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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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면서

임철순

2012년 03월 07일 (수) 00:38:33

30년 전만 해도 택시 합승은 큰 사회적 현안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시 출입기자였던 나는 ‘택시 합승,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시리즈기사를 신문에 쓴 일이 있습니다. 물론 데스크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지만, 제목이 불만스러웠습니다. 택시 합승은 법으로 금지돼 있으니 법대로 강력하게 단속하고, 시민들도 합승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될 텐데 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식의 뜨뜻미지근한 제목일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법 규정과 현실 사이의 괴리, 실생활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합승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합승손님을 태우려고 하는 운전사도 없고 승객도 없습니다. 자가용 승용차든 지하철이든 교통수단이 대폭 확충되고, 양극화는 심해졌지만 전반적으로 살림살이가 나아져서 그런지 30년 전의 논란은 아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택시 운전사들은 그동안 달라졌나요? 운전사라는 호칭에서부터 모욕감을 느끼는 ‘기사님들’이 많겠지만, 내가 체감하는 한 택시 운전사들의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출근길의 일입니다. 택시를 잡으려 손을 들어도 아직 날이 어두워 보지 못했는지 몇 대가 그냥 지나갔습니다. 오래 기다린 끝에 택시를 잡고 행선지를 말했습니다. 운전사는 아무 말 없이 차만 몰았습니다. “들으셨어요?”하고 물었더니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마알을 않지?” 나는 짜증을 부렸습니다. 그랬더니 대답도 하지 않고서 “대답했는데요”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거짓말까지 하는 데 화가 나서 “손님한테 인사하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러나 최소한 어디 가자고 하면 알았다고 대애답은 해야 할 거 아니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이내 후회했지만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따위의 인사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최소한 손님이 말을 하면 알아들었다고 대답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운전사들은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택시 운전이나 하고 있는 건 다 네놈 때문이다’라고 말하려는 듯 잔뜩 볼이 부어 있거나 심통이 난 표정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만 타고 다니면 그만일 텐데도 내가 곧잘 따지고 ‘시비’를 거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0여 년 전 철야 근무를 마치고 잔뜩 지쳐 한숨 자면서 집에 가려고 택시를 잡았을 때의 일입니다. “배재고 앞에 가자”고 했는데 눈을 떠보니 배명고 앞이었습니다. 배재고는 강동구, 배명고는 송파구입니다. 차를 돌려 배재고 앞까지 가는 동안 기분이 나빴습니다. 운전사는 미안해하며 요금을 깎아 주었지만 기분이 상해서 그런지 아무래도 돈을 더 낸 것 같았습니다. 그 일을 겪고 난 뒤부터 거의 빠짐없이 나는 어디로 가자고 한 말을 잘 들었는지 확인하곤 합니다.

그렇게 불친절하고 화가 나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친절하게 잘 대할까. 아니올시다지요. 걸핏하면 바가지를 씌우고 길을 잘못 들고도 승객에게 돈 받을 것 다 받아내는 나쁜 운전사들이 많습니다. 여성이 마음 놓고 택시를 타지 못할 만큼 폭력적이거나 성희롱 성추행까지 하는 경우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택시 운전사들 중에는 지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택시 운전을 갓 시작한 사람들도 많아 길 안내까지 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운전사들은 지리를 모르는 것을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거나 으레 그럴 수 있는 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면허를 따려면 지리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뭘 공부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터에 과속을 밥 먹듯 하는 운전사까지 만나면 편하게 가자고 잡은 택시에서 불안에 떨어야 합니다.

요즘은 웬만한 택시마다 내비게이터가 다 있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내비게이터가 승객이 잘 아는 길보다 똑똑하게 길 안내를 해 주지는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고지식하게 안내를 하는 바람에 오히려 더 밀리는 길로 가게 만들기도 합니다. 또 하나, 대부분의 운전사들은 내비게이터 검색에 서투릅니다. 운전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행선지를 찍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위태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택시 운전하는 분들을 흉만 보았지만, 불친절하고 못된 운전사들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아주 드물기는 해도 차에 타면 “안녕하십니까? 어디로 모실까요?”하고 친절하게 인사하는 사람도 어쩌다 만나게 됩니다. 나는 기억도 하지 못하는데 “오랜만에 모시게 됐네요.”하고 인사하는 운전사를 만난 적도 있습니다.

다만 친절하고 친근한 걸 지나쳐 짜증스러울 정도로 말을 거는 사람은 참 난처합니다. 내 직업을 알아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정치적 견해를 묻거나 특정 정치인에 대해 품평하며 동의를 구하는 경우는 대꾸하기가 귀찮아집니다. 가장 성가신 것은 예수 믿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경우는 차에 탈 때부터 그가 틀어 놓은 라디오 선교방송을 들어야 하고, ‘좋은 말씀’에 맞장구까지 쳐주어야 합니다. 그 방송 듣기 싫으니 끄라든가 채널을 돌려달라고 말할 만한 용기가 나는 없습니다. 그 ‘말씀의 공해’가 안 들리는 척 못 들은 척 눈을 감고 가거나 책을 읽으면서 어서 빨리 목적지에 닿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운전사는 내 안경을 찾아준 사람입니다. 평소 안경을 끼지 않아서 그런지 나는 숱하게 안경을 잃어버렸습니다. 몇 년 전에도 언제 어디에 흘렸는지 모르게 안경이 없어져 불편해 하고 있는데, 단골 안경점에서 안경이 들어왔으니 찾아가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어느 택시 운전사가 안경집에 쓰여 있는 점포의 전화번호를 보고 맡기고 갔다고 합니다. 너무도 고맙고 반가워 그 운전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례를 하겠다고 했더니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한참 설득하자 “그러면 우리 딸의 은행계좌로 돈을 보내되 아주 조금만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돈을 부치고 나서 전화번호를 내 휴대폰에 입력해 놓았습니다.

그 뒤 어디 급하게 갈 일이 생기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집 앞으로 오도록 했는데, 그때마다 먼 곳에 있어 한 번도 그 택시를 이용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연히 그의 얼굴도 모릅니다. 언젠가 그의 택시를 이용할 수 있게 되겠지만, 꼭 차를 타지 않더라도 지금 그대로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윤옥 (114.XXX.XXX.23)

예전 합승이 다반사였던 시절엔 택시타는일이 빈번했었는데, 이젠 가진돈 아껴써야(?) 하는 형편이어서 버스나 지하철만 탑니다. 언젠가 손녀를 데리고 택시를 탄 적 있었는데,기사님이 행선지를 말하지 못하게 하면서 '다~~~~ 알아서 데려다 줄테니 가만 있으라' 하는 바람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지요. 우리 동네 근처에 다 와서 ' 조기에서 좌회전 하시면.....' 했더니 '아, 가만 계시라는데 , 나를 못믿는다는 증거 아니세요?' 하면서 몰아부쳐서 '정말 어떻게 아시고....' 했더니 전에도 손녀랑 탄 적이 있다고... 그래서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기억하시냐고 했더니, "제가 이뻐서 기억한다고 하더군요. 제 꿈이 젊은 할머니 말고 이쁜 할머니였는데 꿈이 이루어진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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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8 19: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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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129)

요즘 좀 뜸하시기에 어디 편찮으신 줄 알았습니다.
축하합니다. 꿈은 언젠가 이루어지기 마련이지요. 그 기사 눈썰미 있고 재치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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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9 17: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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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환 (211.XXX.XXX.129)

좋은내용글감사합니다필력이여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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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7 14:3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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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211.XXX.XXX.129)

상쾌한 아침에 접하는, 참으로 인정넘치는 글입니다.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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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7 14: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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