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에서_(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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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에서

오마리

2012년 01월 31일 (화) 00:04:57

요즈음 새벽에 눈이 뜨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드는 버릇이 건강에도 좋은 것 같아 내심 반가운 중이었습니다.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눈발이 흩날리고 있는 숲 속을 향하여 집을 나섰습니다. 휘휘 늘어진 가지들마다 눈이 쌓인 소나무 길과 숲의 바닥은 잔잔히 덮인 눈과 물기로 젖어 있었습니다. 눈 속에 서있는 나무의 괭이와 새들이 지었던 둥지도 눈에 띄는 숲이 오늘따라 유난히 경이로워 보이는 것은 여명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빛 사이로 어렴풋이 드러나 보이는 앙상한 가지들, 무엇인가 신비스러운 기운을 안고 숲은 많은 얘기들을 시작했습니다.

찬란했던 여름날의 수액이 말라 비틀어져 죽은 가지들은 마른 잎과 함께 한겨울의 눈바람을 맞으며 아직도 둥치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가야만 하듯이 봄에 다시 생성될 수 없는 죽어가는 생명체들의 삶은 우리들의 생과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밖의 다시 소생하는 모든 것들은 돌아올 봄의 숲 속에 기쁨과 환희를 가져올 것이며 죽은 듯 숨을 죽이고 있던 숲의 생물은 다시 깨어나서 대지에 힘찬 기운을 불러올 것입니다. 그러니 숲의 모든 것들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보다 더욱 값진 일생을 살고 있음으로 그에 비하여 사람의 한 세상은 덧없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푸드득,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눈발을 헤치고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훨씬 먼 어느 곳, 이 숲보다 멀고 먼 곳으로 날아가는 소리인 듯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눈바람에 스치며 탁 부러지는 소리가 새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블루제이였을까, 아니면 카디널이었을까. 그런데 깜빡 착각을 했나 봅니다. 이 썰렁한 겨울 숲에 무슨 새가 날아다니겠습니까? 사람이 가진 특권이란 이런 착각이나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참 아름다운 정서를 불러옵니다. 어쩌면 이런 착각처럼 세상을 살아왔는지도 모르지만요. 그래도 순간이나마 그런 환상의 세계가 좋았습니다. 더러운 것은 아름답게 차가운 것은 따스하게,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보는 그런 착각이나 착시도 우리 사람에게 필요할 때가 있으니 그 때문에 우리가 끈을 걸고 세상에 기댈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누군가 자그마한 강아지를 데리고 내 앞서 산책길에 나섰나 봅니다. 앙증맞은 강아지 발자국과 사람의 발자국이 눈 위에 겹쳐 보이기도 떨어져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새벽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강아지와 함께 걸어간 모양입니다. 나도 한 마리의 강아지를 데리고 떠나는 어린 여행자가 된 기분으로 촐랑거리며 그 발자국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좀 덜 외로워졌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떠나는 '몽도’와 같은 심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르 클레지오의 소설 ‘어린 여행자 몽도’-몽도는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우한 아이입니다. 그러나 친절하고 따뜻한 아이이며. 그래선지 사람들에게 희망의 미소를 주는 아이입니다. 몽도는 스치고 지나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친구가 쉽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몽도를 만나면 누구나 즐거워지고 순수해지고 맙니다. 결국 맑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몽도는 어른들의 세속적인 삶을 떠나 몽도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리움을 남기고 다시 사라져 어딘가로 떠나버립니다.-처럼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제 전화를 걸어온 한 여인의 얼굴이 떠오르며 그녀가 한 말이 귀를 울렸습니다.

“언니 나 죽고 싶어.”

죽고 싶은 여인이,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그녀뿐이며 죽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을 정도로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이 그녀뿐이겠습니까? 세상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운아임이 틀림없으니 자신의 생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작년 한 해 나도 그녀의 마음과 비슷한 때가 있었습니다. 내 몸을 휘감고 있는 불쾌한 권태로움과 무기력, 우울과의 싸움은 고되었고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인들은 말합니다만 그러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던 내 시련의 정점에 서서, 아득히 높은 산마루에 서 있는 심정으로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한계란 것이 결국 죽음과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모순인지는 모르지만 죽음도 아름답게 편안히 맞아야 할 우리들의 탄생과 같은 것이라고. 그러니 텅 빈 겨울 숲처럼 비워버림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절감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이제 따스한 훈풍을 싣고 봄은 또 올 것입니다. 지금은 세차게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혹한의 바람 앞에 서 있지만 우리가 소생의 때와 소멸의 때가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듯이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처럼 과거를 보며 후회하지 않고 미래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그저 이 순간에 모든 것을 맡긴다면 그 안에 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나의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삶이 힘겨울 때 스스로에게 이 한마디를 건네 보라고 합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새벽의 빛은 스러져 가고 산마루에 붉은 기운이 더욱 힘있게 서렸습니다. 아직도 잠들어 있는 단층 지붕들 위로 서서히 아침의 기운이 스멀거리고 있었습니다. 깨끗한 빛으로 가득 차 거울처럼 빛나고 있는 숲을 천천히 걸어 나왔습니다. 마치 다시 돌아올 기약이라도 있는 철새들처럼 내 마음을 그 거울에 비쳐보며 건너편 산을 응시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나만은 그녀 앞에 희망의 상징으로 우뚝 서서 그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이른 아침 과연 무엇이 행복의 원천인지 그녀에게 전하고 싶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어느새 동쪽 능선 위로 희망처럼 태양이 불끈 솟아오르고 겨울 숲엔 눈이 그치고 있었습니다.

그림 (1.XXX.XXX.82)

죽고 싶다는 말을 남에게 전화라도 자유스럽게 할 수 있다는건
아직 자유로이 말을 할 수 있으니 살만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신은 그 심정을 말하여 조금은 마음이 편할련지 모르겠지만
듣는 사람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하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합니다.
정말 마음이 어렵고 힘든 사람은 자연에게 하늘에게
또는 절대자이신 신에게 고백하듯 독백을 하는데 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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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1 07: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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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 (123.XXX.XXX.18)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착각이나 착시도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겨울 숲에도 봄이 오고 있겠지요.
오는 봄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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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1 09: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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