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차별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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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차별의 비극

황경춘

2012년 02월 27일 (월) 00:22:37

미국 남부 텍사스주 댈러스의 흑인 거주 지역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는 박 사장과 흑인 목사 사이에 있었던 언쟁이 민족차별 분쟁으로 확대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최근에 읽었습니다. 휘발유 값이 다른 곳보다 비싸다고 항의하기에 “그럼 다른 데로 가라”고 하자 이 목사가 “당신이나 당신 나라로 가라”고 받아쳐 문제가 커졌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를 읽자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친 것이 어릴 적 일본 아이들로부터 받은 설명할 수 없는 모욕감이었습니다. 80여 년 전 일제강점 시, 우리 집은 일본의 어느 탄광촌에 있었습니다. 또래 일본 아이들과 놀다가 말썽이 생기면 그들이 가끔 하는 <‘센진(鮮人)’ 카에레(조선놈 너의 나라로 가>하는 말은 정말 모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왜 이곳에 와 있는지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나이에, 그들과는 달리 우리는 ‘센진’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라는 게 모욕적으로 느껴진 것입니다.

1954년 미 국무성 연수계획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섭씨 40도를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는 여름철 흑인이 많이 사는 남부 여러 곳을 돌며 미국의 흑백문제 견학을 하였습니다.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 시작되기 1년 전인 당시의 흑백 갈등은 듣기보다는 훨씬 심각하였습니다.

학교, 병원, 교회, 공원 등이 완전히 흑ㆍ백인용으로 분리 운영되며, 전차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은 물론이고, 민간이 경영하는 호텔, 식당, 극장 등도 분리정책이 철저하였습니다. 공중변소도 백인전용이 따로 있었고 어떤 건물에는 흑인전용 출입구까지 있었습니다.

인권운동을 하는 교회 지도자들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저는 일제 식민지시대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흑인들이 느끼는 감정을 잘 이해한다고 말했더니, 동양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크게 동정하며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댈러스의 박 사장의 경우, 너의 나라에 돌아가라는 흑인 목사에게 “그럼 당신은 아프리카로 가라”로 대꾸해 싸움이 커졌다고 합니다. 미국 흑인의 경우 노예로 끌려와 몇 세대를 거친 시점에서 미국이 ‘자기네 나라’라고 주장한들 이상한 것도 없겠지만 우리가 보아서는 역시 약간의 논리의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애써 이민하여 시민권까지 받은 사람에게 ‘너의 나라로 가라’라는 말은 참으로 듣기 싫었을 것입니다.

한때 미국에서는 흑백간의 혼혈결혼을 금지하는 주법(州法)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사회문제 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자기와 다른 민족 배우자와 결혼한 사람의 수는 2010년 미국 전 인구의 15%로, 이는 1980년의 6.7%의 배 이상이라 했습니다. 물론 아시아인이나 남미 민족을 포함한 숫자이기는 하지만 괄목할 변화입니다. 2010년 한 해만 하더라도 24%의 흑인 남성이 흑인 아닌 여자와 결혼했다고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2백만에 가깝다고 추정되는 다문화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한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우리 동포와 결혼한 사람도 많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로서 민족차별의 쓰라린 경험을 많이 가진 우리이기에, 이들에 대한 각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문화나 교육 차이에서 오는 일상생활에서의 시비나 불편은 많겠지만, 우리의 손님을 대접하는 데 선진국다운 아량이 절실합니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이들을 이문화(異文化) 민족이라 부릅니다. 외국인 이주를 규제하던 그들도 노동력 부족 때문에 한때 그들이 많이 이민으로 간 브라질을 비롯하여 동남아 여러 나라로부터 노동력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민족적 우월성이 강한 일본인 사이에는 민족차별을 공공연히 내세우는 극우 국수주의 단체나 지도자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의 평화 공존에 걸림돌이 되는 이유의 하나가 이 민족 우월성에 도취된 그릇된 지도자 때문이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정부가 10여만 명의 일본계 이민을 강제 수용한 사건을 인종차별이라고 항의하여 미국 정부의 사과와 보상금까지 받은 그들은 금년이 그 사건의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벌써 국내외서 홍보전을 시작했습니다.

국제연합은 1963년에 ‘인종차별철폐 선언문’을 채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국제조약을 1965년에 만들었습니다. 170여 가맹국이 비준을 마쳤지만 세계 각처에서는 민족분쟁의 비극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몇 나라처럼 부족끼리의 유혈 전쟁이 계속되는 한편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이 관련된 분쟁도 있지만, 댈러스의 박 사장같이 개인이 겪는 민족차별도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개인의 경우라 해도 결국 그 개인이 태어난 나라의 민족으로 문제가 확산되는 것이 이러한 사건의 특성입니다.

80년 전, 순진한 아이의 가슴에 비수(匕首)같이 꽂힌 미족차별의 모욕감은 지금도 가끔 되살아납니다. 댈러스의 박 사장이 느낀 서러운 감정은 이를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아픔입니다. 적어도 동족끼리의 삶에서는 이와 비슷한 지역 간 차별이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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