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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통재라
신아연 2012년 02월 22일 (수) 00:21:47

지난 일요일 , 교회를 가려고 머리를 말리는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헤어드라이어가 작동을 멈추었습니다. 과열된 모터 타는 냄새와 연기가 나는 것으로 보아 더는 어찌해 볼 도리없이 그것으로 수명이 다한 것 같았습니다.

머리를 말리다 만 상태라 적이 당황스럽고 난감한 가운데 헤어드라이어의 ‘공식 사망’ 을 선고하며 햇수를 세어보니 놀랍게도 그것을 30년이나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무 살 처녀 적부터 쓰던 물건을 결혼하고 이민 오면서 전압마저 다른 호주까지 어찌어찌 가지고 왔거나, 아니면 중간에 언제 한국엘 갔을 때 친정어머니가 “네 것이니 가져가라”며 가방에 넣어주신 것도 같습니다.

무람없이 덥석덥석 뭔가를 사는 성격이 아닌 데다 헤어드라이어라는 게 가지고 다니며 남 앞에 자랑할 물건도 아니고, 고장만 안 나면 되니 그렇게 무던하게 함께 해 온 세월이 한 세대 분량이라는 사실에 감개마저 무량합니다. 이쯤되면 17년간 사용하던 바늘과 이별하며 조침문을 쓴 조선 규방의 한 부인네처럼 저 역시 헤어드라이어에 대한 제문이라도 써서 그 ‘넋’을 위로하고 제 마음도 달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젖은 머리를 빗질로 대강 수습하면서 ‘하필 쓰는 도중에 고장이 난담…’하는 원망을 잠깐 하자니 이내 ‘그럼 쓸 때 고장나지, 귀신이 머리를 말린다면 모를까, 저 혼자 멀쩡히 있는데 고장날 수도 있나. ’하는 마음이 막아섭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최후의 순간까지 제 온 몸을 불사른 후 장렬히 전사한 헤어드라이어의 지난한 일생이 장하고 숭고하게 여겨집니다.

가난했던 남편의 유학시절, 멀쩡히 가다가도 좌회전이든 우회전이든 방향을 바꾸기만 하면 그만 스르르 서 버리는 통에 ‘똥차’라는 면박을 피할 수 없었던 오래 된 자동차도 지금 돌이켜 보면 다른 차로 교체되는 마지막 날까지 충직하게 제 임무를 다했다 싶습니다. 마치 짧은 시간이나마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해 따뜻함을 전한 후 완전 연소한 연탄처럼 말입니다.

30년을 한결같이 달려온 후 이제 ‘영면’에 들어간 드라이어를 선뜻 버리지 못한 채 그 뒤를 이을 세간살이들의 최후를 떠올려 봅니다. 헤어드라이어처럼 다리미, 전기 밥솥, 청소기, 세탁기 등이 묵묵히 제 몫을 감당하는 도중의 어느 한 날 자신들의 삶을 마감하게 될 테지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하지만 기왕 죽을 바에는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원숭이가 가장 폼나지 싶습니다. 웅숭그리고 앉아 동료의 엉덩이를 들쑤시며 이를 잡아주는 모습보다는 나뭇가지 사이를 요리조리,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재주를 부릴 때가 원숭이를 가장 원숭이답게 보이게 한다면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비록 우화이지만 애초 무엇 때문에 토끼와 경주를 시작했는진 몰라도 상대와는 무관하게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거북이의 단순 우직함의 미덕이 최선을 다하는 삶의 상징처럼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망가진 헤어드라이어를 계기로 생명없는 사물과 그저 본능을 좇는 미물에까지 ‘최선’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차제에 제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열정과 소명에 사로잡혀 매순간 깨어 전 생애를 통해 자기 삶을 완전 연소시키는 사람들을 대할 때면 게으름과 나태, 핑계와 변명이라는 타성에 젖어, 사는 듯 마는 듯 시간만 축내고 있는 스스로가 부끄럽고 자책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신념, 재능, 열정, 사명, 헌신, 도리 등에 이끌려 길건 짧건 한 생애를 불꽃처럼 살다가는 사람들- 결국 선교지에서 목숨을 잃고, 험준한 산에서 삶을 마감하며, 빙상에서 최후를 맞을지라도 –그 누구를 향해 그 재주와 열정이 결국은 너를 잡아먹었다고 혀를 차겠습니까.

오늘은 마침 1962년에 태어나 6년 전 세상을 떠난 호주의 동물보호 운동가 스티브 어윈의 생일입니다. 그는 늪지를 링 삼아 우글거리는 악어 떼를 마치 개 데리고 놀듯 하면서 44세에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호주의 자부심이자 악어 전문가로서 유명을 달리한 그날도 그는 자신의 일터인 물에서 신명을 바쳤습니다. 그의 사후 호주에는 '스티브 어윈의 날'이 만들어졌고 ‘스티브 어윈 동물원’과 그의 이름이 붙은 고속도로도 닦여졌습니다. 천진무구하기까지한 열정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한 그를 만에 하나 어느 누가 인간의 한계를 몰랐던 무모하고 엉뚱한 사람이라고 기억하겠습니까.

요즘 저는 매우 구체적으로 제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합니다. 만약 지금이라도 그럴 수 있다면 나는 무엇에 미쳐서 , 무얼하는 도중에 죽을 것인지, 아주 미미한 편린으로나마 주변 사람들 속에 잠시 머물 수 있다면 나는 어떤 흔적을 남기며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자문해 봅니다. 더 이상 시간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는 질책과 함께 그 대답 역시 매우 구체적이며 가시적으로 주어질 수 있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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