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