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함성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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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함성을 들으며

방석순

2012년 03월 22일 (목) 02:30:35

꽃샘바람의 심술에도 자고 나면 가로수의 빛깔이 달라져 보입니다. 겨우내 칙칙하기만 하던 나무 등걸에서 보일 듯 말 듯 연둣빛이 배어나오고 있습니다. 이러다 어느 순간 도시 전체를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말겠지요.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또 하나의 신호는 그라운드의 함성일 것입니다. 곧 대표적인 옥외 스포츠로 자리 잡은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됩니다. 벌써 시범경기가 벌어지는 전국 야구장에선 성미 급한 팬들의 환호가 요란합니다.

지난 한 해 프로야구는 680만 명이 넘는 사상 최다 관중(게임당 평균 12,801명)을 모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올해엔 메이저리그, 일본리그에서 활약하던 박찬호, 이승엽, 김태균 등 옛 스타들이 돌아와 관심거리도 많아지고 그만큼 화제도 풍성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처럼 들뜬 기분으로 야구 시즌을 반겨도 좋을지, 마음 한 편이 개운치 않습니다. 검찰은 최근 프로야구와 남녀 배구 선수, 그리고 전주(錢主), 브로커,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관계자 등 모두 31명을 승부 조작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지난해 프로축구 수사가 그 시작입니다. 우리 스포츠에도 어느새 불법 도박의 어두운 그림자가 야금야금 영토를 넓혀가고 있음이 확인된 것입니다.

기소된 야구선수들은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고 승부를 조작하거나 경기 중 고의적인 포볼을 내줌으로써 불법 도박을 도운 혐의입니다. 지난해 13승을 올리며 LG 에이스로 발돋움한 박현준(26), LG 마운드의 차세대 기둥으로 관심을 모으던 김성현(23), 두 선수를 올해 그라운드에서는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김성현은 구속됐고, 박현준은 불구속으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0년째 수렁에서 헤맨 LG로서는 하위권 탈출에 큰 힘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이들의 이탈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이들을 성원해온 팬들의 아쉬움이나 배신감은 훨씬 더 클 것입니다.

정해진 규칙을 지켜 정정당당히 실력을 겨루고 상대를 배려하는 스포츠맨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스포츠의 최고 덕목입니다. 팬들에게 높은 경기 기술과 페어플레이로 감동을 주고 밝고 명랑한 여가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프로스포츠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1982년 프로 야구가 출범하며 내걸었던 슬로건 역시 ‘건전한 여가문화의 창달’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경기력을 갖춘 프로 선수들이 그에 걸맞은 정신자세를 갖추지 못했을 때 그 스포츠 판은 약육강식의 정글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거기에 뒷돈이 오가는 경기 조작, 승부 조작이 이루어진다면 사기 도박판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프로스포츠의 건강을 위해서 조작에 가담한 선수나 관계자에 대한 처벌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한편 선수들이 경기 조작의 유혹에 넘어간 사연을 들어보면 우리 프로스포츠의 선수 보호나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알게 됩니다. 김성현은 어려운 집안 사정을 두고 볼 수 없어, 박현준은 어려움에 처한 후배를 돕는다는 생각에 손쉽게 마수에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승패를 뒤집자는 것이 아니야. 그저 자연스럽게 포볼 하나만 주면 되는 거야.’ 그런 꼬임 뒤에 엄청난 돈이 오가는 도박판이 있다는 걸 제대로 알지도 못했을 겁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퇴단 조치에 이어 선수자격정지. 이젠 그들이 그라운드에 돌아오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재판에 따라 영구 제명될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의 꿈, 중고교와 대학교를 거치며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살아남아 마침내 이루어낸 프로선수의 꿈이 이렇게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2001년부터 정부는 체육 발전의 재정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경기 결과 알아맞히기 방식의 복권 스포츠토토를 도입했습니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사행성을 부추기는 사업임에 틀림없습니다. 경마의 기수처럼 프로선수들을 향한 유혹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프로선수들이 올바른 자세를 지킬 수 있도록 취해진 조처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어려운 친구를 위해 포볼 하나쯤 만들어 주는 것에 그다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프로 무대에 서기까지 기울인 눈물겨운 노력에 비하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선수들의 안이한 자세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도박이라는 암적 조직이 마침내 우리 프로스포츠의 내부에 침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몇몇 선수들에 대한 징계, 처벌의 효과는 드러난 상처에 소독약 바르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암 조직의 뿌리를 들어내는 일이 더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수사는 뿌리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느낌입니다. 그러니 또 언제 어느 방향으로 마수가 뻗쳐올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수많은 경쟁을 이기고 정상의 무대에 올라선 프로스포츠 선수들, 그들이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위험이 바로 약물, 그리고 경기 조작, 즉 도박입니다. 어느 쪽이든 걸려들면 선수생명에 치명타를 받습니다. 선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약물 규제에 대해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로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상으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교육해왔습니다. 프로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약물의 위험에 다소 안이한 편입니다. 오늘날 메이저리그에 약물 냄새가 진동하게 된 것도 그런 까닭일 것입니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도 약물과 경기 조작에 대한 대책은 절대적으로 부족해 보입니다. 그동안 그로 인한 큰 폐해가 나타나지 않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수수방관할 일이 아님이 확인되었습니다. 말려든 선수들만 나무랄 수 없는 문제입니다. 스포츠 세계로의 틈입을 노리는 약물, 도박의 위협으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프로스포츠 단체와 구단, 수사 당국, 관련 단체들의 보다 체계적이고 공고한 대응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선수들이 멋진 플레이로 관중석의 갈채와 환호를 이끌어내는 동안 관중 머리 수를 헤아리는 것만이 프로구단의 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경기력을 연마하는 훈련과 같은 비중으로 선수들의 정신자세를 가다듬는 교육과 지원이 필요해 보입니다. 선수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는 제도적 장치가 아쉽습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소수 귀족 선수들과의 흥정도 중요하지만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배고픈 선수들을 보살피는 일이 프로스포츠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방석순 (121.XXX.XXX.42)

물질만능의 세태가 빚어낸 참담한 현실이 아닐까요.
우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재물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일깨워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또 사회에서...
보내주신 의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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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3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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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욱 (121.XXX.XXX.42)

도처에 산재한 악한 기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가 큰 문제거리입니다.
무고한 사람을 살상하고 손해를 끼치고 다중을 기만하고 사소한 민폐를 끼치는 것까지..
최소한으로는 법의 엄정한 집행을 톻하여 다스려야 할 것이나 이것마져도 불신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니, 참 멀쩡한 정신으로는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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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3 1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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