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함께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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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함께 살다

임철순

2012년 02월 20일 (월) 00:03:10

가족들과 떨어져 4년 동안 개하고만 살던 30대 여성이 개가 죽자 화장실에 착화탄을 피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지난주 부산에서 있었습니다. 애완견을 꼭 끌어안은 채 숨진 이 여인의 유서에는 “나를 개와 함께 묻어 달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5년 전 제주시에서는 3년 동안 기르던 개가 죽자 자기 잘못이라고 괴로워하던 30대 여성이 목을 매 숨졌습니다. 이 여인은 평소 자주 다니던 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말썽도 많고 화제도 많은 미국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31)는 몇 년 전에, 죽은 뒤 치와와 암컷 ‘럭키’와 함께 묻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사랑하던 것들을 자신의 묘에 함께 매장했던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을 예로 들면서 “럭키는 나와 함께 누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썽쟁이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힐튼 호텔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은 그녀와 동갑내기인데, 자기 개가 힐튼의 개보다 더 예쁘다고 싸움을 건 일도 있습니다. 미국의 부동산 억만장자 리오나 헴슬리라는 여인은 2007년에 사망하면서 120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애완견에게 상속한다고 발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 모두가 개를 너무도, 끔찍이도 사랑하기 때문에 빚어진 일들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런 사람들에게는 개가 사람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사람에게서 구하거나 얻을 수 없는 것을 그들은 개를 통해 해결합니다. 개는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말을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말 못하는 어린 아기가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 같아도 티없고 귀여운 웃음, 철없지만 당연한 요구를 통해 부모에게 사랑을 돌려주듯이 개도 충성심과 심리적 밀착을 통해 자신을 먹이고 돌봐주는 주인에게 사랑을 돌려줍니다.

그러나 개를 기르지 않는 사람들은 개와 사람 사이의 이런 교감과 애정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이해를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개를 사랑하는 사람을 경멸하거나 미워합니다. 가족관계에서 개가 갈등요소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개를 기르지 않던 10여 년 전, 교보문고에 갔을 때 강아지를 끌고 들어온 모녀를 보았습니다. 지금은 그럴 수 없게 돼 있지만 그때는 왜 개를 끌고 오도록 내버려 두었는지 모릅니다. 가뜩이나 못마땅한 터에 강아지가 내 바지가랑이에 달라붙기에 슬그머니 발로 툭 차서 쫓았습니다. 그때 나를 찢어놓을 듯이 노려보던 초등학교 아이의 눈길이 너무도 매서워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느 분이 저에게 보내온 글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개를 미워하는 사람은 개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개를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개는 사랑하지만 사람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요. 사람보다는 개가 더 귀하고 중한 경우도 많고요. 개는 싫어해도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요. 개도 사람도 생명 있는 것은 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요. 제 친구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지난 연초 명절 지난 뒤, 우리 모임에서 그 친구는 무척 피곤해 보였습니다. 그러다 그 친구의 탄식을 들었습니다. 개를 돌볼 사람이 없어(어미 개가 새끼를 세 마리 낳은 지 2주일이 되었답니다.) 명절에 찾아뵙지 못하겠다는 며느리의 겸손하고 간절한 사죄의 전화를 받고 ‘개만도 못한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서러웠다는 이 늙은 친구의 허전함을 위로할 길이 없었습니다.”

명절에 시아버지도 찾지 않는 그 며느리는 완전히 못되고 되바라진 사람이었을까?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며느리는 정직했고 친절했고, 참 착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사려 깊은 사람이기도 한 것 같고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전화를 할 턱이 없습니다. 하기 쉬운 전화가 아니니까요. 직업으로 말하자면 대학교수이고요. 지방에서 내외가 같은 대학에 있습니다. 개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아내의 걱정에 남편이 동물병원에 맡기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누구한테도 맡길 수 없어. 내 애들인데 내가 돌봐야지!’라고 하더라는 아들의 말에 ‘그랬겠다. 아기가 무척 개를 사랑하니까.’하고 말했지만, 그는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면서 몇 번이고 '나는 개팔자도 안 돼' 그랬습니다. 개가 없었다면 하는 생각에 이어 개가 미웠겠지요. 이 경우의 ‘사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온갖 뒤엉킨 삶의 이야기가 다 들어 있으니까요.”

그분의 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개 사랑 여부’에 관한 이야기는 분명 아닙니다. 무릇 우리 삶에 떠도는 개 이야기가 실은 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사랑이야기’의 변주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야 인마, 그것 때문에 상처받는 네가 문제가 있는 거야. 나이 칠십을 반고개를 넘기면서도 아직 그렇게 철이 나지 않았니?’ 하고 친구들이 떠들어댔지만 거기 있던 늙은이들에게 잿빛 여운이 길었습니다. 그 친구, 지난 금요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빈소에 그 며느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은 영정 속에 있는 그 친구뿐이었으니까요.”

‘개 미워하지 마세요’라는 내 글(2011.08.05)에 대해 보내온 이 장문의 댓글을 읽고, 나는 가슴이 좀 먹먹해지면서 생각이 너무 짧은 글을 쓴 것을 한탄했습니다. 그분의 지적대로 개 이야기는 결국 사람 이야기입니다. 개 때문에 사람이 뒷전으로 처지거나 개 때문에 노부모가 서운해지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내가 개보다도 서열이 낮아!” 이런 말을 하는 노인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개를 기르는 것은 또 하나의 가족을 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정들다 보면 개가 죽을 때 가족을 떠나 보내는 것과 똑같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큰 슬픔을 안게 됩니다. 개를 처음 기르는 사람들은 개와 헤어질 때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개는 언제나 사람보다 먼저 죽게 돼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경험 때문에 다시는 개를 기르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개를 기릅니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두 딸이 어려서 사랑하는 개와 헤어져본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을 어려서 상실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더 큰 것, 더 소중한 것을 잃고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아울러 나에게 소중한 것이 모든 사람에게 다 소중한 건 아니라는 점도 알게 됩니다. 개를 기르고 개와 살다가 헤어지는 일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평소에 외로웠으면, 그리고 얼마나 개에 의지하고 살았으면 그랬을까만 개가 죽었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야 되겠습니까? 개와 함께 살아야지 개와 함께 죽으면 되겠습니까?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모든 일에 중용과 분별을 지키는 樂而不淫哀而不傷(낙이불음 애이불상, 즐거워하되 음탕하지 말며 슬퍼하되 상처받지 말라)이라는 공자의 말을 다시 상기하게 됩니다. 개를 기르는 것은 이런 삶의 덕목을 배우고 익혀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drypen (58.XXX.XXX.240)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들집을 떠나면서 몇번아 잘있거라 몇번은 간다라고 한 그 할아버지 아닌가 싶네요. 그 집에선 가장도 개보다 서열이 낮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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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21: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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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장춘 (211.XXX.XXX.129)

樂而不淫哀而不傷이라고 즐거워 하되 음탕하지 말며 슬퍼하되 상처 받지 말아야 한다는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시는군요.즐기고 슬퍼하는 것은 감정의 작용이므로 솔직하게 작동하되 깊숙히 들어 가지 말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IT문화 등 현대 문명에서 골몰하여 부작용이 일기 쉬운 환경에 매몰되지 말것을 경계하고 있어 고전이 아닌 현실적인 요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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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16: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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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남 (211.XXX.XXX.129)

임철순 주필님께,

임주필님의 글은 항상 그렇지만 오늘 아침 글도 정말 정독을 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글입니다.

잘 계신 것을 확인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몸 튼튼 맘 튼튼 2012!!!

오종남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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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13: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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