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테너 열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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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테너 열전(1)

김창식

2012년 02월 10일 (금) 00:00:53

매년 1월1일이면 빈 필하모닉의 연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신년음악회가 열려 세계인의 관심을 모읍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자유칼럼의 '김창식 에트바스'에서 독자들을 위해 작은 음악회를 마련했습니다. 지난 세기 듣는 이를 몰입과 황홀경으로 이끌었던 그리운 테너들의 행진입니다. 벌써 백로(白露)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날아와 앉는군요. 유시 비욜링의 강하고 청아하면서도 한 줄기 애수 띤 목소리 말이에요. 곡명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토스티의 이상(理想‧Ideale)'입니다.

호세 쿠라, 롤란도 비야손, 로베르토 알라냐, 살바토레 리치트라….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영면하고,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가 노쇠한 지금, 21세기 세계 최고 테너로 일컬어지는 성악가들의 면면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문에서 전설의 세계로 사려간 선배 테너들과 비교하면 중량감이 그만 못하고 허전한 느낌을 지을 수 없음은 어인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일기 시작한 복고 트렌드 때문일까요? 반드시 그런 것 같지만은 않은데요.

'금세기 최고의 테너'라든가, '가극왕', 또는 '위대한 카루소' 등으로 불리는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는 축음기와 레코드(SP)가 발명된 후 음반에 목소리를 담아 성공을 거둔 초기 인물이자 '벨칸토 창법'의 전도사로 불립니다. 그의 목소리는 테노레 드라마티꼬(압도적이고 박력 있는 목소리)로 알려져 있지만, 오히려 테노레 릴리꼬(부드럽고 서정적인 목소리), 그 중에서도 릴리꼬 스핀토(강하고 날카로운 소리) 계열의 음색으로 느껴집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걸쳐 활약한 카루소는 당시의 열악한 녹음 기술로 인한 음질의 한계로 진면목을 접할 수 없음이 아쉽습니다. 현대 기술로 복원한 음반의 완성도는 또 다른 이야기겠지요. 카루소의 SP 음반 중 토스티의 '이상',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루치아의 6중창' 등을 감상한 적이 있는데, 지지직거리는 데다 떨림이 심하여 큰 감동을 못 느꼈어요. 나중 후배 가수인 마리오 란차는 '가극왕 카루소'에 출연하여 유명해졌고, 파바로티는 일종의 크로스 오버 성악곡인 '카루소'를 히트시켰습니다.

'사상 최고의 미성', '벨칸토 창법의 완성자'로 불리는 베니아미노 질리(Beniamino Gigli, 1890~1957)는 유시 비욜링, 프랑코 코렐리와 함께 필자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가수이기도 합니다. 20세기 초반 최고의 테너로 숭앙받는 카루소를 계승, 걸출한 다른 후배가수를 잇는 교량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음색은 릴리꼬 레지에르(흐느끼는 듯한 서정적인 창법)인데, 고음의 절정에서 한 템포 숨을 멈추어 청중을 흥분과 몰아의 경지로 치닫게 하는 기교는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질리의 음성으로 듣는 명반 중의 명반은 비제의 <진주잡이> 중에서 '귀에 남은 그대 음성'입니다. 이 노래에는 레지에르 음색의 특징, 질리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마이어베어의 <아프리카 여인>중 '오, 낙원이여'도 당연히 권할 만합니다. 푸치니의 <토스카> 중 카바라도시의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은, 이제 거의 들을 수 없지만, 여느 가수와는 다른 맛과 멋을 선사합니다. 즉, 마지막 절정 부분에서 처지지 않고, 한 호흡 쉰 다음 오히려 한 음계 더 올려 청중에게 충격과 전율을 안겨주는 대중성을 발휘했어요.

강력한 릴리꼬 스핀토인 유시 비욜링(Jussi Björling, 1911~1960)의 음색은 정결한 데다 창끝처럼 뻗치며 귓속을 파고듭니다. 음량이 압도적으로 풍부하지는 않지만 섞임이 없는 강한 음색으로 일세를 풍미했습니다. 게다가 한줄기 애수까지 띠어 푸른 하늘을 향해 표표히 나부끼는 깃발을 보는 듯하니 소리에 회화성(繪畵性)이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사람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우리를 손짓하여 높은 곳으로 인도합니다. 이태리 계와 스페인 계가 판을 치는 성악가 계보에서 스웨덴 출신인 점도 신선합니다.

유시 비욜링의 음성이 빛나는 명반은 베르디의 <아이다> 중 '정결한 아이다'와 비제의 <카르멘> 중 '꽃노래', 레온카발로의 '마티나타(아침의 노래)', 토스티의 '이상' 등입니다. 특히 '이상'은 카루소와 스테파노 노래로도 잘 알려졌지만 비엘링의 노래가 그 중 발군입니다. 포스터가 작곡한 '꿈길에서', '금발의 제니'도 빼놓을 수 없군요. 비욜링의 외모는 목이 굵고 작달막하여 권투선수 록키 마르시아노를 연상케 하는데,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한 목소리의 소유자라는 것이 잘 믿기지 않습니다. 그는 모노에서 스테레오로 넘어가는 시기의 진정한 거인이었죠.

다음 칼럼에서는 20세기 후반을 호령한 전설들을 살펴봅니다. 3테너라고 하면 통상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이상 3인을 일컫지만 사실 그들을 능가하는 원조 3테너들이 있었습니다. 마리오 델 모나코, 프랑코 코렐리,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그들입니다. 이들 신‧구 3테너들이 출연하는 화려한 갈라쇼가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