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에게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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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에게 거는 기대

김홍묵

2012년 02월 21일 (화) 00:05:30

“한국 남자들은 다 뭘 하고 있어요?”
얼마 전 캐나다로 이민간 지 40년이 넘은 노부부가 갑자기 던진 질문에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왜요?”라고 반문을 던졌습니다. “여당ㆍ야당 할 것 없이 모두 여자가 대표를 맡고 있으니 옛날 우리의 잣대로는 이해가 잘 안 되어서요.”
그러고 보니 우리의 정치마당은 ‘여인천하’로 바뀌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여성이 전면에 나선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건국 초기부터 장관ㆍ국회의원이 있었고, 근자에는 대사ㆍ장군ㆍ대법관에다 총리에 이르기까지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법고시 합격 여성 수가 남성을 압도하고, 초중고 교사는 남성이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여권의 신장 탓인지 고위직뿐만 아니라 ‘금녀의 영역’으로 인식했던 분야까지 여성들이 뚫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전투기 조종사ㆍ해병대 교관ㆍ전방부대 지휘관ㆍ해안 순시정 정장ㆍ형사ㆍ기동경찰ㆍ공사현장 감독ㆍ중장비 기사ㆍ용접공 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남자 간호사나 가사전업 또는 육아휴직 남편이 늘어나는 것은 그에 대한 반작용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 감동과 희망을 심어주는 여성도 많습니다.
양궁ㆍ태권도ㆍ역도ㆍ유도ㆍ배드민턴ㆍ탁구ㆍ수영에 이어 골프ㆍ빙상ㆍ피겨스케이팅 스타들입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은 올림픽과 각종 세계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우승의 영예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본인에게 더없는 영광이기도 하지만 국민에게 감격과 꿈을 선물합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외롭고 가난하고 힘든 일생을 살아왔으면서도 나라와 이웃을 위해 자신을 버린 여성들도 적지 않습니다. 인고의 생애를 견디며 푼푼이 모은 전 재산을 장학금이나 북지기금으로 내놓은 김밥할머니ㆍ바느질할머니ㆍ종군위안부들 말입니다. 애환 가득한 여공ㆍ식모ㆍ차장 생활로 가사를 돕고 동생들 공부시켜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된 여성들도 숱합니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중국은 어떨까요. 상해에서 활동하는 예만톈(葉滿天) 변호사는 여성을 비하하는 16개 한자에서 여(女)자를 빼자고 제안했습니다. 괴이할 요(妖) 음탕할 표(嫖) 허망할 망(妄) 창기 창(娼) 기생 기(妓) 간사할 간(奸) 싫어할 혐(嫌) 등입니다.
여성이 부정적이고 혐오스러운 일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오도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입니다.

女자를 변으로 하는 ‘유감스러운’ 한자는 아마도 나라가 어지러워도 모를 만한 미인들에서 연유한 글자가 아닌가 합니다. 은왕(殷王) 주(紂)의 애비 달기(妲己), 주왕(周王) 유(幽)의 애첩 표사(漂似),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애빈 서시(西施), 당현종(唐玄宗)의 양귀비(楊貴妃)같은 경국지색의 절세미인들 말입니다. 아름답고 기예에 능한 이들 여인들은 끝내 나라를 망하게 한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중원을 통일하는 데 매진한 여성도 있습니다.
수(隋)나라를 창업한 양견(楊堅)의 아내 독고황후(獨孤皇后)는 ‘기호지세(騎虎之勢)’라는 말을 만든 여걸입니다. 한(漢)이 망하고 오호십육국(五胡十六國)이 난립한 시대 천하통일의 야망을 가진 남편에게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호랑이 등에 탄 이상 도중에 내려서는 안 된다[騎虎之勢不得下虎]며 격려해 마침내 그를 수나라 고조 문제(文帝)로 등극시켰습니다.

전란 중에 한 번은 이민족이 값이 팔백만금이나 되는 구슬을 사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양견의 아내는 “지금 외적이 연방 침입해 온 장병이 그를 막느라 피로에 지쳐 있다. 구슬을 살 돈이 있으면 공을 세운 장병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고 거절했습니다. 경국지색들보다 백 배 천 배 현명한 경국지재(經國之才)였던 것 같습니다.

정사나 야사에 등장하거나 행실이 돈독한 현모양처와 요조숙녀로 인구에 회자된 여성은 수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억압과 학대, 무시와 비하, 고통과 비애 속에 몸부림치며 신음하는 여성이 부지기수인 것도 현실입니다. 문명의 사각지대인 아프리카 소수민족, 엄격한 회교 율법에 갇혀 사는 이슬람 국가의 여성들입니다.

요리를 못한다고 처벌하고(파키스탄), 운전했다고 구속하고(사우디아라비아), 바지를 입었다고 체포하고(수단), 맥주 마셨다고 태형에 처하고(말레이시아), 조혼 풍습 때문에 12살 나이의 신부가 출산 중 사망(예멘)하기도 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여자는 남자나 어린아이들이 식사를 끝낸 뒤 밥을 먹도록 해 여성의 59%가 영양실조 상태이고, 여자 어린이의 11%는 5살 이전에 사망한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굴나즈(21)는 2년여 전 사촌의 남편에게 강간당하고도 12년 형을 선고받고 철창에 갇혔습니다. 명예살인(honor killing) 관습 때문에 사실을 숨기려 했지만 뱃속의 아이 때문에 간통범으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석방해 줄 테니 그 남자와 결혼하라”는 법원의 강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0년대 후지모리 대통령 치하의 페루에서는 2,000명이 넘는 원주민 여성을 강제로 불임 수술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인종학살’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한 형벌이 종교적 율법이라는 명분으로 21세기 여성들에게 가해지고 있습니다. 할례(割禮)라는 이름의 성형수술입니다. 음핵ㆍ음순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잘라 내거나 아예 성기를 봉합해버리는 시술입니다. 여성의 성욕을 억제하고 성스러운 결속과 사회 구성원이 되도록 하기 위한 의식이라고 합니다. 병원도 아닌 가정이나 미장원에서 시술했다가 출혈ㆍ쇼크ㆍ감염으로 70%이상이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2005년 이집트 정부의 설문조사 결과 여성의 96%가 할례 시술을 받았으며 7~13세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유니세프(UNICEF) 보고는 매년 300만 명의 여자 어린이가 할례 시술을 받고 있으며, 이중 절반은 이집트와 에티오피아가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유엔(UN) 보고서는 전 세계 28개국에서 할례를 받은 여성이 1억 4천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할 만큼 굴종의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도 점차 권익향상에 눈을 뜨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부터 남성 후견인의 허락 없이 여성이 투표와 선거 출마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배이념으로 삼고 있는 사우디에서는 여성이 여행, 유학, 결혼과 이혼은 물론 병원 치료를 받을 때도 후견인(남편, 아버지, 남자 형제, 아들)의 승낙을 받아야 합니다.

사우디는 또 올해부터 여성 속옷가게에 여성 점원만 근무하도록 법을 고쳤습니다. 가족이 아닌 남녀가 공공장소에서 어울리는 것을 금한 이슬람율법 때문에 란제리 가게조차 남성 점원이 한 명만 있어도 여성은 근무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성 속옷 가게 7,300여 곳에 2만 8,000여 명이 취업 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15세 이상 소녀의 75%가 조혼 풍습에 시달리고 있는 예멘의 의회는 지난해 3월 결혼 연령을 17세로 높였습니다. 여성들이 권익 신장에 눈 뜬 덕분입니다.

지고한 사랑을 베푸는 여성, 약하지만 (남성을 지배할 만큼) 강한 여인,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자가 우리 사회 전면에 나선 현실에 놀라거나 불안해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기대가 큽니다. 압도(壓倒)가 아닌 압권(壓卷: 과거 시험이 끝나고 장원급제한 사람의 답안지를 다른 답안지 맨 위에 올려놓음)의 정치로 꿈과 희망이 있는, 평화롭고 행복한,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drypen (58.XXX.XXX.187)

女변을 나쁜 의미로 이용한 '유감스러운' 글자를 없애자는 중국의 葉변호사의 주장이 상당히 일리가 있네요. 그런 글자중 대표적인 것이 간사할 姦자 같네요. 安이나 好처럼 좋은 의미로 활용된 예도 있지만 간신에는 여자보다 남자가 월등히 많았을 것임에도 奸臣이라고 하면 여자에게 불공평하죠. 娼妓는 남자가 있으므로 성립이 되는 어휘이니 사내男을 혼용해서 새 글자를 만들어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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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23: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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