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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 어디 없나요?
임종건 2012년 02월 23일 (목) 01:09:06
한 지인이 보내온 이메일에 ‘아주 특별한 실험’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습니다. 제목은 ‘실험’인데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줄거리인 즉 다음 같습니다.

“어느 마을에서 한 사람이 한 달 동안 실험을 했습니다. 마을의 일정 구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원 한 장에 대한 심리적 반응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습니다. 첫 날 그 사람이 현관 앞에 만원을 놓고 가자 동네는 떠들썩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고, 신기해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으로 집어들었습니다. 둘째 주에 접어드니 마을 사람들은 돈을 주는 사람이 오는 쪽을 바라보며 기다렸습니다. 셋째 주가 되니 더 이상 신기해 하지 않았고, 넷째 주가 되니 당연한 일상사가 되었습니다. 한달의 마지막 날 그는 집 앞을 그냥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은 투덜댔고, 어떤 사람은 왜 안 주느냐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이 얘기에 담긴 메시지는 고마움을 아는 것의 중요함입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 적은 보수, 낮은 직책, 부족한 근무환경을 견디는 것은 일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나, 그 고마움은 차츰 당연한 권리가 되어 더 잘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변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귀찮게 여기다가 부모가 곁을 떠난 뒤에야 고마움을 알고 후회하게 됩니다. 생명은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한 물건이 아니듯 나의 몸조차 온전히 내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가진 것이 언제나 곁에 있으리라는 착각, 그것이 당연한 권리라는 착각이 삶을 그악스럽게 한다는 얘기입니다.

나는 이 얘기에서 고마움에 대한 각성과 함께 공짜에 대한 경계의 뜻도 봅니다. 타성이 되고 나중에 가선 뻔뻔해지기까지 하는 공짜의 속성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고 합니다. 인간은 대개 공짜를 좋아하지만 한국 사람이 유독 그렇다는 얘기겠지요.

끝을 모르고 터지는 뇌물사건들이 그 실증이라고 하겠습니다. 뇌물을 받는 사람은 그것이 공짜인 줄 알거나, 받을 자격이 있는 자기의 권리로 알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 순간에도 저명한 공직자들이 뇌물의 대가를 치르고 있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패가망신에다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참혹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럼에도 같은 사건이 되풀이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공짜에 마비된 탓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온전하게 공짜인 것은 조물주가 주는 공기와 햇빛뿐입니다. 원래 물도 조물주가 준 것이지만 인간의 가공에 의해 대개 돈을 내고 마십니다. 그밖에는 어느 것 하나 공짜가 없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정당들이 보편적 복지라는 이름으로 공짜를 남발합니다. 복지는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만들어 내는 자본주의 경쟁체제의 결함을 교정하는 장치입니다. 승자인 부자로부터 세금을 걷어서 패자인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경쟁은 한 번의 패배가 영구적인 패배가 아니고, 7전8기의 묘미가 있는 경쟁입니다. 빈부의 고착화로 인해 ‘개천에서 용 나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지만 한국은 그런 가능성이 아직은 열려있는 다이내미즘의 사회로 평가됩니다. 복지는 그런 다이내미즘의 유지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의지를 북돋우어 재기하도록 돕는 복지여야지, 의타심에 중독되게 하거나 심지어 뻔뻔해지게 하는 복지여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나는 그 점에서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내거는 ‘무상 시리즈’ 보편적 복지에 함정이 있다고 봅니다.

복지는 소모적이고 효과도 더디어서 부담은 대개 미래세대로 넘겨집니다. 후손에게 빚을 넘겨주더라도 감당할 수준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육이나 학교 급식은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이므로 그나마 덜 미안하다고 하겠으나 그것마저도 필요 이상이 돼서는 안 되는 겁니다.

자녀의 점심값을 낼 의사와 능력을 가진 가정에까지 ‘교육의 평등’을 위해 공짜점심의 혜택을 주자는 주장은 이념이지 복지가 아니라고 봅니다. 공짜를 권장한다는 점에서 비교육적이기도 합니다. 여당에서 이것을 아침밥까지로 확대하자고 한 술 더 뜬다니 책임있는 여당인게 맞습니까?

잘못된 복지정책으로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160%에 이르러 나라가 부도위기에 몰린 것이 그리스사태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GDP는 1조달러에 이르렀고, 국가부채는 GDP의 30%대로 아직 안전하다고 정부는 주장하지만 공기업부채를 포함하면 그리스 수준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것과는 별도로 가계부채만도 1000조원에 이릅니다.

지금 그리스가 겪는 일을 우리도 1997년 IMF사태 때 겪었습니다. 복지를 많이 하다가 당한 것도 아니고, 정부와 대기업과 금융권의 합작부실경영으로 초래된 국가부도 사태였습니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단합해서 허리띠를 졸라매 2년여 만에 국가부도 사태에서 탈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 국민들은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임금이 깎이고, 복지가 삭감되는 현실 앞에서 분노합니다. 그것이 시위로, 약탈로 번져 올림픽의 발상지인 올림피아의 박물관이 약탈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그리스인들에게 ‘IMF사태를 극복한 한국인에게서 배우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IMF사태를 맞기라도 한다면 국민들이 예전처럼 다시 허리띠를 졸라맬까요? 결코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의 무책임을 너무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정치가는 국민에게 절제와 희생과 희망을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피와 땀과 눈물’을 요청한 영국의 처칠 총리이나, “나라가 나에게 뭘 해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나를 생각하라”고 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위대한 이유입니다.

국회의원,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은 많습니다. 그들 모두 표을 얻기 위한 사탕발림에만 열중입니다. “국가나 개인이나 지금은 빚을 두려워 할 때”라고 말하는 사람, 어디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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